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센터 기타(ef) 2003-01-06   618

[논평] 대통령 인수위원회의 구조조정본부 해체 발언과 관련하여

– 구조본은 황제경영과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재벌 폐해의 상징

-그러나 구조본의 폐해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대증요법이 아닌 기업지배구조의 근본적 개선을 위한 제도 확립 필요


1. 지난 2일, 대통령 인수위원회 경제분과 고위 관계자는 “대기업 구조조정본부가 사실상 외환위기 이전의 재벌 총수 비서실 기능을 맡고 있다”면서 “인수위에서 구조본의 기능과 역할을 분석하고 조직의 존폐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가 논란이 일자 이를 하루만에 사실상 취소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는 이번 논란이 일과성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구조본의 폐해를 근본적으로 바로잡기 위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몇 가지 원칙과 과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2. 구조본이 과거 비서실과 같이 재벌총수의 전횡과 선단문어발경영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서 많은 폐해를 낳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분명한 것은, 위법행위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경우가 아닌 한, 정부에게는 개별 기업의 내부조직을 해체하라고 명령 또는 권유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설사 해체하라고 한다고 해도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재벌총수가 모든 계열사를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생각하고 있는 상황에서 계열사를 총괄하는 조직은, 그 명칭이 무엇이든 간에, 어떤 형태로든 여전히 존속될 것이다.

참여연대는 구조본의 폐해에 대한 인수위의 문제의식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나, 그 해결책은 대증요법이 아닌 근본적 제도개선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3. 구조본은 2%도 안되는 소수지분을 가진 재벌총수가 수십 개의 계열사를 황제처럼 지배하는 소유·지배구조상의 왜곡에서 생긴 부산물이다. 따라서 구조본의 폐해를 해결하는 방법은 정부가 직접 구조본의 해체를 유도하는 형식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재벌총수가 계열사 경영에 부당하게 관여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소수지분으로 과도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소유구조상의 연결고리에 대한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 즉 수많은 예외조항으로 사실상 폐기된 것이나 다름없는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계열사간의 순환출자를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 또한 소유구조 면에서 계열금융기관을 이용해 고객 돈으로 계열사를 장악하는 구조를 없애고, 불법 변칙 상속을 엄정 단속하여 부패 무능한 2.3세 경영의 등장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지배구조 면에서 경영자의 무능 부패에 대한 책임을 철저하게 물을 수 있는 구조를 확립하기 위해 집단소송제 도입, 집중투표제 의무화, 주주대표소송의 단독주주권 실시가 필요하다. 기업경영의 투명성, 책임성, 전문성이 갖추어지면 자연히 구조본이나 비서실과 같은 조직의 기능은 축소되거나 사라지게 될 것이다.

4. 또한 구조본은 개별 기업의 이사회를 무력화시키는 폐해를 낳으므로, 이사회의 기능을 강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상법에 이미 도입되어 있는 사실상의 이사 제도(상법 제401조의2 업무집행지시자)를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사실상의 이사제도는 재벌총수나 구조본 인사들이 계열사의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이들이 등기이사가 아니므로 이사로서의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98년에 새로 도입된 제도이다.

그러나 지난 99년 참여연대가 제기했던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 1심판결에서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이나 선관주의의무 위반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의사결정자가 불명확하거나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건희 회장이나 이학수 구조본부장 등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던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사실상의 이사 제도가 현재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사실상의 이사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금감위, 공정위 등 감독기구가 위법행위를 조사할 때 사실상의 이사, 즉 의사결정권을 행사한 자도 반드시 조사하는 자세가 우선 필요할 것이다.

5. 끝으로 지주회사 제도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단, 지주회사의 활성화는 구조본의 양성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재벌총수의 전횡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는 반면, 유럽과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모회사, 자회사, 손회사의 다단계경영에서 책임소재를 묻기가 오히려 불분명해지는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존재한다. 더구나 지주회사는 총수의 지배권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어 일본에서는 전후 재벌개혁 때 지주회사를 강제로 해체시켰고 50년 후에 그것을 다시 허용할 때에도 여러 가지 제한을 부과한 바 있다.

따라서 참여연대는 지주회사를 활성화한다는 명분 하에 재계가 내세우는 지주회사 설립요건 완화 요구를 수용할 경우, 이는 현재의 재벌구조를 명목적인 지주회사로 형식만 바꾸는 결과를 가져올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현재의 공정거래법상의 지주회사 설립요건은 선진국에 비해 대단히 허술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지주회사 설립요건인 자회사 지분 보유한도와 부채비율 한도, 손자회사 제한 등을 엄격히 유지·강화해나가야함을 강조한다.

6.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구조본의 폐해는 분명한 사실이며 이에 대한 인수위의 문제의식은 정당하다. 그러나 구조본 해체 유도와 같은 대증요법은 법·제도의 개선 및 엄정한 집행이라는 경제개혁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으며, 결국 재벌측의 반발과 저항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참여연대는 새 정부가 일시적인 대증요법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기업지배구조 형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구조본 해체를 유도할 수 있는 제도 확립과 엄격한 감독을 촉구한다. 끝.

경제개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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