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정부의 상법개정안 후퇴 움직임 개탄

상법 개정안 후퇴 움직임 개탄한다

경제민주화 공약 ‘대국민 사기극’ 기로에 선 박근혜 정부

 

 

1.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8/28) 10대 그룹 총수들과의 청와대 오찬 간담회에서 정부가 입법예고한 상법 개정안에 대해 “신중히 검토하고 많은 의견 청취해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가 이미 충분한 검토를 거쳐 입법예고를 한 상태에서 재계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고, 어제(27일) 당·정·청 회동에서 상법 개정안의 완화를 합의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나온 상태여서,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원론적인 발언조차도 정부 개정안의 후퇴를 예고하는 것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부위원장 김성진 변호사)는 경제민주화 흐름에 역행하는 정부의 상법 개정안 후퇴 움직임을 개탄한다. 참여연대는 상법 개정안의 국회 논의 과정에도 적극 대응할 것이다.

 

2. 정부 상법개정안은 박근혜 대통령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공약을 구체화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소액주주의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 시스템 도입,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의 단계적 실시, 다중대표소송 도입 등을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고, 올해 2월 인수위 국정과제 보고에서도 공약 그대로 채택된 바 있다. 

재계의 반발이 가장 거센 것으로 알려진 감사위원의 분리선출 방식 도입은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명박 정부 초기에 이뤄진 상법 개정을 통해 감사위원 제도가 본래 기능을 상실한 것을 회복하자는 취지다. 현행 상법은 자산 규모 2조원 이상 상장회사는 감사위원을, 일반 상장회사는 감사를 두도록 하고 있다. 감사나 감사위원은 그 기능상 대주주 및 경영진으로부터의 독립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선임과 해임에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까지만 허용하고 있다. 

문제는 과거에는 감사위원을 일반 이사와 별도로 선출하도록 하였으나 2009년 상법 개정으로 감사위원을 일반 이사들과 일괄 선출하는 것으로 바뀌면서부터다. 일괄선출된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출하게 됨으로써 감사위원 선임과 해임에서 대주주 의결권의 3% 이하 제한 규정이 무력화된 것이다. 따라서 감사위원의 분리선출은 감사 기능의 독립성을 제고하기 위한 기초적인 제도에 불과하다. 

재계가 반발하는 다른 상법 개정안의 내용도 제도 본래의 취지를 달성하기에는 상당히 미흡한 형태로 정부 개정안이 제시되었다. 다중대표소송제의 경우 지분율 50% 기준 모자회사 관계에 대해서만 적용한다는 것인데, 통상 30% 이상 지분 보유시 지배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50% 기준은 소 제기의 대상이 되는 지배관계의 범위를 상당히 축소하는 측면이 있다. 더구나 다중장부열람권 도입도 병행되지 않아 소 제기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집중투표제 역시 새로운 규제의 성격보다는 상법상 원칙적으로 도입되어 있는 것을 대부분 회사가 정관을 통해 그 적용을 배제하고 있는 모순된 현실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그나마 정부안은 정관으로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있는 현행 상법 규정을 그대로 둔 채 상장회사의 특례 규정을 개정하여 도입한다는 것이어서 향후 법률의 해석과 적용에서 분쟁을 예고하고 있다.

 

3. 사정이 이러함에도 재계는 ‘2대, 3대, 4대 주주에 의한 경영권 장악’, ‘해외 투기자본에 의한 국부유출과 경영권 장악’ 등을 거론하며 적극 반대하고 있다. 재계의 논거는 그 가능성의 정도에 비춰 실재하지 않는 위협을 과장되게 내세운다는 문제점 이외에도, 잘못된 경영에 책임이 있는 경영진의 교체 가능성을 경영의 건강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두고 있는 주식회사제도의 본질을 왜곡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예고된 재계의 반발을 알리바이 삼아 자신의 공약을 후퇴하고 철회하려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의 태도다. 사실 재계의 반발은 박 대통령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박 대통령과 주요 경제부처 인사들은 ‘경제민주화보다 경제 활성화가 우선이다’, ‘경제민주화는 이제 마무리됐다’는 요지의 발언을 계속 해왔다. 이는 재계에 대해 “정부가 후회할 수 있게 적극적인 반대 시위를 해 달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오늘 10대그룹 총수와의 오찬 회담에서도 정부 개정안대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대신 또 다시 재계의 반발에 화답하는 듯한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4. 참여연대는 제 시민사회단체와 협력하여 개정안 후퇴 움직임에 강력 대응할 것임을 밝힌다. 이번 상법 개정안이 부족한대로 정부 개정안대로 통과되지 않는다면, 복지 공약의 뒤집기에 이어 최소한의 재벌개혁 공약도 지키지 않으려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대국민 사기극’으로 규정할 것이다. 참여연대는 또한 법안 처리에 최종 책임이 있는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정부안의 후퇴를 막기 위한 노력을 다할 것이며, 법안 후퇴시에는 책임이 있는 정당과 정치세력에게도 응분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