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해방구’에 지나지 않는 기업도시 건설 제안

전경련은 투자와 고용 확대를 빌미로 특정기업의 이익 요구 말아야

1. 전경련이 지난 15일 기업도시건설을 위한 정책포럼에서 제안한 기업도시 건설 특별법 제정안에 대해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입을 모아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기업도시 건설은 결국 투자확대와 고용증대를 빌미로 그간 재계가 요구한 각종 규제완화와 개혁후퇴를 종합선물세트 식으로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참여연대는 토지개발 및 경영, 세제, 노동, 환경, 교육, 의료 등과 관련한 모든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결국 ‘재벌 해방구’에 지나지 않는 기업도시 건설을 공공연히 요구하는 재계를 강력하게 규탄하며, 이에 대해 최소한의 검토조차 없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는 정부와 여당의 각성을 촉구한다.

2. 한마디로 전경련이 제안하는 기업도시 건설 특별법안은 재벌들의 기존 요구사항을 집대성하고 있다. 이렇게 무리한 요구를 강행하는 것은 수출중심의 불균형 성장을 개선하지도 못하고 내수부진 타개를 위한 투자활성화도 이루지 못한 채 모든 국토를 투기장화하여 개발이익을 독점하려는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더욱이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기업도시 건설을 주도할 수 있는 기업은 소수 거대재벌,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삼성그룹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기업도시가 아니라 ‘삼성시’를 위한 특별법을 요구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전경련은 더 이상 투자 위축과 고용 불안을 볼모로 특정재벌의 이익을 재계 일반의 이익, 나아가 국민경제 전체의 이익으로 포장해서는 안된다. 전경련이 ‘삼경련’으로 불리고 있는 현실에 대해 철저한 자기반성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전경련은 국민경제적 이익은 물론 기업 일반의 이익마저도 대변하지 못할 것이다. 전경련은 현재의 투자 침체와 고용 불안이 ‘재벌 해방구’ 건설과 같은 방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음을 은폐해서는 안된다. 전경련의 환골탈태를 촉구한다.

3. 아울러 참여연대는 재계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 대통령과 정부가 단기적 시각에서 무원칙하게 접근하는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계의 특혜요구가 국가의 기본 법질서마저 무시하는 수준으로까지 비약하게 된 근본배경을 되짚어보아야 한다. 여기에 ‘기업하기 좋은 환경’ 또는 ‘상생의 뉴딜프로젝트’ 등 그 어떤 이름을 붙이든 간에 결국 재벌개혁 후퇴와 재벌의 투자확대를 ‘빅딜’했던 것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대통령이 지난 18일 전경련 주최 보고회에 참석하여 기업도시 건설은 수도권과 충청지역을 제외한 지역으로 한정될 것이며 환경·노동·인권 관련 규제완화는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과연 이 약속이 얼마나 충실히 지켜질 것인지는 벌써부터 의심받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을 단지 홍보 부족 탓으로 돌리는 과거정부의 전철을 노무현 정부 역시 되풀이하고 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개혁의 원칙, 아니 법질서의 근간이 도전 받고 있는 상황을 대통령이 자초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이헌재 경제 부총리는 기업도시 건설이 건설경기와 내수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명한 바 있다. 이는 경제부처의 수장 자신이 기업도시를 또 다른 형태의 경기부양책으로 고려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그러나 건설경기 진작을 통한 경기부양책은 예외 없이 또 다른 경제위기를 불러왔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국민의 정부가 일으킨 부동산 버블의 여파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기업도시와 같은 특권적 요구를 내세운 것에 전경련만 탓할 일이 아니다. 결국 대통령과 정부가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상생의 뉴딜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수혜자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비용부담자의 목소리부터 경청할 것을 촉구한다.

4. 보다 구체적으로, 전경련의 기업도시 건설 관련 규제완화 요구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소수 재벌을 위한 경제자유구역 내지 치외법권 요구와 다름없다. 따라서 참여연대는 기업도시 건설 특별법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 내지 철회를 요구한다.

기업도시 토지수용권 및 조성토지 처분과 주택공급 결정권 부여

토지수용에 대한 권한, 조성된 토지의 처분 방식과 가격결정권한은 공익적 목적을 위해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민간에 부여할 경우 기업에게는 막대한 이익이 돌아가고 국민들에게는 기본권 침해와 가격상승으로 인한 지출증가, 무분별한 난개발로 인한 환경피해, 계층별 수요를 고려하여 수립되어야 하는 주택공급정책의 왜곡이라는 다중의 피해를 줄 수 있다.

또한 전경련의 요구대로라면 기업도시라는 미명하에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을 해치면서 기업은 개발 이익을 사적으로 취득하고, 개발도시의 접근을 위하여 소요되는 도로, 통신망 등 제반 사회간접자본은 국가 또는 자치단체가 부담할 것이 분명하다. 결국 이 역시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에 불과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토지수용과 조성, 주택공급의 결정 문제는 국토의 균형개발과 환경보전, 주택공급계획이라는 공공 정책 목표 하에 이루어져야 하는 프로세스이다. 국가와 지방정부의 기본적 공공정책 수립권한을 민간에게 맡기겠다는 것은 국가와 지방정부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교육, 의료, 문화 등 각종 시설 설립 및 운영상의 특혜

전경련은 기업도시 내에서 학교, 병원을 비롯한 문화, 레저 시설을 영리법인이 자유롭게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 전경련이 주장하는 기업도시는 다수 국민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자칫 높은 구매력을 갖춘 소수 상류층만을 위한 특권도시로 변질될 위험을 안고 있다.

물론 부자가 곧 죄악시될 필요는 없으며 정당하게 축적된 부는 적법하게 지출될 수 있다. 그러나 다수 서민들의 경우 최소한의 삶의 질도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고급의료, 고급교육, 골프 등의 문화생활을 즐기는 데 각종 조세감면을 허용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소수의 특별한 소비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다수의 최소한의 삶의 질이 우선 보장되어야 하고, 따라서 소수는 세금감면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많은 세금을 부담하여야 할 것이다.

유연한 노동시장 확보

전경련은 기업도시 내 노동자들이 받게 될 주거, 문화 등의 혜택에 상응하여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파견근로, 대체근로, 정리해고의 완전한 자유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노동자의 기본권리 침해를 골조로 하여 기업도시를 세운다면 그 기업도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완전한 파견근로, 대체근로, 정리해고 허용이라는 비용부담을 전제로 노동자들이 얻게 될 이익은 무엇이며, 과연 그 이익이 비용에 상응할 수 있다는 것인가? 특정기업의 이익을 위한 특별법으로 노동자의 기본 권리와 기존 법체계를 무시하려는 재계의 의도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

기반시설 지원과 각종 조세 및 부담금의 감면

전경련은 기업도시에 대한 조세지원 혜택을 경제자유구역에 버금가는 파격적인 수준으로 부여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과는 달리 국내시장에의 파급효과가 매우 큰 특정 기업도시에 지나친 조세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자칫 경쟁적 조세감면 요구로 이어져 조세기반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으며, 산업경쟁력 강화보다는 부동산투기만을 부추길 위험성을 안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산업을 추진할 것인지가 빠져 있는 현재 전경련의 도시기업 건설계획은 부동산 개발계획에 불과하다. 조세감면 혜택이란 산업의 종류에 따라 검토하는 것으로 단순히 개발계획만 가지고 조세감면을 요구하는 것은 부동산 투기를 위해 무조건적인 혜택을 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기업도시 건설에 참여하는 일부 소수 기업에게 도시개발 및 기업운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조세지원을 해준다면, 결손세액을 중소기업과 봉급생활자 등으로부터 보충할 수밖에 없게 되어 조세형평성은 크게 후퇴할 것이다.

전경련의 기업도시에 대한 조세지원 요구는 조세피난처를 만들자는 발상에 불과하다. 전경련이 무리한 요구임을 뻔히 알면서도 기업도시 건설에 대해 특정지역 내 외국인투자에 버금가는 조세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결국 투자침체와 실업을 빌미로 최대한의 조세지원을 이끌어내자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기업규제 폐지 및 완화

또한 전경련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위해 기업도시 건설 관련 투자에 대해서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 또는 예외 인정하고 동일인 신용공여한도를 은행 자기자본의 40%로 상향조정하며 부채비율 200% 한도 역시 예외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전경련의 요구는 그동안 각종 재벌개혁정책을 투자의 걸림돌로 왜곡해왔던 재계의 전형적인 주장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신용공여한도제, 부채비율 제한 등은 설비 투자를 막는 규제가 아니라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지배력 남용을 억제하고 금융산업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이다. 이 제도들은 IMF 구제금융 사태의 근본원인이던 재벌의 구태를 개혁하기 위해 국민적 합의에 의해 도입되었으나, 그나마 각종 예외조항 도입 등으로 인해 실효성이 상당히 훼손된 바 있다. 여기에 투자 활성화라는 명분 하에 기업도시의 조성목적과 무관한 규제완화를 추가로 요구하는 것은 재벌 위주의 낡은 경제체제로 되돌아가려는 재계의 반개혁적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개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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