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센터 칼럼(ef) 2013-08-13   745

[기고] ‘제2 남양유업 사태’ 예방하고 싶다면…

[경제 민주화 워치] <4> ‘대리점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정해야

이헌욱 변호사

막말과 밀어내기 파문으로 올해 상반기를 뜨겁게 달구었던 남양유업 사태는 지난 7월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남대협)와 남양유업 본사가 공정 거래 및 상생 협약에 합의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피해 배상을 배상 중재 기구가 결정하는 것으로 했기 때문에 피해 대리점주들의 피해 회복까지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남양유업 공정 거래 및 상생 협약은 피해 회복 이외에도 여러 가지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남양유업 공정 거래 및 상생 협약은 불공정 거래 행위의 재발을 막기 위하여 다양한 장치를 두고 있다. 회사가 불공정 거래 행위를 하지 않을 의무를 지는 것은 기본이고, 남양유업 본사가 남대협과 공동으로 구성하는 상생위원회에서 협약의 이행, 대리점 권익 신장, 대리점 영업 환경 보호 및 대리점 고충 처리에 관한 사항을 합의 결정한다. 매년 최소한 4번 이상의 상생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하였고, 남양유업 본사는 상생위원회에서 결정한 합의 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의무가 있다. 상생위원회 업무를 보조하기 위하여 고충처리상임위원 1인을 두기로 하였는데, 고충처리상임위원은 남대협이 추천하는 사람을 남양유업 본사가 임명한다. 남양유업 본사는 고충처리상임위원의 업무에 협조하며, 필요한 사무 공간을 제공한다.

회사는 남대협 소속 대리점주들과 맺은 대리점 계약을 3년간 보장하고, 중대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추가로 3년을 더 보장한다. 즉, 최대 6년간 보장한다. 그러나 6년이 경과하더라도 남양유업 본사는 불공정 거래 행위의 한 유형인 부당한 거래 거절 행위를 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하므로 남양유업 본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임의로 대리점 계약을 해지할 수는 없다.

남양유업 본사는 밀어내기를 근절할 수 있도록 물품 공급 대금 결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경하기로 약속하였다. 남양유업 본사는 매월 출고된 물품의 수량과 금액을 정산하여 물품 대금 청구서를 대리점주에게 제시하고, 대리점주의 확인을 거친 이후에 해당 금액을 청구하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피해 대리점주 중 영업권 회복을 원하는 대리점주들은 남양유업 본사와 협의하여 영업권을 회복시켜 주기로 하였다.

남대협 소속 피해 대리점주에 대한 피해 배상을 위하여 3인의 중재위원으로 구성된 배상 중재 기구를 설치, 개별 피해액을 산정하여 배상을 실시하기로 하였다. 회사는 피해 대리점주의 원활한 피해 회복을 위하여 피해 대리점주의 매입 현황 등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자료를 피해 대리점주가 확인하게 해 주어야 하고, 자료가 없어서 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평균 매입 물량, 영업 기간, 거래 품목 등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물량 밀어내기로 인한 피해액을 정한다.

남양유업 공정 거래 및 상생 협약은 2년간 유효한 것으로 하되, 유효 기간 종료 30일 전까지 남대협과 남양유업 본사 중 어느 일방이 갱신 요구안을 제출하지 않으면 협약이 자동 갱신되는 것으로 하고, 갱신 요구안을 제출한 경우에는 갱신 체결 시까지 당초 협약의 효력이 지속되는 것으로 하였고, 협약은 어느 일방이 임의로 해제할 수 없다.

사회적·경제적 여건의 변화 또는 협약에 누락되었거나 협약의 내용 중 구체화할 필요가 있거나 수정·보충되어야 할 사항에 대하여는 협약의 유효 기간 중이라도 보충 협약을 체결할 수 있고, 남대협과 남양유업 본사 중 어느 일방이 보충 협약을 위한 협의를 요구하면 상대방은 이에 응하도록 하였다.

이제 이러한 협약에 근거하여 남대협이 협약의 준수 및 대리점 권익 보장을 위한 활동을 지속해 나간다면 남양유업에서 물량 밀어내기 등의 불공정 거래 행위는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제2 남양유업 사태’ 예방, 공정거래법 개정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는 뻔히 불법인 줄 알면서도 물량 밀어내기와 같은 불공정 거래 행위가 횡행하였던 것일까?

가장 기본적인 문제로는 불공정 거래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공정거래법의 규범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정을 들 수 있겠다.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은 공정거래법을 개정하여 남양유업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면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입법 발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의 정식 명칭인 ‘독점 규제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은 그 법 명칭에서도 드러나듯이 기업 결합 제한, 상호 출자 금지 등 경제력 집중 억제와 독과점적 시장 구조 개선 등 시장 지배적 지위의 남용 금지를 주된 규제 대상으로 하고,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하여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구조상으로도 카르텔 제한과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규제 부분에 조직 역량을 집중하고 있어서 현재의 공정거래법 체계만으로는 대리점 거래에서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효과적인 규제가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더구나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규모 유통업 공정화 업무를 담당하는 유통거래과와 가맹사업 거래 공정화 업무를 담당하는 가맹거래과를 두고 있지만, 대리점 거래 공정화에 관하여는 이를 담당하는 별도의 조직이 없는 형편이다. 현재의 공정위 조직 구조로는 전국에 산재한 17만 개에 이르는 대리점 사업자가 대리점 본사와 맺는 관계에서 점주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어렵고, 나아가 공정거래법과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장 경쟁 강화라는 측면에서 거래 공정화의 문제에 접근하는 경향도 강하므로 대리점 거래에서 ‘갑을 관계’의 개선을 위한 법적 규율을 공정거래법에만 맡겨두기 어려운 측면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과거 편의점 출점에서 거리 제한에 관한 자율 규제를 공정위가 시장 경쟁에 반한다는 이유로 폐지한 이후 편의점 간의 과당 경쟁으로 인한 문제가 속출하였던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리점 거래에서 ‘갑을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대리점 사업자가 단체를 구성하여 대리점 본사와 맺는 관계에서 대등한 지위에서 협의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안이다. 그런데 현행 공정거래법에서는 대리점 사업자들의 공동 행동을 담합으로 보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대리점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과 같은 별도 입법을 통하여 대리점 사업자들이 공동으로 협의체 등의 단체를 구성하여 대리점 본사와 대등한 관계에서 협의할 수 있는 통로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따라서 대리점 거래 공정화를 위해서는 현행 공정거래법 개정만으로는 부족하고 별도로 ‘대리점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가맹사업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나 ‘대규모 유통업에서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독점 규제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과 별도로 제정한 것과 동일한 것이다.

다가오는 정기국회에서 ‘대리점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꼭 제정하여 앞으로 다시는 불공정 거래 행위로 고통을 겪는 대리점주들이 생기지 않게 하자.


※ 본 기고글은 필자가 <프레시안>의 ‘경제민주화워치’ 칼럼에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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