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정부의 ‘빚 탕감정책’ 획기적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정부의 ‘빚 탕감정책’ 획기적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독립적 채무조정기구, 금융기관과 채무조정기구의 분립, 법원 중심 파산·개인회생절차라는 중심이 확고해야
청년들에게는 더 짧은 채무조정기간의 특례를, 하우스푸어에게는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한 개인회생제도 개선으로 이어져야

 

정부(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28일 “「2단계 서민금융 지원 대책」으로서, 채무조정 제도를 전면 개편하겠습니다.”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하였다. 언뜻 보기에 정부 발표는 1200조원이 넘은 가계부채를 감안했을 때 개인채무조정제도의 전향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시민사회의 뜻에 발맞춰 개인 채무자의 부채를 탕감해 주는 방식에서 큰 변화를 보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발표한 개선방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복위 워크아웃) 채무자의 가용소득 수준에 따라 지원폭을 차등화하되, 이를 위해 현행 획일적 원금 감면율(50%) 적용 방식에서 “탄력적 원금 감면율(30%~60%) 적용 방식”으로 개선 ▲(동일기준으로 매입채권 감면율 조정) 대부업체·자산관리회사(AMC) 등이 다른 금융회사로부터 매입한 채권은 일반채권과 달리 최대 원금 감면율을 30%로 제한하고 있는데 근거 없이 낮은 감면율을 적용받던 매입채권에 대해서도 일반채권과 동일한 원금 감면율(30%~60%)을 적용 ▲(신복위 채무조정 시 소멸시효 완성 여부 점검) 소멸시효 완성 채권이 워크아웃 과정에 포함되어 불필요한 상환부담이 발생하지 않도록 채권자가 신고한 채권 중 최종 변제일이 5년 경과한 채권은 신복위가 별도로 개별 시효중단 조치(상환요청 등) 확인 후 채무조정안에 포함 여부를 판단(금융회사-신복위 간 확인시스템 구축) ▲(국민행복기금 채무조정) 보다 탄력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신복위 워크아웃과 동일하게 원금 감면율을 30%~60%로 적용 ▲(은행·저축은행 자체 워크아웃) 맞춤형 채무조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채무자의 상환능력을 연령·연체기간 등 다양한 지표를 반영하여 정밀하게 평가하여 계량화하고, 계량화된 점수별로 지원기준이 자동 결정되는 “맞춤형 지원 시스템” 구축 ▲(신용대출 119 프로그램 도입) 연체 발생 자체를 최소화하고, ‘빚을 내어 빚을 갚는’ 악순환의 고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하여 은행이 대출 만기 이전(통상 2개월)에 자체적으로 “연체 우려 고객”을 선정하여, 장기분할상환 등을 안내·지원(은행권 공동기준 마련) ▲(취약계층 지원 확대) 신복위·국민행복기금 채무조정시, 취약계층 중 상환능력이 결여된 기초수급자, 중증장애인에 대해서는 원금 감면율을 최대 90%까지 확대 ▲(법원 회생·파산절차와 연계 강화) 채무조정 신청자 중 소득이 부족한 취약계층 등에 대해서는 신복위·국민행복기금에 “법률지원단 설치”, 파산실비 지원 등을 통해 법원 절차와 연계를 활성화 등이 주된 내용이다.

 

그간 참여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등 관련단체는 심각한 가계부채문제의 해결책으로 법원을 통한 신속하고 과감한 도산제도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파산·개인회생절차의 개선이 필요함을 줄곧 주장해 왔다(파산제도의 경우 대심구조로 전환, 면제재산 및 면책채권의 범위 확대, 당연면책 제도의 도입, 당연복권기간의 단축 등, 개인회생의 경우 변제기간의 단축, 하우스푸어를 위한 주택담보대출채권을 포함한 변제계획안 인정 등. 자세한 내용은 서민금융6법 개정안 참고-http://goo.gl/9TgeZP).

 

또한 특별히 청년들에 대한 초단기의 개인회생절차를 도입해 청년세대의 빚을 더욱 과감하게 탕감해야 하고, 금융기능과 채무조정기능의 분립이라는 원칙 하에서 채권자 단체나 금융당국과는 독립적인 민간 채무조정기구, 즉 채무자에 우호적인 채무조정기구의 필요성, 중앙정부가 지원하고 지방의 실정에 맞게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되어 운영하는 금융복지시스템의 필요성도 역설해 왔다. 이러한 필요성에 비해 정부의 이번 발표는 금융기관 위주의 사고를 하는 금융위가 주도해서 준비하였다는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매우 부족하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방안 중 신복위 채무조정 대상 채무 중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은 점검을 하여 빼고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계획과 대부업체, 자산관리회사가 매입한 채권도 다른 채권과 동일하게 원금의 30%~60% 범위에서 감면하겠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정부(금융위)가 밝힌 자료를 보면 여러 허점이 있고, 개선안의 실효성에 의문이 간다. 우선 개인 빚 감면율과 관련해서 보면 중요한 것은 실제의 감면율이다. 그런데 신복위는 그동안 채무자 1인 평균감면율 등 실제의 감면율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를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다. 다만 이번 정부의 위 보도자료에서 2014년 기준으로 전체 원금 감면율은 20.1%라고 밝혔다. 신복위는 그 동안에도 무조건 원금의 50%까지 감면해 준 것이 아니라 신용회복지원협약에 따라 상각채권에 한해 최대 50%까지 감면했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이미 탄력적으로 감면율을 적용해 왔다는 것이다(국민행복기금의 기존 감면율은 원금의 30~50%). 그간 시민사회단체에서 신복위의 획일적 기준에 대해 문제를 삼은 것은 신복위 감면율이 원금의 최대 50%이어서 채무자의 다양한 처지에 상관없이 원금의 50%이상은 반드시 갚도록 유도한 점에 있다. 법원의 개인회생절차에서는 최저 변제의무가 따로 없고 채무자의 처지에 따라 원금의 일부를 나눠 갚고 나머지는 면책된다는 점에서 획일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탄력적 원금 감면율 30%~60%라는 것은 큰 의미를 찾기 어렵다.

 

이는 결론적으로 채무자의 다양한 처지를 고려하겠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원금의 40%이상은 갚도록 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에 비해 감면율의 수치가 10%포인트 상승하는 것은 맞다. 허나 이는 숫자상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 위 60%의 감면율이 최대한 적용된다는 것도 아니고, 은행 등 채권자들이 출연한 단체라는 점과 채무조정안이 승인되기 위해서는 채권자 1/2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조건에서 신복위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채무자에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알 수 없다. 실제 정부가 발표한 위 보도자료에 따르더라도 이번 개선조치로 인한 예상 감면율을 2014년 기준으로 4.5%포인트 상승한 24.6%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 발표자료에 비추어 보면 탄력적 감면율 30~60%는 개인채무조정제도에서 큰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빚을 갚는 데 쓸 수 있는 돈을 가용소득이라고 하는데 채무자의 월 소득에서 생활비로 인정하는 최저생계비의 150%를 공제하여 산정하다. 법원의 기준인데 신복위도 이를 따르고 있다. 작년 기준으로 최저생계비의 150%는 1인 가구는 약 월 925,920원, 2인 가구는 월 1,576,570원, 3인 가구는 월 1,649,680원이다. 그런데 신복위 공식발표에 따르면 작년에 신복위에 워크아웃을 신청한 채무자의 43.7%가 월소득 100만원이하였고, 100만원초과 150만원 이하의 신청자가 31.2%로 월소득 150만원 이하의 신청자가 전체의 74.9%를 차지했다. 실은 이들 신청자들은 가용소득이 없어 바로 파산절차로 안내해야 할 사람들한테 월 소득의 일부를 쪼개 원금의 50%이상을 10년 간 나눠갚도록 유도한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정부는 취약계약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다면서 기초수급자, 중증장애인에 대해서는 원금의 90%까지 감면하겠다고 생색을 냈다. 이들은 먹고 살기 매우 어려운 계층으로 확인된 사람들인데도 이들에게까지 원금의 10%을 변제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더 어려운 사람들은 법원의 파산·개인회생절차로 연계하겠다는 하는데 과연 누구를 대상으로 연계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또 한편 정부는 향후계획을 밝히며 “「서민금융생활지원법」이 보다 신속하고 효과적인 채무조정을 위하여 신복위 참여기관 확대(대형 대부업체 등), 공·사 채무조정간 연계 강화 등 제도 개선 내용을 담고 있는 만큼, 저소득·저신용 서민의 재기 지원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동 법의 조속한 입법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법안에는 채무자에게 극히 가혹한 조건으로 채무조정을 해 온 신복위를 법정기구로 격상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아가 위 법은 금융기관(서민금융기능)과 채무조정기구(신복위 법제화)라는 전혀 이질적인 두 기능을 사실상 금융위와 채권자인 금융회사들이 지배하는 서민금융진흥원에 두고 모두 쥐락펴락하려는 것으로 참여연대, 민변 민생위 등 서민금융관련단체가 적극 반대하는 법안이다. 정부의 이번 발표가 가계부채문제의 대책으로서 개인 빚을 획기적으로 탕감하려는 뜻이 아니라 위 법의 통과를 위한 꼼수가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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