경제금융센터 칼럼(ef) 2020-11-18   1784

[공정경제 5법 연속 기고 ④ 집단소송·징벌적손해배상법] 글로벌 기업들, 한국 소비자만 만만하게 보는 덴 이유가 있다

글로벌 기업들, 한국 소비자만 만만하게 보는 덴 이유가 있다

민변 개혁입법추진특별위원장 김남근 변호사

 

 

최근 공정경제 3+2법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먼저 공정경제 3법이란, 2020년 8월 31일 정부가 제출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일부개정안,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이릅니다. 여기에 가습기살균제 사태, DLF·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 등의 재발 방지를 위한 집단소송법, 징벌배상법 제정안을 더하면 공정경제 5법이 됩니다.

 

그러나 재계는 이들 법안이 통과되면 마치 ‘기업활동이 마비 상태에 놓이는 것’처럼 주장하며 전방위적 무산 시도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들 5가지 법은 기업활동을 방해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그 동안 총수일가의 사익편취에 기업이 이용되는 등 비정상적으로 기울어져있던 운동장을 바로잡고, 방만한 계열사 확장, 금융복합기업의 부실 전이 방지, 소비자 권익보호 등을 위해 꼭 필요한 법입니다.

 

이에 재계 반대 주장의 어불성설을 논박하고 공정경제 3+2법의 의미를 짚어 시민들이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시리즈 기사를 기획했습니다._기자 주

 

[공정경제 5법 입법 필요성 시리즈 기고 ①] 감사위원을 단 1명도 분리선출하지 말자고?

[공정경제 5법 입법 필요성 시리즈 기고 ②] 공정거래법 개정안 탓에 기업 위축? 재계 엄살 이제 그만

[공정경제 5법 입법 필요성 시리즈 기고 ③] 이름도 어려운 금융그룹감독법, 공정경제 생태계에 필요한 이유

[공정경제 5법 입법 필요성 시리즈 기고 ④] 글로벌 기업들, 한국 소비자만 만만하게 보는 덴 이유가 있다

[공정경제 5법 입법 필요성 시리즈 기고 ⑤] ‘김종인 발의안’보다 약한 공정경제 5법, 더 후퇴시키려는 민주당

 

 

흩어져 있는 다수의 이익을 보호하는 집단소송법

 

올해 10월 30일 농민 1만7000여 명이 13개 비료회사를 상대로 낸 비료담합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58억8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8년 동안 이어진 법정 공방 끝에 농민들이 승소했지만, 농민들이 받게 될 배상액은 1인 당 3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소비자의 이익과 같이 이렇게 흩어져 있는 다수의 작은 이익은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그 권리를 행사하기에 비효율적이어서 개인 처지에서는 행사되기 힘들다.

 

13개 비료회사들이 담합을 통해 얻은 부당이득이 1조6000억 원대에 이르는데 피해배상이 고작 58억 원에 불과하다면, 비료회사들로서는 제재에 비해 얻는 이익이 너무 커서 또다시 담합과 같은 불법행위에 나설 유인이 커진다. 개별 소비자에게는 작은 피해일 수 있지만, 이를 방치하면 공정한 거래를 통해 모두에게 공정한 이익이 돌아가도록하는 시장거래질서 유지라는 공익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비료 담합사건은 수십만 명의 농민들이 다 같이 피해를 본 사건이다. 법원으로부터 허가받은 대표 50명이 나서서 소송을 제기하면 나머지 수십만 명의 피해자들도 다 같이 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면, 비료 담합회사들이 58억만 배상하고 1조6000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하는 불공정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소수의 피해집단 대표가 법원의 허가를 얻어 소송을 하면 그 판결의 효력이 피해집단 모두에게 미치도록 하는 제도가 집단소송(Class Action) 제도이다.

 

대기업과 소비자, 기울어진 운동장

 

집단소송의 대상은 대부분 대기업이 제품의 판매·개발·영업활동의 과정에서 다수의 소비자·노동자·주민 등에게 손해를 입힌 사안들이다. 제조물 책임·담합·환경피해·차별·개인정보 침해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공통점은 관련 증거들이 그 대기업 내부에는 있지만, 피해자들은 증거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증거편재(偏在)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다수 피해자가 기업을 상대로 승소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집단소송법에는 상대 대기업이 내부에 가지고 있는 증거를 재판에 제출하도록 하는 증거개시 제도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은행 등의 금융기관은 일반 투자자에게 판매할 상품으로는 적정하지 않은 ‘독일금리 연계 파생상품'(Derivative Linked Fund, DLF)을 판매하면서, 그 상품의 구조나 위험성 관련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판매수수료 수익만 올리려 하다가 많은 투자자에게 피해를 입혔다. 라임, 옵티머스 사모펀드를 판매한 증권회사나 농협 등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들이 파생상품이나 사모펀드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금융상품에 대한 설명의무가 이행됐는지, 금융상품이 일반투자자에게 적합한 것인지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 내부에 보관되어 있는 판매 시 설명 녹취록, 상품설계 자료 등을 확보해야 하는데, 집단소송법이 도입된다면 증거개시 제도를 통해 확보할 수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로 인한 주주들의 주가손실 손해배상,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합병으로 인한 삼성물산 주주들의 주가손실 손해배상 등 동일한 피해에 대한 투자자 손해배상 사건도 집단소송 제도가 필요한 사안이다. 검찰의 공소제기로 삼성그룹 내부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주력회사인 삼성물산의 경영권 승계를 목표로 이재용 부회장이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는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비율로 합병찬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주가조작, 시세조정 등의 여러 불법행위를 하였음이 드러나 증거확보에 유리한 소송이다. 하지만 삼성그룹 계열사의 직원, 하도급업체, 거래 관계 등으로 얽혀 있는 주주들은 선뜻 피해구제 소송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집단소송법은 당사자별로 일일이 개별 손해 입증을 하지 않고 통계적 손해 입증을 허용하고 있어서 대표 주주들의 집단소송 판결에 따라 1주당 피해액 등 통계적 손해액을 기준으로 모든 피해 주주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위 비료담합 손해배상 사건에서는 수십만 명의 피해자 중 100여 건 정도의 표본을 추출하여 표본적 손해액을 입증한 후 그 표본적 손해액을 기준으로 다른 모든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할 수도 있다.

 

이같이 집단소송법은 ‘집단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제도’가 아니라, ‘집단이 다투기 적합한 방식의 소송제도’를 도입하는 제도이다. 대기업과 경제적 약자가 대등한 입장에서 다투는 것을 전제로 진행되어 실질적 당사자 대등이 보장되지 않는 현재의 민사소송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기업과 다수 피해자 사이의 실질적 대등을 추구하는 새로운 방식의 소송제도이다.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개혁 입법이다.

 

‘징벌’이 아닌 ‘예방’을 위해 필요한 징벌적 손해배상

 

무릎꿇은 엄마, 휠체어에 의지한 아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 이준미씨(48세)가 아들 오우경(16세·중3)군과 함께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무릎을 꿇고 눈물로 호소했다. 이날 새벽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KTX를 타고 국회를 찾은 우경군의 어머니 이씨는 “시간이 없다. 20대 국회에서 가습기살균제 특별법 개정안을 원안대로 법사위에서 통과시켜 본회의에 상정되도록 눈물로 간곡히 호소한다”라며 목놓아 울었다. 우경군은 출생 당시 부산대 병원 중환자실에서 애경과 옥시 제품의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입고 폐손상에 이어 뇌손상도 입은 상태로 지금도 한 달 에 수 번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찬 바닥에 무릎을 꿇은 어머니 이씨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2018년 주행 중인 BMW 차량에서 긴급 대피하지 않았으면 운전자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차량 전소 화재사건이 28건이나 발생하였다. BMW는 리콜을 미루다 국토교통부의 조사가 진행되자 비로소 10만6000대 차량에 대해서 안전점검과 자발적 리콜을 하겠다는 계획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BMW는 미국과 영국에서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다른 사안이긴 했지만 미국에서는 2017년 11월 100만대, 영국에서는 2018년 5월 30만대의 자동차를 리콜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있는 미국과 영국에서는 부품결함으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리콜을 미루다 사고가 발생하면 거액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받기 때문에 판매 차량 전부에 대해서 즉각 리콜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부품결함을 알고 리콜을 미루었다 하여 배상 책임이 차이가 없으므로 미리 책임을 밝히고 자발적으로 나설 유인이 없었다. 이렇게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사안을 미리 점검하고 즉각 피해 예방에 나서도록 하는 ‘예방’의 유인이 크다.

 

옥시는 카펫 청소용 물질로 개발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으로 한국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하였는데, PHMG는 인체 유해성 논란이 있어 유럽에서는 생활용품으로는 판매되지 않았다. 2012년 질병관리본부는 동물흡입독성 실험을 거쳐 폐손상의 원인물질로 확인하여 PHMG로 제조된 가습기 살균제 수거명령을 내렸는데, 이미 10여만 명이 넘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손상 환자가 발생한 상태였다.

 

옥시도 자체 실험을 통해 PHMG가 폐손상 원인물질이라는 것을 확인했는데도 이를 은폐하였다. 옥시의 본사가 있는 영국에서는 제조물의 결함을 알면서도 그 결함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결과 생명·신체에 중대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된다. 영국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면 옥시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손상 사실에 대해서 즉각 자체 실험결과를 발표하고 피해배상에 나섰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2011년으로부터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피해배상 소송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한국은 2018년 이후에 발생한 위와 같은 제조물 결함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인체에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는 제도를 제조물 책임법에 도입하였다.

 

쓸데없는 소송 남발? 걱정 안해도 된다 

 

한국에서는 3배 징벌적 손해배상이 2011년 하도급법의 기술유용 금지위반에 대해서 처음 도입되었는데, 대기업이 부품·소재를 납품하는 중소기업으로부터 납품의 대가로 기술을 탈취하는 관행을 예방하는 효과가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뒤 부정경쟁방지법 등 대기업의 불공정행위 방지 법제와 제조물책임법, 신용정보보호법 등 소비자 보호 법제에 확산되었다.

 

재계는 소송의 남발을 우려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은 소비자 등에게 피해가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가해행위를 하는 고의적 불법행위에만 적용된다. 이중 처벌이라는 반론도 있지만 옥시가 가습기살균제 사건으로 받은 벌금이 1억5000만 원에 불과할 정도이어서, 고의 불법행위로 큰 이익을 얻을 유인을 차단할 효과가 낮다. 그래서 고의 불법행위로 얻은 이익을 반드시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재계는 소송 남발로 기업활동이 위축된다며 집단소송법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우려는 현재 증권관계 집단소송법을 보면 불식된다. 이 법에서 투자자 집단소송을 허용하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법원의 소송허가 결정을 받는 데만 7~8년이 걸려 법이 도입된 후 10년이 넘었지만 이제 겨우 1건의 판결이 확정된 상태이다.

 

가장 많은 집단소송 사건이 예상된다고 했던 투자자 집단소송에서도 10년 동안 제기된 집단소송이 10여 건에 불과하다. 향후 활성화된다 하더라도 재계가 엄살을 부리는 것처럼 수많은 집단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집단소송에 적합하지 않은 소송은 법원의 소송허가 단계에서 걸러질 것이기 때문에 남소(濫訴)라고 할 정도로 무의미한 소송이 마구 허용될 가능성은 더더욱 없다. 대기업의 입장에서도 산발적으로 많은 소송에 응소하는 것보다 하나의 집단소송에 집중하여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흩어져 있는 다수의 이익이 침해되어, 각 개인이 제기할 실익이 크지 않았던 사안들이 집단소송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집단소송법을 도입하자는 이유 중의 하나도 이러한 흩어져 있는 다수의 이익인 공익을 보호하자는 취지가 있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나 농협 등의 고객정보 유출 등 개인정보·신용정보 보호 위반에 대한 소액의 위자료 청구, 호날두가 출전하지 않기로 한 것을 알면서도 호날두 출전 티켓을 판매한 업체를 상대로 한 소액의 위자료 청구 등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작은 권리 찾기형 소송이 종종 제기되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공익은 곧 국익을 의미했고, 공동체 구성원 다수의 흩어져 있는 이익은 공익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오히려 다수의 이익이 희생되고 기업들이 그 희생을 딛고 경쟁력 있는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경제정의, 불공정 근절, 독점·담합 등으로부터 공정거래질서의 보호, 금융 공공성 확보 등의 공익적 가치가 침해될 때 사회공동체 구성원 각 개인이 입는 피해는 작더라도 우리 사회공동체의 유지를 위해서는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공정경제 3법이 아닌, 공정경제 5법이 필요하다

 

정부·여당은 공정경제를 실현할 핵심 제도로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통합감독법의 공정경제 3법을 입법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그동안 재계가 강력히 반발해 왔던 집단소송제, 지주회사 손자회사 보유금지, 전속고발제 전면폐지, 중소상공인단체의 집단교섭권 보장 등의 핵심사안들은 대부분 빠져 있다. 재계가 강력 반발하는 공정경제 실현제도는 대부분 빼고 정부안이 만들어졌는데, 재계가 공정경제 3법 정부안에 반대하는 태도를 취하는 모습은 뭔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재계의 반발로 정부·여당이 당론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법안이 집단소송법과 징벌적 손해배상이다. 기업 내부의 이사회 지배구조나 재벌 기업집단 지배체계를 개혁하는 상법이나 공정거래법 분야는 재벌 입장에서는 그동안 확보해온 기업과 기업집단 내에서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내심의 자신감이 있는 반면, 집단소송이나 징벌적 손해배상은 재벌이 통제할 수 없는 기업집단 밖의 소비자단체, 환경단체, 시민단체, 노동조합, 공익적인 변호사단체 등을 상대하는 것이어서 재벌들이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재벌·대기업에 대항하여 시장의 공정한 경쟁질서를 담보할 집단소송법이나 징벌적 손해배상이야말로 공정경제의 가장 핵심적인 제도이다. 이제 우리는 정부·여당이 세운 공정경제 3법의 프레임을 뛰어넘어 공정경제 5법의 경제민주화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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