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의 자구계획 발표에 대한 참여연대의 입장

1. 최근 한국경제 전체를 제2의 경제위기로 몰고 가던 현대그룹이 드디어 충격적인 내용의 자구계획안을 발표하였다. 그 주요내용은 다음 두 가지이다. 즉 첫째, 정주영·정몽구·정몽헌 3부자가 경영일선에서 퇴진한다는 것과 둘째, 선진업체와의 전략적 제휴 및 계열사 보유지분·자산 매각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2. 이상의 자구계획안은, 비록 만시지탄이기는 하나, 현대그룹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시장의 요구에 반응을 보였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사실 현대그룹이 안고 있는 문제는 일부 계열사의 유동성 위기 차원을 넘어 구조적 문제로 발전하고 있었다. 즉 일부 핵심계열사가 영업이익으로 부채의 (원금상환은 둘째치고) 이자지급조차 못하는 상황이었다.

3. 이러한 위기상황에서도 시장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한 채 정부와의 담판을 통해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던 것은 결국 현대그룹의 소유·지배구조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은 현대그룹의 소유·지배구조 혁신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이번 자구계획안 발표가 그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4. 현대그룹의 자구계획안 내용은 일단 긍정적인 것이지만, 이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 결코 아님을 강조하고자 한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추가 후속조치가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 정씨 3부자는 이사직을 사퇴한 후 주주로서의 권리만을 행사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재벌총수 일가가 이사회·주주총회 등 공식적인 의사결정기구를 무력화시킨 채 배후에서 전횡을 하였던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아 왔으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현대그룹이다. 따라서 각 계열사가 전문경영인에 의해 독립경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5. 이를 위해서는 첫째, 각 계열사에 대한 정씨 3부자의 지분소유구조가 보다 단순한 형태로 정리되어야 한다. 지분소유구조의 정리 없이는 독립경영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씨 3부자는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 차원에서 일부 지분은 매각하여 유동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하여야 하며, 나머지 지분 역시 한두개의 계열사로 집중시켜야 한다. 둘째, 현대그룹의 부실에 책임이 있는 전문경영인들, 예컨대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이창식 현대투신 사장,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 김재수 구조조정위원장 등을 사퇴시켜야 한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각 계열사는 정관개정 등의 조치를 통해 조속히 실질적인 지배구조 개선을 이루어야 한다. 특히 각 계열사별 책임경영이 가능하도록 이사회 내에 소액주주·기관투자가·종업원 등이 추천한 독립적 사외이사가 선임되도록 하여야 한다. 사외이사의 의미는 그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주주·경영진으로부터의 독립성 여부에 있으며, 현재 현대그룹은 사외이사의 독립성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6. 한편, 현대그룹의 자구계획안 발표는 최근의 금융시장 불안을 진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겠지만, 이것으로 금융기관의 구조적 부실채권 문제가 깨끗이 청소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투신사를 중심으로 한 채권시장은 대우사태 이후 완전히 마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번 발표에도 현대투신의 부실처리를 위한 보다 진전된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며, 이것은 향후 금융시장 불안을 다시 야기할 소지를 안고 있다. 따라서 현대투신의 구조조정 작업을 조속히 완료함으로써 금융중개기능을 정상화함과 동시에 재벌의 금융지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 조치가 이어져야 한다.

7. 결론적으로, 현대그룹 사태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것은 틀림없지만, 아직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정몽구 회장의 반발 등에서 보듯이, 여전히 경영권에 집착하면서 구조개혁에 저항하는 무능·무책임한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칫 ‘제2의 왕자의 난’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멀리는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퇴진 번복 사례, 가까이는 한진그룹 조중훈 일가의 형식적 퇴진 후 배후조정 사례 등에서 보듯이, 위기를 일시적으로 모면하기 위해 경영일선 퇴진이라는 위장술을 쓰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만약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시장의 신뢰는 여지없이 무너질 것이며, 정씨 3부자는 물론 한국경제 전체가 불행한 운명에 처할 것이다. 따라서 현대그룹은 이번에 발표한 자구계획안이 조속히 실현될 수 있도록 상기한 후속조치들을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나아가 채권단과 정부는 현대그룹의 자구계획안 이행상황을 철저히 점검함과 동시에 여타 재벌에게도 개혁조치가 확산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경제민주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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