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진전과 한계 동시에 남긴 정무위의 공정거래법 개정안

국회 정무위원회(이하 “정무위”)는 오늘(12/9) 정무위원장 대안으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이변이 없는 한 국회 본회의에서도 무난히 통과될 전망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좌절된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이 2년만에 다시 제안돼 통과되었음에도 여전히 개선해야 할 사항은 남아있다. 우선 애초 논의 대상이 아니었던 일반지주회사의 기업형벤처캐피탈(Corporate Venture Capital: 이하 “CVC”) 소유 허용 규정이 무리하게 추가돼 통과된 반면, 정부안에 포함되어 있던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안은 흔적도 없이 삭제된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유감이다. 오늘 처리가 무산된 전속고발권 폐지 개정은 향후 반드시 재논의되어야 한다. 지주회사 의무지분율 상향 및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과 공익법인과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의결권 제한 규정 보완 역시 추가 입법과제로 남아있다. 사익편취 범위 확대, 법원의 자료제출명령권 도입 등 개선 사항에 대해서는 그 입법 취지가 잘 실현될 수 있도록 제도 안착에 만전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선 지난 20대 국회에도 동일한 내용의 법 개정안이 발의되었으나 재계와 보수야당,  언론의 반발로 무산되었음을 감안한다면,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이 상임위를 통과해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사익편취 규제 대상 기업 범위 확대와 법원의 자료제출명령권이 도입은 진일보한 내용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기존에 총수일가가  3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회사(비상장은 20%이상 지분 소유)에 적용되던 사익편취 규제를 총수일가가 20% 지분을 보유한 상장회사와 자회사까지 확대한 것은 재벌총수가 부당한 일감몰아주기 등으로 회사와 거래처 모두에게 손해를 입히면서 부당이득을 가져갈 여지를 제한할 것으로 기대된다. 불공정거래 행위 손해배상청구와 관련해 법원에 자료제출명령권한을 부여한 규정 역시 그동안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경제적 약자로서 갑질 피해를 당했음에도 증거 부재로인해 손해를 입증하지 못했던 전례를 개선할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제도 개선에 맞춰 정부당국은 재벌들의 일감몰아주기 등 시장감독을 더욱 철저히 하고, 사법부 역시 개정된 법 규정을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재판에 적극 적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정기국회에서 다루지 않았던 징벌적손해배상 배율 상향, 중소기업의 협상력 강화를 위한 담합행위 규제 개선, 독과점시장 구조개선 제도 등 역시 중요한 입법과제들이므로 추후 반드시 입법 논의되어야 한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확대, 법원의 자료제출명령권 등 긍정적
전속고발권 유지, 일반지주회사 CVC 허용 ‘꼼수’강행한 여당 책임 커

반면 더불어민주당이 안건조정위에서 정부안에 담긴 경성담합에 대한 전속고발권 폐지안을 그대로 가져가기로 합의한 것을 전체회의에서 뒤집고 철회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여당이 재계와 보수경제지의 압박에 굴복한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아도 할말이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정권 핵심인사들과 긴장 관계 있는 검찰을 견제하려는 셈법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제기되고 있다.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는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017년 대선 공약, 2020년 총선 공약으로 국민에게 지속적으로 공개 약속한 사항이다. 여당이 공약을 지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음에도 오히려 이를 철회하는 결정을 강행하는 모습을 보며 국민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이유를 불문하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본인들이 내세운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행태를 보인다면, 이는 결코 균형감있고 책임감있는 정당의 모습이라 볼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법안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비상식적인 모습을 반성·사과해야 한다.

여당에서 일방적으로 도입을 강행한 일반지주회사의 CVC 소유 허용 규정 역시 기대보다 우려가 더 크다. 비록 지주회사의 CVC의 지분 100% 보유를 의무화하고, 계열사 내 금융사의 CVC 출자를 금지하며, CVC가 총수일가가 출자한 회사 및 소속 계열사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방안이 추가되긴 했으나, 한국의 기형적 기업지배구조상 회사에 손해를 입혀서라도 총수의 이익에 봉사하려는 비이성적인 경영 행태가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시정조치 요구와 과징금, 과태료 등 제재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CVC를 통한 총수의  사익편취를 방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욱이 이번 법안에는 40% 이내로 외부출자를 받아 투자조합을 결성하고 이를 통해 투자를 할 수 있게 하는 등 금산분리의 원칙을 훼손하는 규정도 있어 문제이다. 넘쳐나는 유동성을 창의적 경제 영역에 대한 투자로 이끌어내려는 정책적인 노력보다는 재벌에 대한 특혜 제공으로 건강한 벤처투자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여당의 관점은 무책임하다. 백번양보해 재벌의 유보현금을 투자활성화에 활용하겠다는 의도로 CVC 소유를 허용한 것이라고 한다면, 외부투자금 없이 순수하게 재벌의 자금으로만 투자하도록 했으면 될 일이다. 이번 규제완화에도 투자 효과가 미진할 경우, 추가적인 규제완화 논의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재벌에게 물꼬를 터주는 식으로 CVC 추가 규제 완화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며, CVC를 악용한 사익추구나 공정거래질서 교란에 대해서도 철저한 감독이 요구된다.  

 

지주회사 기준,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대상 확대,

공익법인과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의결권 제한 강화 등 추가 과제 남아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담긴 몇몇 개혁 사항에 대한 추가 과제들도 남아있다.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가 다시 논의되어야함은 물론이고, 지주회사 지분율 상향과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 제한 규정 역시 추가 입법이 필요하다. 자회사·손자회사에 대한 지주회사의 의무지분율을 상향(상장 20%→30%, 비상장 40%→50%)하는 방향으로 규제가 강화되었음에도 이번 공정거래법 시행 전에 이미 지주회사로 지정된 회사는 법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 제한 역시 법 시행 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통지받는 기업집단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이는 새롭게 규제대상에 편입되는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기도 하거니와 보유지분을 초과해 행사되는 재벌총수의 과도한 지배력 억제, 기형적 기업지배구조 해소, 무분별한 계열사 확장을 통한 경제력 집중을 방지 등 제도의 취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

공익법인의 계열사 의결권 행사 제한 규정 신설 역시 공익법인을 이용한 재벌총수의 지배력 확대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진일보한 개정 사항으로 평가되나 추가 개정이 필요하다. 이번에 처리될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공익법인의 의결권 제한에도 불구하고 임원의 선임 또는 해임, 정관 변경, 다른회사로의 합병 및 사업양도 등 기업소유와 지배구조상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의결권이 여전히 15% 보장된다. 투기자본으로부터의 경영권 방어를 공익법인의 의결권을 최소한이라도 보장해야한다는 주장은 억지에 불과하다. 재벌총수의 경영권 방어는 공익법인 등을 사사로이 동원하는 편법적 방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합리적인 경영과 기업가치 제고로 주주들의 지지와 우호지분 확보로 해결해야 할 사항이다. 따라서 공익법인의 의결권 제한에 있어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이는 동일한 예외규정을 두고 있는 현행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의결권 제한 규정에 대해서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마지막으로 법안 처리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보여준 일방적인 태도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정무위 전체회의 전에 열린 안건조정위 회의에서는 정부의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대로 경성담합행위에 대해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안을 유지하고, 일반지주회사의 CVC 소유 허용 방안은 논의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 그런데 정무위 여당간사인 김병욱 의원은 안건조정위 직후 돌연 ‘공정위 전속고발권  유지 수정안을 내 전체회의 통과’를 공언하고, 정무위원장 이하 여당 의원들은 이를 실행에 옮겼다(https://bit.ly/33X2wPv).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절차와 합의에  따라 결정된 사항을 거리낌없이 무시하는 행태가 버젓이 행해졌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애초에 안건조정위 의결 결과를 뒤집는 내용을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강행처리 할 계획이었다면 굳이 안건조정위를 열 이유도 없었다. 전속고발제 관련 정부안을 마치 처리할 것처럼 의결하고는 전체회의에서 일방적으로 삭제하는 행태는 정의당 등 야당을 우롱한 행위이자 전속고발권 폐지를 염원하는 다수의 불공정행위 피해자들의 염원을 꺾는 ‘명백한 국민기만행위’이다. 정당으로서 지켜야할 최소한의 신뢰와 책임윤리마저 저버린 더불어민주당의 이번 행태를 규탄하며, 국민과 약속한 전속고발권 폐지를 위한 추가 입법에 지체없이 나설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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