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세상이 그대를 속인다면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세요”

안녕하세요. 참여연대 안진걸 민생경제팀장이 <노동의 배신>으로 유명한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또 하나의 명저 <긍정의 배신>에 대한 서평을 써서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을 공유합니다.

사진 등 기사 원문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66647&CMPT_CD=P0001

<시크릿>을 읽었거나 들어 본 사람들은 이 책을 꼭 읽어보세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라’는 러시아이 시인 푸시킨의 시를 참 좋아했었습니다. 인생에 대한 관조와 낙관을 담은 그 시를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성찰과 긍정은 삶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됩니다. 사춘기 시절 푸시킨의 시를 읊조리면서 계속 힘을 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삶이 아니라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라”고 한다면, 이것은 아주 다른 차원의 얘기가 될 것입니다. 세상의 우여곡절과 모순은 인생의 그것과는 확실히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자신의 생에 대한 관조와 함께 ‘자기 긍정’도 꼭 필요하지만,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개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모순에 대해서는 긍정이 아니라 부정과 저항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 <긍정의 배신>은 개인적인 미덕이어야 할 ‘긍정’이 사회적으로 강요될 때에 어떤 비극이 발생하는가를 심층적으로 다룬 책입니다.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이하 바버라)는 이 책을 통해 ‘긍정’이 삶에 대한 성찰과 관조를 바탕으로 한 지혜와 미덕이 되는 것을 넘어서서, 사회 문제에 대한 건강한 비판까지를 마비시키고 국민들의 비판 이성을 마비시키는 ‘사이비 종교’ 수준의 ‘긍정교’로 변질·비약되고 있는, 미국 사회의 현실을 아주 설득력 있게 비판·고발하고 있습니다.

바버라가 직접 ‘워킹푸어’의 삶을 체험하고 쓴 <노동의 배신>도 ‘고전’에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저작이지만, 역시 그가 펴낸 <긍정의 배신>도 그 못지않은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바버라는 는1941년 8월 26일 미국 몬태나 주에서 태어나 록펠러대학에서 세포생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도시 빈민의 건강권을 옹호하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기도 한 작가 겸 사회운동가입니다. 그이는 1998년에는 미국휴머니스트협회에 의해 ‘올해의 휴머니스트’로 선정되기도 했었지요.

처음에 <긍정의 배신>이라는 책 제목을 접했을 때는 ‘긍정이 무엇을 배신한다는 말인가?’,  ‘나 역시 매우 긍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데…’하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것을 망설이기도 했지만, 흥미로운 책 제목이 결국 이 명저를 다 읽게 해주었고, 결과는 ‘대 만족’이었습니다.

“동기유발 산업은 이런 새로운 현실을 교정할 수 없다. 동기유발 산업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현실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고치라고 제안하는 것뿐이다. 기업 구조조정은 환영해야할 즐겁고 진보적인 변화이고, 실업은 스스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기회이며, 새로운 ‘승리자’ 집단은 격동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기업들이 동기 유발 업체에 놓은 비용을 치르면서 해 주길 바라는 일도 바로 그것이다.”

“AT&T는 2년 동안 1만5000명을 정리 해고할 것이라고 발표한 당일, 샌프란시스코 직원들을 ‘성공 1994’라는 동기유발 행사에 보냈다. 타임의 리처드 리브스에 따르면, 그 행사의 주연급 연사인 열광적 기독교인 지그 지글러가 전한 메시지는 이랬다. “그건 당신 잘못입니다. 체제를 탓하지 마십시오. 상사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기도하세요.”

“당신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한다면,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용기를 잃거나 패배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 책임이다. 긍정신학은 아름다움과 초월, 자비가 없는 세계를 완성하고 승인했다.”

“오스틴의 세계에서는 하느님마저 지지자의 역할을 할 뿐 필수적인 존재가 결코 아니다. 신비와 경외감은 사라지고 없다. 하느님의 존재는 집사장 내지 개인적 조력자로 격하되어 있다. 하느님은 나의 속도위반 딱지를 해결해 주고, 식당에서는 좋은 자리를 찾아주고, 내가 책 계약을 딸 수 있도록 해준다”(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에 대한 비판 등 <긍정의배신> 책 중에서)

위에서 소개한, 이 책의 몇 단락만 읽어봐도 이 책의 주제 의식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저자 바버라는 어느 날 유방암 진단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녀는 유방암 치료를 받던 중, 병을 치료하기 위한 용기를 주는 것 정도를 넘어서서 ‘암은 축복’이라는 식의 극단적인 긍정적 태도를 접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녀는 자기계발서와 동기유발 산업의 실태와 폐해, 초대형 교회와 ‘번영신학’의 확산, 학계의 긍정심리학의 모순 등을 파헤치기 시작했고, 결국 ‘긍정교’의 폐해를 다룬 <긍정의 배신>이라는 탁월한 사회비평서를 탄생시켰습니다.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이 책을 보면 지금 미국의 최대 종교와 신념체계는 ‘긍정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자체가 엄청난 돈벌이가 되는 자기계발과 동기유발 시장, 미국 초대형교회가 앞세우는 번영신학 및 긍정신학, 미국의 자본가들이 자본의 더 많은 자유와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강요하는 극단적인 긍정적 태도, 여기에 빌붙어서 긍정적 사고를 찬양하는 학계의 ‘긍정심리학’까지를 종합하면, 이는 사회 각계의 자기 생존 전략을 넘어선 사회 전반의 신념, 종교적 체계로까지 발전하고 있어 이를 ‘긍정교’라고 명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회적 모순, 정부의 과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인생의 복잡한 단면 등이 복합적으로 작금의 현실을 만들고,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가 인간의 역사를 만들어 감에도, 모든 문제를 개개인의 책임으로 둔갑시켜 버리는 신기한 종교가 바로 긍정교라 할 것입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이 모든 것을 긍정하고, 낙관하고, ‘끌어당김의 법칙(뭔가를 그려놓고 마음을 집중하면 그게 자기 것이 된 다네요!)’을 신봉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지 못함으로써 개인의 불행과 고통이 있다는 사조로, 그것이 지나쳐서 거의 사이비 종교의 수준에까지 이르게 됐다는 것이죠. 그를 통해 보수적 지배계급과 자본가, 기업가형 종교인, 양심을 판 학자 등이 큰 이득을 취하고 있는 미국의 현실을 저자는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긍정’이나 ‘낙관’은 참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삶의 자세를 지니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필자도 대표적으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이 책을 보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 사고’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고민해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은 긍정적 사고라는 것이 미국 사회를 어떻게 망치고, 사회문제를 철저히 개인의 성정 문제로 변질시키며, 소비 자본주의를 부추기고,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고 함부로 해고하는 것을 어떻게 은폐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긍정교’는 ‘다운사이징’이라는 이름의 정리해고와 감원마저도 자기 자신을 탓하면서, 긍정적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신비한 마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정리해고를 당한 개인이나 불안하게 남아 있는 개인이나 모두에게 경쟁과 해고를 무한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자본의 치밀한 전략이 발휘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충격적인 세계의 무기가 바로 ‘긍정교’인 것입니다.

이 책은 미국 사회에 위험하고 음흉하게 확산되고 있는 긍정교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잘 보면 한국 사회에서도 아주 익숙한 풍경이기도 합니다. 분명히 사회적인 모순, 사회적인 정책과 맥락이 맞닿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개인의 문제로 치환해버리는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도 비일비재해지고 있습니다.

이 살벌하고 반인간적인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모순은 은폐되고 모든 문제가 경쟁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펙을 제대로 쌓지 못했기에 벌어진 문제라는 식으로 끊임없이 개인을 압박하고 순치시키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니까요. 예를 들면, 분명한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사회정책과 법제도 개혁을 통해 개선해야할 ‘비정규직 사태’마저도 경쟁과 스펙쌓기를 긍정하지 못한 개개인이 짊어져야할(그런 사람들이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형벌인 것처럼 일각에서는 얘기되고 있는 것이죠.

무서운 일입니다. 현실의 모순과 고통을 개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런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나중에 네가 성공해서 고치면 되잖아”라고 핀잔을 주는 어른들이나, “원래 현실은 그런 거야,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니, 하나님 잘 믿고 천당가야지”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논리들이 좀 더 세련되게 발전해서 ‘모든 것이 네 잘못이야’ ‘모든 문제가 네가 긍정적이지 못해서 발생한 것이야’라고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심지어 등록금 투쟁 현장에서도 그런 얘기를 접하게 됩니다. 미친 등록금의 나라, 살인적인 교육비 부담으로 사람들이 고통 받고, 이명박·새누리당 정권이 반값 등록금 대국민 사기 사건을 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접근하니, 네가 긍정적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 받으면 되잖아’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있으니까요. 물론 예전에도 그런 비틀린 지적이 있었지만, 긍정교가 한국에도 점점 퍼지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가난, 비만, 실업이라는 현실 문제가 마음가짐만으로 극복 가능한 작은 장애물로 축소되는, 자본주의와 긍정주의의 공생관계를 밝힌다”라는 <퍼브리셔스 위클리>의 이 책에 대한 평가, “경기 침체와 재난의 징후에 눈 감게 만드는 ‘무분별한 긍정주의’의 폐해를 경고한다”는 <북리스트>의 이 책에 대한 평가에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이유가 잘 나와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낙관과 긍정은 역사의 진보를 믿는 좌파의 몫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 나와 있는 긍정교의 신봉자와 확산자들 중 상당수가 미국 공화당 지지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극단적 우파들이 극단적인 긍정적 태도를 강요, 설복함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과 경제적 기반을 더욱 확산시켜나가고 있고, 그것이 미국이나 한국이나 다르지 않은 현실에 몸서리를 치게 됩니다.

2008년 미국의 경제위기와 긍정교의 관계를 분석한 마지막 장도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강요당하다가, 결국 엄청난 재앙에 직면하고야 만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부동산 불패 신화, 재벌 신화 같은 것이 있는데, 정권과 자본의 전략에 따라 부동산 투기나 재벌 체제를 무의식중에도 긍정하게 강요하고 있어 큰 문제입니다. ‘재벌이 망하면 대한민국도 망한다’는 극단적인 재벌에 대한 긍정이 최근의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국면에서도 부정적 위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긍정적 태도를 포기해야 할 것인가요? 그건 아닐 것입니다. 긍정적인 태도와 낙관적 자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겠죠. 다만, 사회적 차원에서는 긍정교에 빠지지 않도록 철저히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람시가 이야기한 것처럼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는 자세가 가장 올바른 삶의 태도가 아닐까요? 반드시 비판하고 개선해야 할 것은 때로는 부정적 태도로 비치더라도 비판하고 개선해야 하고, 사람과 세계의 변화가능성에 늘 마음의 문을 열어놓는 낙관적 자세는 언제라도 꼭 필요한 것이니까요. 하나 더 이야기 하자면, 자기계발서 ‘시크릿’은 한국에선 200만부, 전 세계적으로는 1억부 이상 팔렸는데요, <시크릿>을 읽었거나 들어 본 사람들은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경제위기, 총기사고, 인종차별, 빈부격차 등 온갖 모순에 시달리는 ‘미국은 희망이 없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도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며 목소리 높이는 워런 버핏도 있고, 전 재산을 대부분 기부하고 있는 빌 게이츠도 있고, 또 오늘 서평의 주인공인 ‘바버라 에런라이크’ 같은 훌륭한 휴머니스트들이 있기에 그래도 미국이 굴러가는 것이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그만큼 바버라의 저작은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위한 시민연대(준) 실무를 겸하고 있습니다. 재벌들의 온갖 모순과 불법-탐욕 행위에도 불구하고 재벌 체제를 긍정적으로 사고하게 강요하는 세력들이 있어서 이 책을 더욱 주목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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