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센터 기타(ef) 1998-06-08   993

[김대중정부 100일 평가] 경제분야(1)

한겨레 신문 – 참여연대 공동기획 대토론회(6월 8일)

“김대중 정부 100일을 진단한다”

2부 경제분야 : 경제정책 기조,재벌개혁,금융개혁,IMF추가협상

사회 : 박영호(한신대 경제학)

발제 : 이병천(강원대 경제학), 김균(고려대 경제학)

-발표 : 이병천

토론 : 윤원배(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좌승희(한국경제연구원 원장)/ 허영구(민주노총 부위원장)/정운찬(서울대 경제학)/장하성(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 고려대 경영학)

[발제문]

IMF 관리체제와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

이병천(강원대, 경제학), 김균(고려대, 경제학)

[글의 순서]

머리말

1. IMF의 덫에 갇힌 민주적 시장경제 : 종속적 신자유주의로의 경도

2. 구조조정과 경제 위기의 심화

3. 고통분담의 불공평과 노사정 협력의 취약한 구조

4. 전면 대외 개방과 국민경제 공동화의 위험

5. 구조조정 주도권의 회복과 열린 사고: 한국형 발전모델은 끝났는가

머리말

김대중 정부의 출현으로 한국은 헌정사상 최초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실현하였다. 이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큰 진전이며, 이에 부응하여 새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동시 발전을 국정 지표로 제시하고, 경제정책의 기본 이념을 ‘민주적 시장경제’로 내걸었다. 그렇지만 공교롭게도 평화적 정권 교체와 때를 같이하여 한국은 6.25 이래 최대의 국난으로까지 말해지는 유례없는 경제 위기를 맞았고, IMF 관리체제에 놓였다. 김대중 정부는 어려운 조건아래서도 위기 수습을 위해 노사정 위원회를 출범시켰고, 또 긴급한 외환유동성 위기를 수습하는 데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현재 우리 경제는 위환 위기에서는 일단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경제의 위기는 오히려 더욱 심화되는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구조 조정의 고통이 공평하게 분담되고 있지 않다는 데 대한 불만과 항의의 목소리 또한 매우 높다. 정부는 외자 유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위기 극복책에 집착하여 경제 주권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전면개방정책으로 나가고 있다. 그리하여 현정부는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충실히 수행하는 모범생으로서, 한국경제구조를 대외 종속적인 신자유주의 질서로 개편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지는 불과 100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간 IMF 관리체제아래서 현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경제 정책의 기본 윤곽은 이미 드러 난 것으로 보인다. 이 정책은 현재 뿐만 아니라, 21세기로 넘어가는 우리 사회 구성원의 삶을 깊히 규정할 중대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정책들은 과연 과연 우리 경제가 위기 상황에서 다시 회생하여 경제 선진화와 민주화로 나아갈 수 있는 바른 길인가. 이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의문이 있다. 이 글에서는 현정부가 100일간 추진하였고, 또 앞으로 예정하고 있는 경제 정책의 문제점을 경제 위기 대응, 고통분담의 공평성, 대외 개방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검토하려고 한다. 그러한 가운데, 현정부의 정책이 당면 경제위기 해결책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국경제의 장기발전 전망의 측면에서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지적하려고 한다.

1. IMF의 덫에 갇힌 민주적 시장경제 : 종속적 신자유주의로의 경도

1.1. 이번 위기는 직접적으로는 외환 유동성 위기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고, 한국경제가 IMF 관리체제 아래 놓이게 된 것도 이 ㄸ문이다. 그러나 왜 외환 유동성위기에 빠지게 되었는가 하면,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단순하지 않다. 적어도 세가지 계열의 원인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첫째, 금융 부문에서 무분별한 금융자유화이고, 둘ㅉ는 신자유주의적 국제금융질서하의 단기투기자본의 공세이다. 세ㅉ는 실물 부문에서 재벌들의 방만한 과다 차입과 과잉 투자 경향이다. 이들 원인은 동남아 위기의 전염효과, 정책 운용상의 실패 등과 결합하여 서로 상승 작용하면서 위기를 응축, 폭발시켰다. 그런데 현재 한국경제 원인에 대한 주류 시장주의적 해석은 첫ㅉ, 둘ㅉ 원인을 무시하고, 위기의 원인과 책임을 세ㅉ 요인, 그것도 더욱 좁게 한국의 금융, 기업 조직과 관행의 낙후성에 돌리는 경향이 있다.

1.2. 한국경제정책의 기조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가관리 발전주의로부터 시장 경제화와 개방화로 일변하였는데, 점진적으로 추진되던 이 정책 전환은 김영삼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정책에 따라 급진전되었다. 이것은 경제정책 기조의 질적 변화라 할 만한 것으로서 이것이 금융제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수 있었던 정부능력을 심각하게 훼손시켰다. 김영삼정부는 투기로 넘실대는 신자유주의적 국제금융질서의 속성을 잘 알지도 못한 채 어설픈 시장맹신주의와 무모한 개방정책으로 나갔다. 구정부는 OECD 가입권과 금융 자유화를 교환하다시피하여, 국내외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크게 완화시켰다. 금융자유화의 범위는 단기금융자본의 이동에까지 확대되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적 국제금융질서에 한국 경제를 그대로 노출시켜 단기 투기자본의 유출입에 대한 국가의 규제력을 제거해 버린 것과 다름이 없는 중요한 조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정부는 이에 대비하는 아무런 제도적 감독체계를 마련하지 않았고, 이것이 외환위기로 이어지는 통로가 되었다. 종금사를 비롯한 금융기관의 투기적 위험 경영이 방치되고, 국제금융자본이 집단적으로 철수하면서 국민경제 전체가 외환 유동성위기에 빠지게 된 것이다.

1.3 다같이 신자유주의적 국제금융질서속에 들어 있다고 하더라도 대만이 우리와 같은 곤경을 겪지 않은 것은 일국의 대응 방식이 갖는 중요성을 잘 말해 준다. 그러나 이것이 경제위기의 원인제공자로서 신자유주의적 국제금융질서와 투기자본의 행태를 면책케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투기적 금융자본의 혼란스런 목마장과 같이 되어 있는 현재의 국제금융질서야말로 자기조절적 시장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지구시민이 시장의 폭력성과 투기성, 변덕성을 제어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한국 경제의 기초 여건은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고, GNP 대비 외채 비율도 22% ( 1996년)으로서 멕시코 35%, 인도네시아 53%, 말레이시아 39%, 필리핀 64%, 태국 50% 에 비해 매우 낮았다. 외환위기 발발의 진원지는 과도한 단기 외자의 유입이었다. 총외채 약 1500억달러중 단기외채가 60% 수준이었다. 종래 한국경제는 금융개방의 정도가 낮아서 국제금융자본의 투기적 공세에 노출되지 않는 건전한 체질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곤 하였지만, 금융자유화가 진전되면서 경제의 투기적 국제금융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상장시가총액에서 외국인의 비중은 13%였다.( 1997년 10월말). 그리고 국제금융자본은 1997년 1년동안 376억달러의 단기대출금을 회수해 갔는데, 이중 64%가 홍콩 증시 폭락사태이후 일거에 일어 났다. IMF도 경제 위기이전 한국의 경기 팽창기에 이러한 파국적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지 않았으며, 국제신용기관 또한 경기과열시에는 신용등급을 높게 매겨 과잉투자를 조장하는데 일조하고, 경기하강시에는 신용등급을 추락시켜 위기를 심화시킨 책임이 있다.

1.4 경제 위기의 발단은 실물 부문에서 한보 철강을 비롯한 대기업들의 연쇄 부도 사태였다. 이것은 재벌들의 외형확장 위주의 과다 차입과 과잉 투자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의 수출 주종 품목인 자동차, 반도체, 철강, 석유화학 등에서 세계 시장은 과잉투자와 과잉생산 상황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들의 차입경영과 과잉중복투자가 지속되었고, 이는 경쟁력의 약화, 수출 부진, 가격 폭락 사태를 초래했다. 그런데 이처럼 방만한 과다차입과 과잉투자가 이루어질수 있었던 것은 재벌 총수의 전제적 경영체제를 비롯한 기업지배구조와 관치 금융, 그리고 정경 유착에 기인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개발연대 전략산업에 대한 인허가와 정책 금융체계의 골격, 그리하여 국가의 재벌에 대한 금융지원과 실적 교환 제도는 90년대에는 이미 허물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재벌은 강대해져 그 투자행위는 정부의 통제를 크게 벗어나 있었고, 정부의 재벌에 대한 보험자- 감시자 역할은 사실상 포기되고 있었다. 업종전문화 정책의 실패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김영삼정부는 경성국가가 아니라 다분히 연성국가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국가-재벌 관계는 무능하고 약한 국가와 강한 재벌사이의 취약한 연합이었다. 그 때문에 김영삼 정부시기 경제질서와 정책의 문제점은 신용 할당을 매개로 한 정부- 재벌간의 보호자-감시자관계에 있었다기 보다는, 이 구제도형태의 골격은 와해되었으면서도, 새로운 규율제도는 형성되지 못한 데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고도성장을 가능케 한 요인과 위기를 유발한 요인은 연결되긴 하지만,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1.5 정부-재벌간의 이같이 변화된 관계는 재벌의 금융 구조 변화에서도 드러난다. 재벌 경영 자금은 제 2금융권과 해외에서 끌어들인 단기 자금에 크게 의존하였고, 이 부분에는 정부의 감독이 미치지 못했다. 단기 자금 의존 비중의 증대, 그리고 나아가서는 그것의 장기 투자로의 동원이라고 하는 안정성의 저하가 수익성 저하와 결합되어, 상호 채무보증으로 얽혀진 불량기업-우량기업 동반 부도를 초래한 주요한 요인이었다고 생각된다. 대기업들의 부도사태는 종금사를 중심으로 한 제2 금융권의 자금 회수로 이어졌고, 이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동반 부실화를 가속화시켰다. 이것이 ‘대외 신인도’의 저하와 투기자본의 집단철수를 가져와 외환 위기와 금융 위기를 초래한 또 하나의 통로였다.

1.6 이처럼 현 경제위기는 무모한 자유화 정책, 국제투기자본의 공세, 그리고 새로운 규율기제의 미성립상황속에서의 재벌들의 방만한 과다차입과 과잉투자 경향 등이 결합, 응축됨으로써 발생하였다. 긴박한 외환 위기상황에서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지 않을 수 없었고, IMF는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강력한 구조 개혁 프로그램을 강요하였다. 그런데 IMF의 위기 진단은 위기의 원인을 정부-은행- 재벌의 협력체제가 내포하고 있던 도적적 해이와 부정부패때문이라고 제한적이고 왜곡되게 보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 IMF의 위기 진단은 정부-은행-재벌관계에 대해서도 마치 개발년대식의 제도형태가 김영삼 정부 시기에도 존속되고 있었던 것처럼 잘못 파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영삼 정권의 무모한 대외개방 및 자본자유화 정책이 한국경제를 외환위기에 완전히 노출될 수밖에 없는 무방비적인 금융시스템을 초래했다는 측면과 단기성 국제금융자본에 고유한 투기적 위험성 측면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1.7 단기의 유동성 위기는 단기의 적절한 위기관리수단들을 동원하여 대응했어야 마땅했던 측면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IMF는 이를 대외개방과 자본자유화가 미진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구조적 문제로 파악하여 오히려 급진적 대외개방과 자본시장자유화를 위기 극복수단으로 강요하였다. 또한 IMF는 잘못된 편협하고 일면적인 위기 진단에 기초하여 긴축을 강요하였고, 금융과 기업구조에 내재한 도덕적 해이와 비효율성을 제거하기 위한 구조개혁의 원칙으로 미국식 시장제도와 원리의 도입, 자본자유화를 요구하였다.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낙후된 체제였기 때문에 위기가 발생하였으므로 그 해법은 자연히 ‘진짜’ 시장 구축이어야 한다는 것이 IMF의 기본발상이다. 또 그 시장은 미국식 시장이라는 것이며, 이를 위한 수단으로는 자본자유화와 강력한 긴축하의 단호한 구조조정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IMF의 프로그램은 이론상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미국과 국제금융자본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고 관철시키려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강조되지 않으면 안된다.

1.8 현정부의 경제정책의 기본 이념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동시 발전을 추구하는 것으로 제시되었으나, 이때 민주주의는 어떠한 민주주의이고, 시장은 어떠한 시장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설명이 제시되지 않았다. 그런데 근래 청와대의 설명(주: 천리안/열린정부/ 청와대/ 새정부 국정지표( 4)-경제정책의 기본이념)에 따르면, 민주적 시장경제는 기본적으로 개방적 경쟁 시장체제를 가르킨다. 즉 현단계의 한국경제는 시장경제적 요소와 과거 권위주의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비시장경제적 요소가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비시장경제적 요소를 제거하여 시장경제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주의 권익 보장을 통한 경영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고, 경제적 자유를 신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또 내외국인에게 차별없이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경제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1.9 이러한 현정부 경제 정책의 기본 이념은 실제로 실시되었거나 계획 중인 현실 정책의 내용과 대체로 부합하고 있다. 그간의 경제정책은 크게 보아 외환위기 극복, 노사정 위원회 구성, 4대 경제개혁 정책, 자본자유화 정책, 실업대책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먼저 외환위기 대응을 보면, 단기외채의 중장기로의 성공적 전환, 외평채의 순조로운 발행 등 정부의 적절한 노력과 대응의 결과 외환보유고가 크게 늘어나고 환율이 그런대로 안정되면서 작년 외환위기는 일단 진정되었다. 동아시아 각국의 외환시장이 여전히 동요하고 있음에 비할 때, 한국 외환 시장의 빠른 회복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국제금융환경이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외환위기의 재발가능성은 아직 상존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의 급속한 자본자유화 조치들로 인해서 국내외환시장은 제도적으로 위기이전보다 훨씬 더 외환위기에 취약하게 된 점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1.10 4대 경제개혁 정책 중 정부 및 공공 부문 개혁은 가장 대수술을 해야 할지 모르는데도, 가장 부진한 부분일 뿐 아니라 그 방향 조차도 제대로 설정되어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의 불신감도 이와 크게 관련되어 있다. 나머지 노동개혁, 금융개혁, 재벌개혁, 자본자유화 및 실업대책을 살펴보면, 현정부가 지향하는 한국경제의 새로운 모형이 종속적 신자유주의 시장질서임을 확인할 수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위해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를 도입하였다. 재벌개혁의 방법론은 기본적으로 재벌을 시장의 울타리 속에 가두어 시장의 힘으로 재벌개혁을 달성한다는 시장주의 해법이다. 또 정부가 재벌개혁을 담으려는 시장은 미국식 시장제도이다. 즉 기업감시체제로 제시되고 있는 기업경영권 시장의 활성화, 소액주주권한 강화, 사외이사제도 등은 주식시장 중심의 금융 체제가 전제될 때에만 가능한 방안들이다. 이와 함께 금융자본시장을 완전개방하고 외국인 직접투자를 전면허용하는 대외 완전자유화정책 스케줄을 확정하였다. 그리고 실업대책 역시 적극적 복지정책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유연 노동시장을 견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설치 차원의 대책인 것이다. 이러한 정책방향은 영국 대처리즘의 신자유주의 정책방향과 거의 그대로 일치한다. 이른바 대처혁명은 외국인 자본유치를 위해서 노동자 및 노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 계층의 권리를 현격히 축소시켰으며, 민영화 조치를 강력하게 실시하였고, 또 국내금융정책 및 재정정책을 국제금융시장의 판단에 따라 실시하여 결국 국내경제정책의 자율성을 포기하였다.

2. 구조조정과 경제위기의 심화

2.1. 새정부 100일을 회고해보면 작년 12월 시점의 예상치와 크게 빗나가는 것이 인플레이션, 불황, 실업의 진행 속도 등이다. 외환 위기의 수습에도 불구하고 예상과는 달리 경제 불황이 심화되고 있다. 처음 한국개발연구원을 비롯한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은 수입물가상승으로 인한 높은 물가상승을 예측하였으나 실적치는 오히려 일부 디플레이션조짐마져 보이고 있다. 반면 불황과 실업의 정도는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주 : 전월대비 금년도 1월중 소비자물가 상승률 2.4%, 2월중 1.7%, 3월중 -0.2%이었다. 이는 작년 12월의 환율급등으로 인한 물가상승 요인이 1/4분기 물가상승에 이미 거의 반영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앞으로 급격한 환율인상이 없는 한, 금년의 심각한 총수요 침체를 고려할 때 물가는 안정세를 유지할 것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주요 실물경제지표를 살펴보면, 금년도 1/4분기의 경우, 산업생산은 전년동기대비 7.8% 감소,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67.3%로 전년동기에 비해 12.5%포인트 감소하였다. 특히 3월중 제조업평균가동률 65.2%는 71년 지수작성이후 최저 수준이다. 1/4분기 설비투자 역시 전년동기 대비 31.9% 감소하였으며, 그 감소폭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반면 2월중 명목임금수준은 월평균 1,345천원으로 전년동월 대비 10.6%의 감소를 나타내, 노동자가계의 실질소득 감소폭은 20%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짐작된다.)

계절변동상 2/4분기부터는 증가세가 둔화될 것으로 보았던 실업은 이미 150만 명의 실업을 양산하고 있다. 이는 IMF의 처방이 얼마나 허술한 전제하에 짜여졌는지를 말해준다. 이처럼 불황의 진행이 예상보다 심각할 때 앞으로 기업 도산 및 부실화의 진행과 부실채권의 발생 속도 또한 예상보다 빠르고 그 규모도 클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금융구조 조정으로 부실채권이 해소되고 금융시스템의 정상화가 달성될 것이라고 보기도 대단히 힘들다. 현재 매분기 15조원 이상 규모로 급속히 늘어나는 금융기관 부실채권의 증가세를 그대로 두고 기왕의 부실채권만 정리한다는 것은 도둑을 막는다면서 뒷문을 열어둔 채 앞문만 잠그는 격이다. 무역금융지원 시스템이 붕괴됨으로써 수출조차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2.2. 현재 심화되고 있는 불황은 IMF에 의해 강요되고 새정부가 적극 추종한 재정 금융긴축과 고금리, 금융기관 BIS 자기 자본 비율 기준, 기업부채비율축소 정책에 의해, 신용 경색이 심화됨으로써 인위적으로 야기된 것으로 판단된다. 고금리 정책은 자본 유입을 통한 환율 안정을 목적으로 한 것이지만, 예측과는 달리 외국 자본도입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은 반면, 기업의 채무 부담만 가중시켰다. 높은 부채비율의 기업에게 고금리는 살인적인 것이 되어 기업들은 질식 상황으로 내몰리고, 그리하여 기업 도산과 금융기관 부실채권 누적이 동반되는 악순환이 초래되었다. 침체한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을 비롯하여 극도로 위축된 자산시장아래서 급격한 부채비율 감소가 강요되면서 자산 디플레가 초래되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세계은행의 수석 부총재인 조세프 스티글리츠조차 한국적 금융 여건하에서는 미국의 어느 유량 기업도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2.3 그렇지만 고금리못지 않게 문제가 되는 것은 은행들이 BIS 비율에 묶여 있다는 것이다. 금리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 경직적인 의무 비율때문에 금융기관들은 대출을 꺼리고 기대출 자금의 회수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고이자율과 저투자에 다시 투기적 화폐 퇴장까지 가세하였다.

그리하여 한은에서 자금이 방출되어도 이 자금은 기업으로 흘러가지 않고, 한은 금고로 다시 되돌아오고 있다. 금융시스템이 마비되어 기업과 금융의 동반 부실이 초래되는 새로운 경제 위기 심화의 악순환이 나타났다. 정부는 구조조정과정에는 당연히 조정 고통이 따르고, 이 고통 계곡을 꾹 참고 견뎌야 구조조정에 성공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경제는 단순히 거품을 제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발전 위기에 빠져 든 것으로 보인다. 이 위기는 장기복합 불황으로 되어 우리의 산업기반과 성장잠재력을 와해시킬 위험성이 있다.

2.4 IMF 긴축 정책은 원래 인위적으로 경제 침체를 강요하는 정책으로서, 경쟁 시장의 규율을 확립하여 경제 주체들로 하여금 이 적자 생존의 규율에 적응하게 함으로써 물가 안정과 국제수지 개선, 경제 회복을 도모하려는 정책이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이 없는 한계 기업은 마땅히 도산되어야 할 것으로 기대되고, 실업 또한 시장 규율을 확립하는 메커니즘의 일부로 파악된다. 이 정책의 핵심에는 가격 기구의 왜곡을 제거하여 정태적 배분적 효율성을 달성하며, 또 정태적 배분적 효율성이 거시 경제 수준의 생산적 효율성도 낳을 것이라는 시장지상주의적인 사고가 있다. 금융시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자율을 높여 시장 규제를 제거하면, 저축은 효율적으로 투자로 흘러 들어가 금융 시장에서 자원의 최적 배분이 달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지만 IMF의 기대와는 반대로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경제를 저투자-저생산-저고용-저지출-저소비-저생산의 ‘안정화 불황’, ‘긴축 불황’의 함정과 악순환에 빠트릴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이론적 가능성이 아니다. 이미 허다한 역사적 경험으로 드러 났으며, 이에 대해서는 IMF 스스로도 고백하고 있다.

2.5.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것은 IMF 프로그램이 한국 경제의 역사적, 제도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나라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프로그램을 한국에도 무차별적으로 강요한 데 있다. 한국의 경제 위기는 중남미국가들처럼 재정 적자누적과 과도한 물가상승을 겪는 가운데 발생한 것이 아니라, 민간 금융기관과 기업의 과다한 악성 단기 부채에서 비롯되었기 Eans에 긴축 정책은 처음부터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 처방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금융 재정 긴축정책은 시급히 정정되어야 할 것이다. 긴축을 풀어서 실물기반 및 시장의 붕괴를 막아야 한다. 경기가 수직 급강하여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판국에 외국자본의 유입을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신축적 경기조정 내지 부양정책은 불황 및 실업대책, 성공적 금융구조조정, 외자유입촉진의 세 측면의 효과를 고려할 때, 최단시일내에 시행해야 할 것이다.

2.6 물론 확장정책의 문제점이 있다. 인플레이션과 재정적자 증가를 수반할 것이지만,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이것이 아니다. 재정적자와 물가 상승을 감수하고 경제 위기를 완화시키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 기업구조조정에서 거품을 잔존시킬 우려가 있고, 외자 유입을 막을 우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구조 조정은 긴축정책이 아니라, 다른 정책 수단에 의거해야 한다. 우선 경제가 살아야 구조 조정도 있다. 그리고 이자율하향조정이 환율안정에 미칠 효과는 생각만큼 부정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외환시장이 정상적 시장원리에 따라 작동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환율 결정에 이자율요인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화공급과 수요는 이자율 이외의 요인, 특히 해외신인도에 좌우되고 있는 듯하다. 최근의 이자율과 환율의 동시하락은 그 증거의 일단이다. 외환위기이후 지금까지, 손님을 주인처럼, 외자유치를 위한 대대적인 제도 개편에도 불구하고, 유입실적이 극히 저조하고 해외신인도가 낮은 것은 경기 불황때문이다.

2.7 늦게서야 재경부는 신용 경색의 해소를 위해 은행의 기업 대출을 독려하고 나섰다. 기업대출실적과 연계하여 은행구조조정과정에서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유인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는 이 조치가 지금까지 시행해온 긴축 정책을 자기부정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본다.

이제 긴축을 완화할 시점이 되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긴축정책이 잘못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은행들은 BIS 비율에 묶여 있고, 또 기업들은 부채비율축소 요구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손으로는 BIS비율을 높이라고 강요해 놓고는, 다른 한손으로는 대출을 늘이라고, 그렇지 않으면 구조 조정에서 지원해주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 모순은 점점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초긴축정책 뿐만 아니라, 현재 ‘국제 기준’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고 있는 은행 BIS 자기자본비율 기준과 기업 부채비율 축소 정책이, 한국형 금융 제도와 기업 금융구조, 그리고 나아가서는 한국형 발전 모델의 역사적 특수성에 대한 인식을 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부채모델로 요약할 수 있는 한국적 특수성에 대해서는 제 5절에서 언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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