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철 지분한도 폐지는 소탐대실의 위험성 크다

정부의 포항제철주식지분 1인소유한도 폐지 결정에 대한 성명서

정부는 포항제철에 대한 공공적 법인지정을 해제함으로써 1인당 지분한도 3%와 외국인 총지분한도 30%(DR분 제외)를 철폐하는 방침을 제시하였다. 이는 증시를 부양하고 산업은행이나 중소기업은행의 포철보유지분에 대한 DR발행을 용이하게 하자는 의도이나, 이 방침은 소탐대실의 위험성이 농후한 조치로서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동안 포철 지분한도의 상향조정 검토는 부분적으로 존재하였으나 당초 1인당 소유한도는 내년 말까지는 유지하기로 결정되어 있었는데도 제대로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고 이렇게 급작스럽게 한도를 전면 철폐한 것은 주가폭락에 대한 대응조치로 제시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이 강력히 생긴다. 이로인해 포철 내부의 동의는커녕 산업자원부에서의 실무적인 검토도 충분히 거치지 않았고, 이 방침이 내려진 어제의 경제장관간담회에는 산자부 장관도 참석하지 않은 상태인 바, 국가대사를 이렇게 졸속적으로 결정하는 정부의 행태에 놀라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1989년 주가를 부양한다고 투신사에 부담을 떠 안겨 결국 투신권 전체를 골병들게 한 정부의 작태가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올바른 주가부양은 구조개혁을 철저히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지이지, 이렇게 정책의 원칙을 훼손하는 즉흥적 조치로 해결되는 사안이 아니다.

물론 우리는 공기업의 민영화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해당 기업의 공공성과 효율성을 고려하여 민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영화는 어디까지나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그리고 포철 등을 공공적 법인으로 지정하고 지분한도를 설정한 데에는 나름대로의 정책적 의도가 존재했던 것인데 그것이 갑자기 바뀌게 된 배경도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포철과 같은 공기업에 대한 지분한도 설정은 재벌과 외국자본의 인수를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였고, 이것은 주식 가격 몇 푼 더 받는 것보다도 훨씬 상위의 원칙이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재벌의 구조개혁은 아직 갈 길이 한참 먼 형편이다. 정부에선 금년 말까지 재벌과 금융개혁을 마무리짓겠다고 했지만, 이런 식의 부도수표 남발은 이 정부 들어서 여러 번 경험한 바 있다. 또한 외자유치도 중요하지만 국가기간산업을 외국자본에 넘기는 문제에 대해선 대단히 신중해야 한다. 특히 포철의 경우엔 이미 세계 정상급의 기술수준에 도달하고 있으므로, 외국자본에 넘김으로써 신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대우자동차처럼 부도나서 달리 방안을 찾기 힘든 처지가 아니라, 금년 상반기에만도 1조 3270억원의 순이익을 올린 초우량기업이다. 지금 산업은행 등의 지분을 팔아서 받는 목돈은 기껏 우리 국민들이 계속해서 받을 이익을 일시에 챙기는 것 이상은 아니며, 오히려 일시에 챙기려다가 제 값을 못 받을 가능성이 더 많다.

거듭 강조하지만 공기업도 철저하게 개혁되어야 하며, 민영화도 그것의 한 수단일 수 있다. 그러나 민영화하는 경우에는 선진적인 소유구조(기관투자가들이 중심이 된 ‘돌멩이소유’와 다수 국민의 ‘모래알소유’가 결합된 구조)와 지배구조를 갖춘 모범사례로 발전되어야 하는 것이지, 전근대적인 소유.지배구조의 재벌에게 떠넘겨 경제력집중의 폐해를 심화시켜서는 안 된다. 또 외자를 유치하여 선진적인 기술과 경영기법을 도입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외자 지상주의(至上主義)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이런 연유로 최근 공기업의 지분한도 설정시한을 더 연기해야 한다는 요구도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새롭게 등장한 정부 경제팀이 개혁을 올바르고 강력하게 추진하여 우리 경제를 선진화하고 IMF사태로 고통받은 많은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주길 진정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새 경제팀은 들어서자마자 현대사태를 미봉으로 처리하고, 계약자 이익을 무시하는 생명보험사 상장방안을 흘리는가 하면, 대우지동차처리에서는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러더니 은근슬쩍 공기업 처리 원칙마저 뒤엎어버리려 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대오각성해서 개혁의 원칙에 입각해 국민경제를 거듭나게 하고, 포철을 비롯한 공기업에 대해선 졸속적으로가 아니라 국민의 중지를 모아 신중하게 처리해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끝.

경제민주화위원회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