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기업 활력 촉진 제고를 위한 특별법안(일명 ‘원샷법’) 제정에 대한 입장

원샷법, 재벌기업 적용배제, 소규모 합병 등 독소조항 철저히 제거하지 않으면 처리 불가

현행 제도와의 실질적 차이는 주주 권리 약화 조항 뿐
원샷법 지연 때문에 기업구조조정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
기업 지배구조나 민사소송 절차에 관한 선진국과의 차이를 무시한 주식매수청구권 배제 주장은 설득력 없어

 

최근 정부와 여당이 일부 쟁점 법안의 처리를 둘러싸고 마치 국회를 “거수기” 쯤으로 간주하는 구태를 부활시키고 있다. 특히 쟁점 법안의 상당수는 시대의 조류인 경제민주화에 역행하거나, 명목상의 구호인 “경제살리기”와 큰 관련이 없는 것들도 있다. 원샷법이 그 대표적 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부소장 김성진 변호사)는 많은 독소조항을 내포하고 있는 이 법안이 졸속으로 처리되거나, 정략적 계산에 따른 주고받기식의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 법안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원샷법의 핵심 효과는 결국 주주총회 생략에 의한 주주권 약화이다. 이 법안의 핵심적인 내용은 법안 제15조 이하에 제시된 상법의 예외를 규정한 조항들이다. 이 조항들은 기업의 분할과 합병 등 주주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주주총회 없이도 기업조직을 변경할 수 있도록 특혜를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지목되는 안 제16조(소규모 합병)의 경우 존속회사 규모의 20% 이내의 회사를 합병할 때는 주주총회 없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가능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시가총액이 약 200조원에 달하는 삼성전자의 경우 그 20%는 40조원에 달한다. 이 정도 규모의 회사를 합병하면서 이를 “소규모 합병”이라고 억지로 탈을 씌워 주주총회를 생략하려고 하는 것은 소수주주의 권익을 중대하게 침해할 소지가 매우 크다. 

 

합병의 경우 지배주주의 지분 비율이 두 회사 간에 차이를 보일 수 있으므로 합병 비율의 불공정성 문제가 제기될 개연성이 농후하다. 상법 교과서(예를 들어 송옥렬 저, 『상법강의』 제5판, 홍문사, p.1191)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합병은 기업집단 내에서 계열사 사이에서 이루어지는데, 이 경우 합병비율이 독립적인 협상으로 정해지지 않고, 지배주주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자의적으로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하여 합병비율이 불공정할 수 있는 이론적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현실적으로도 합병 비율의 불공정성은 지난 7월에 있었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간의 합병에서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된 바 있다.

 

특히 자기주식을 경영권 승계나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 강화에 악용하는 사례가 계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기업의 인적분할시 분할회사가 보유한 자기주식에 무조건적으로 신주를 배정하는 제도상의 허점을 이용하여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높이는 행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호남석유화학과 KP케미컬의 합병 사례에서 보듯이 회사의 합병시, 자사주 보유 지분을 제외한 주주에게만 신주를 발행하여 신주 발행물량을 축소함으로써 소규모합병의 요건(현행 상법에 따르면 존속회사가 소멸회사 주주에 발행해줘야 하는 신주가 존속회사 발행주식 10%이하)을 우회하는 편법이 벌어지고 있다. 원샷법 자체의 문제점 뿐 아니라 당해 조항이 기존 제도의 미비점들과 결합되어 파생시킬 문제를 더욱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에서 기업 간의 합병, 특히 동일기업집단 내 계열사 간 합병의 경우에는 섣불리 주주총회 개최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원샷법의 주주총회 생략 조항들은 모두 재검토 되어야 하며, 대표적인 독소 조항인 제16조(소규모 합병)는 반드시 삭제되어야 한다.

 

또한 원샷법이 없으면 사업재편(또는 구조조정)이 안 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 할 수 있다. 이 법안의 통과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마치 이 법안이 통과되지 않거나 심지어 지연되기라도 하면, 공급 과잉 상태에 있는 우리나라 산업에 큰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매우 거리가 먼 주장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 법의 핵심적인 조항은 주주총회를 생략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대상 기업이 주주총회를 정상적으로 개최하려고만 한다면 원샷법이 없어도 얼마든지 상법상의 합병, 삼각합병, 소규모 합병 조항 등을 이용해서 사업재편을 할 수 있다. 따라서 마치 이 법안이 통과되면 어떤 특정한 합병 형태가 가능한데 이 법안이 통과 안 되면 그런 합병 형태가 불가능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법안의 내용을 중대하게 왜곡하는 것이다.

 

심지어 법안 통과를 재촉하는 측에서 예로 드는 조선사나 건설회사의 경우 상당수는 애초에 이법의 적용 대상 자체가 아니다. 대우조선해양처럼 이미 대규모로 부실이 진행된 기업은 “정상적인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원샷법에서 적용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샷법이 적용되지도 않을 기업을 예로 들면서 원샷법의 통과를 재촉하는 것은 논리를 무시한 막가파식 주장일 뿐이다. 

 

주식매수청구권 불허 주장은 선진국과의 제도적 차이를 무시한 비현실적 주장일 뿐이다. 원샷법이 소수주주권을 약화시키는 또 다른 특성은 주식매수청구권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논거로 미국이나 독일의 예를 들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하나만 보고 전체를 보지 않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진 잘못된 주장일 뿐이다. 미국이나 독일의 경우 기업 경영자의 잘못된 행동을 감시하는 일상적인 장치가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잘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이사의 충실의무 법리가 잘 발달되어 있고, 위법한 행위가 실행될 당시에 단 1주의 주식만 가진 주주도 회사 또는 자회사의 이사를 상대로 (이중)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충분한 증거조사(discovery)를 진행할 수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이중 이사회 제도를 통해 경영자의 의사결정에 대해 노동자에 의한 추가적인 견제장치가 구비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이런 제도가 불비하기 짝이 없다. 뿐만 아니라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대선 공약을 내걸었던 박 대통령은 아직까지 이의 통과를 위해 어떠한 가시적인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이나 독일에는 총수의 이해관계 앞에서는 이성적인 판단능력 자체를 상실하는 재벌집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주식매수청구권은 이런 척박한 현실 속에서 소수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볼 때, 원샷법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것은 입법 취지가 구현하고자 하는 “정상적인 기업의 사업재편” 효과는 크지 않은 채, 부당하게 소수 주주의 권리를 중대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자명하다. 따라서 이 법안은 실질적으로 폐기되어야 한다. 특히 주주의 권익을 침해하는 독소조항들은 철저하고 완전하게 삭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지혜를 합하여 구조조정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전정한 의미에서의 사업구조개편 지원법을 만들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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