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정부·여당의 경제정책, 공정경제 구현의 본질 외면

정부·여당 경제정책, 공정경제 구현의 본질 외면

순환출자·지주회사 규제 및 금산분리, 낡은 인식으로 치부

투자활성화 핑계로 경제력 집중 폐해 우려 큰 차등의결권 도입

법 개정 필요 없는 사익편취 규제 시행령·보험업감독규정은 누락

‘보여주기 식 전시행정과 차등의결권 도입’ 주고받기 거래 우려 

 

 

최근(9/4) 정부가 「하반기 경제활력 보강 대책」을 내놓은데 이어, 어제(9/5)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당정협의를 통해 「공정경제 성과 조기 창출방안」(이하 “공정경제 창출방안”)을 발표(http://bit.ly/2kjcpDA)했다. 최근 세계 경제성장 둔화 및 국내 투자·수출 증가율 감소 상황에서 이들 대책이 동시에 발표된 것은 일견 경제 활력 진작을 꾀하면서도 주요 경제정책 기조 중 하나인 공정경제를 놓치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면면을 살펴보면, 「하반기 경제활력 보강 대책」에서는 벤처·첨단업종 활성화라는 핑계로 경영권 방어 장치인 차등의결권주식 발행을 허용하고, ‘공정경제 하위법령 개정방안 당정협의’ 후 김상조 정책실장이 “순환투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지주회사 행위 제한 등의 사전규제 도입이 공정경제와 재벌개혁, 경제민주화의 유일한 방법이라 인식하는 것은 낡은 인식”이라고 발언하는 등(http://bit.ly/2kuHpjO), 실제 공정경제를 위한 정책과는 상충되는 부적절한 정책방향과 현실인식이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법률의 개정이 어려워 시행령 이하의 하위 규범에 집중했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삼성생명이 고객 돈으로 삼성전자를 부당하게 지배하는 근거중 하나인 보험업감독규정 개정은 누락시키고, 법률의 개정이 꼭 필요한 차등의결권 주식 도입은 추진하겠다니 이런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난감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부족하고, 어쩌면 잔치만 소문내고 그 목적과는 다른 일을 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소장 : 김경율 회계사)는 ▲이번 공정경제 창출방안이 일부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하위 법령의 개정에 국한하더라도 정작 공정 경제 구현의 핵심 사안을 누락시킨  매우 불완전한 방안임을 분명히 하고, ▲현재 경제상황의 어려움을 핑계로 각종 기업 관련 행위규제를 법률까지 개정해 가면서 슬그머니 완화하려고 하는 정부의 행보를 규탄하며, ▲창의적 기업 육성과 무관할 뿐 아니라 대주주 지배력 강화로 오히려 한국 경제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심화시킬 우려가 큰 차등의결권제도 도입 계획을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  

 

먼저, 이번 공정경제 창출방안은 마치 ‘그 성과를 조기에 창출’하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정부가 과연 공정경제 구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을 올바르게 가지고 있는 것인지 우려하게 만든다. 공정경제는 단기적으로 창출되거나 계량화되어 측정될 수 있는 성과가 아니며, 기존 대기업 위주의 경제 질서가 아닌 공정한 경쟁의 장(場)에서 중소벤처기업들이 성장해나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공정한 경쟁시장은 대기업집단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 억제 및 기업 간 공정한 거래 관행을 정착시킴으로써 조성될 수 있다. 또한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지속적인 정책적 관심을 기울여 우리 경제의 근본 체질 개선에 주력하는 것이 공정 경제 구현에 접근하는 올바른 방법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공정경제 창출방안에 적시된 과제를 살펴 보면, ▲기업 소유·지배구조 개선, ▲국민연금 개혁,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 등 그 구호는 거창하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공정경제를 달성하기에 부족한 점이 많다. 예를 들어 ‘기업 소유·지배구조 개선’ 중 지주회사 관련 과제는 자회사의 공동 손자회사 출자를 금지한다면서도 기존 공동 손자회사는 허용하였고,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으로 사익편취 규제대상 상장회사의 총수일가 지분율 기준을 20%로 강화할 수 있음에도 일감몰아주기 규제 관련 과제는 심사지침 마련 계획 발표로 그쳤다. 언론(http://bit.ly/2lyx0Eb)에 따르면, 김상조 정책실장은 “일감몰아주기 규제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핵심은 지분율 20~30%구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아래 자회사 사각지대가 훨씬 많다.”라고 말했다. 이는 매우 정확한 지적이다. 그러나 보다 완전한 규제를 위해 법률 차원의 개정의 필요하다고 해서, 이것이 시행령 개정이 불필요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정부가 진실로 일감몰아주기 근절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현재 국회 구성상 정부 주도의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의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시행령 개정을 통해서라도 사익편취 규제의 적용범위를 넓혔어야 한다. 

김상조 정책실장이 순환투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지주회사 행위 제한 등의 규제를 낡은 인식으로 규정한 것은 그것 자체가 타당한 발언이 아닐 뿐만 아니라, 국정농단 사건에서 본인 스스로 목도한 삼성의 불법행위를 망각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순환출자 금지 규제가 없었더라면 제일모직과 (구)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생긴 여러 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해야 할 필요도 생기지 않았고, 삼성이 대통령의 권력에 기대어 공정위에 부당한 압력을 넣어 매각해야 할 주식수를 절반으로 줄이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금산분리 규제가 없었다면 삼성생명이 고객 돈으로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행위는 더욱 강화되었을 것이다. 금융지주회사에 대한 각종 행위 제한이 없었다면 삼성이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을 그토록 껄끄럽게 생각했을 것인가? 혹시라도 정부는 이번에 발표한 공정경제 창출방안이 이런 규제를 대체할 새롭고도 효과적인 규제 수단이라고 생각한단 말인가?

참여연대는 법률 개정이 필요한 차등의결권 도입을 정부가 발표한 후, 그 다음날 법률의 개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시행령 이하의 하위 법령의 개정만을 통해 공정경제를 추진하겠다는 논리의 유희에 깔려 있는 배경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백보를 양보해서 법률의 개정이 어렵다는 정부의 말에 수긍한다고 하더라도, 하위 법령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재벌 기업인 삼성의 소유구조를 바꿀 수 있는 핵심 장치인 보험업감독규정 정상화를 누락시킨 점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법률의 개정이 어렵다면서 금융위원회 고시에 불과한 감독규정을 개정하는 대신 국회에서 보험업법을 개정하라는 것이 현재 정부의 입장이다. 이런 모순적인 태도는 결국 재벌 개혁은 하지 않겠다는 말에 다름없다. 

우리가 이번 2일간의 정부 발표를 지켜 보면서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의 대가로 차등의결권을 선물하려는 주고받기식 흥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존 대주주의 의결권을 편향적으로 보장하는 차등의결권은 경제활력 대책과는 아무 상관없을 뿐 아니라,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기울어지게 만들 가능성이 큰 조치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가 이뤄지지 못한 진짜 이유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공정한 경제를 위한 기본적인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벌대기업의 기술탈취, 단가후려치기 등 각종 불공정거래행위로 인해 중소기업들은 신규 기술개발의 의욕을 잃고, 공고한 수직계열화의 굴레에 종속되거나 끝내 도산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은 경영권 방어 운운하며 차등의결권의 도입을 서두를 때가 아니라, 신생 기업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시장 조성에 힘써야 한다. 정부는 무조건적 규제 완화가 경제성장의 지름길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여 차등의결권제도 도입 계획을 철회하고, 진정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위해 매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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