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에 대한 시민 사회 종교단체 성명

재벌의 전면개혁과 재벌 총수의 경영일선으로부터의 퇴진을 촉구한다

최근 재벌기업들의 개혁이 우리 사회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의 국가적 위기와 관련하여 재벌의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조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른바 기업구조조정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재벌의 몇몇 개혁 방안이, 현재와 같은 초유의 위기상황을 가져온 그둘의 책임을 생각할 때 과연 충분하고 온당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재벌개혁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상호지급보증 해소, 결합재무제표 도입 등의 조치를 통해 일가족의 대규모 기업군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정상적인 시장경제하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개혁조치가 왜 더 빨리 추진되지 못했는지, 그리고 과연 현재 재벌들의 자기개혁 노력이 기만적이지는 않은지를 예리하게 물어야 한다.

현 경제파탄에 대한 재벌의 책임은 너무도 명백하다. 재벌의 과다차입경영으로 인한 금융부실이 현 금융, 외환위기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제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총수독재하에서 이루어지는 투자와 경영의 전횡, 그로 인한 비효율성, 변칙적인 경영권, 재산의 세습구조 등 구태의연한 족벌경영이 경제전반에 엄청난 부담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동안 개혁적인 시민.사회단체의 일관된 비판과 요구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를 막지 못했다. 그 비리와 폐혜가 얼마나 심하면 IMF가 재벌개혁을 핵심적 요구사항으로 제시하고 있겠는가.

우리 시민·사회·종교단체는 현 경제위기의 극복을 위해서는 철저한 원인 및 책임규명, 그리고 재벌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필수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 재벌 총수들은 경영일선으로부터 퇴진해야 한다

재벌총수 전횡적 족벌경영은 현재의 경제위기를 불러일으킨 주범이다. 부실경영, 변칙세습, 정경유착, 경제파탄의 근원에는 재벌 총수의 무능한 독재가 자리잡고 있다. 이 점을 숨기고 정리해고제 도입을 내세우며 마치 기업부실화의 책임이 다른데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재벌 총수의 책임을 엄중히 추궁하고 이에 상응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어떻게 고통분담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재벌총수들은 경영일선에서 즉각 물러나고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통해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해서 재벌을 전면 개혁해야 한다.

■ 재벌들의 변칙적인 경영권 및 재산의 세습을 즉각 중단시켜야 한다

총수지배체제는 전문경영인들을 소외시키고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2세, 3세에게 절대권력을 비정상적으로 세습시키면서 그 모순을 더욱 확대.심화시켜왔다. 특히 재산과 경영권의 변칙세습과정에는 막대한 조세포탈을 동반하는 명백한 불법행위가 개입되는데 대부분 지금까지 법의 심판에서 벗어나 있었다. 대기업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진행된 변칙세습에 대한 취소와 세금포탈에 대한 엄중한 책임추궁이 있어야 한다. 단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전권을 마음대로 휘두르게 되는 재산과 경영권의 ‘왕조세습’적인 대물림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 기업경영의 정상화를 위해서 재벌들이 부당하게 축적한 재산을 우선 투입해야 한다

재벌들이 진정으로 경제위기의 책임을 지고 고통을 분담할 의지가 있다면, 총수와 그 일가족들이 그동안 부당하게 축적한 재산을 즉각 차입금상환과 경영정상화 자금으로 투입하여야 한다. 재벌총수들은 대부분의 재산이 주식에 투자되어 있기 때문에 남은 재산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믿는 국민은 거의 없다. 이미 김대중 당선자도 재벌총수의 사재를 기업경영에 투자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만큼, 재벌들은 적극적인 자기쇄신의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 경제개혁의 의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김대중당선자측은 이제까지 발표된 상호지급보증 해소, 소액주주권리 강화 등 재벌개혁방안을 조속히 추진해야 하며, 이번 개혁안에 포함되지 않은 비서실·기획조정실 해체를 포함한 기업지배구조 개편방안, 노사공동결정법과 같은 경영참가제도의 도입 등 종합적인 개혁을 추진해야 할것이다. 특히 재벌 소유의 언론사와 공익재단을 재벌구조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지 않는다면 재벌개혁의 의미는 상당히 퇴색될 것이다. 아울러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을 근본적으로 차단시킬수 있는 종합적인 부패방지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한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전문경영인제도의 도입/ 총수의 퇴진과 세습경영의 근절/ 정경유착의 근절/ 노사공동결정제의 도입/ 기업소유 언론사의 독립 / 소액주주권의 강화 – 이러한 과제야말로 현재 당면한 경제개혁의 핵심 의제이다. 재벌개혁을 촉구하는 시민.사회.종교단체들은 이러한 핵심 개혁의제가 전면적으로 제기되고 해결되기를 기대하면서, 재벌의 근본적인 개혁을 도외시하면서 정리해고제의 입법화를 서두르는 것은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올바른 처방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경제개혁의 의제를 바로잡아야 경제회복의 길이 열릴 것이다.

1998. 1. 30

기독교사회선교협의회, 녹색소비자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보건의료단체대표자회의, 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주거권실현을위한국민연합, 참여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노동연구단체협의회, 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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