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현대그룹 문제 해결에 대한 참여연대 성명

– 현대는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정부는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 미봉적 대책은 위기의 원인이 될 뿐이다.

1. 형제들간의 경영권 분쟁으로부터 시작하여 현대투신 부실에 따른 금융불안을 거쳐 현대건설 등 일부 계열사의 유동성 위기에 이르기까지 현대그룹의 문제가 잇따라 한국경제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이로 인해 제2의 경제위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우려할 만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2. 현대그룹은 대우그룹과 많은 점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부 계열사의 유동성 위기가 곧 그룹 전체의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을 지나치게 과장해서는 안될 것이다. 현대그룹의 계열사들 중에는 경영상태가 우량하여 현금창출 능력과 수익성이 뛰어난 기업들이 있기 때문에 대우그룹과의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일반적인 평가이다.

3. 그러나 의도적으로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기 위한 현대그룹의 무책임한 대응책과 정부의 책임회피적인 자세, 그리고 국민경제를 볼모로 진행되는 정부와 현대 사이의 힘 겨루기가 지속되면서 미봉적 대책으로 위기의 본질을 호도하는 최근 일련의 사태진행 추이를 보면서 이러다가는 자칫 현대그룹 뿐 아니라 한국경제가 위기적 상황에 봉착할 수 있는 우려를 하게 된다. ‘위기론이 난무할 때 위기는 없다’고 하지만, 위기가 아님을 강변하는 모습 속에서 오히려 위기의 징후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4. 현대그룹은 지금의 사태는 철저한 구조조정과 진정한 지배구조개선을 하지 않음으로써 누적되어온 구조적인 문제에서 발생한 것으로써 유동성의 문제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표출된 것에 불과한 것이다. 현대의 경영진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자발적이고 근본적인 구조개혁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시장의 기대를 철저히 외면한 채 오직 정부만을 상대로 담판을 짓고자 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더구나 온 국민의 관심이 현대 경영진의 결정에 집중되어 있는 바로 그 순간에 돌연히 일본으로 출국해버리는 정몽헌 회장의 모습에서 최고경영자로서의 책임의식을 찾아 볼 수 가 없었다. 결국 현대그룹은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을 자초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부담을 국가경제를 담보로 국민에게 모두 전가시키려고 하고 있다.

5. 정부는 위기관리와 구조개혁의 과제를 추진할 일차적 주체로서의 책임을 저버리고 재벌의 ‘벼랑 끝 전술’에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법 및 증권거래법에 규정된 최소한의 법적 절차조차 무시한 현대그룹 형제들의 경영권 분쟁과 현대투신사태에 대하여 그 책임을 묻지 않음으로써 공권력의 권위를 스스로 실추하였다. 더구나 실현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현대투신 경영정상화 계획에 대해 제재는커녕 환영의 뜻을 표하는 망발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투신사 구조조정을 사실상 포기하였다. 최근 제2의 경제위기가 운위되는 근본적 배경은, 외환보유고·국제수지·경제성장률·물가 등 거시경제지표의 악화에 있다기보다는, 위기관리 명분 하에 구조개혁을 후퇴시키는 미봉책을 남발하는 정부의 무책임한 모습에 있는 것이다.

6. 현재 상황을 1997년과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은 한국경제의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천문학적 액수의 공적자금을 쏟아 부은 ‘고액과외’의 결과이다. 남은 것은 백일하에 드러난 한국경제의 문제를 개혁하는 의지와 노력이다.

현대그룹은 기업과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정부가 아닌 시장을 상대로 진지한 자세로 지배구조와 영업구조의 개혁조치를 시행하여야 한다. 지난 2년간의 구조조정이 외형상의 지표와는 달리 내실을 전혀 갖추지 못한 것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이른바 알짜 계열사도 매각에 나설 정도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부와의 담판을 통해 또는 우량계열사의 내부지원을 통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려 한다면, 그것은 현대그룹과 국민경제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갖고 올 것이다.

정부는 구조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투명한 원칙을 제시함으로써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회복하여야 한다. 경제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현대투신을 비롯한 투신사 구조조정의 조속한 완료, 은행 구조조정의 원칙 및 절차의 조기 가시화, 현대그룹의 일부 계열사 등 새로운 부실징후기업에 대한 투명한 처리, 그리고 이러한 구조조정 과제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공적자금 소요액과 그 조성방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재벌총수가 경영성과를 시장에서 평가받고 이에 따른 엄정한 책임을 부담해야 하듯이, 정부 역시 정책수행에 대한 국민의 평가와 이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된다.

7. 한국경제는 다시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제2의 경제위기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 허용된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확고한 의지와 투명한 절차에 의한 구조개혁만이 경제위기를 피하고 선진경제로 도약하는 유일한 길이다. 현대그룹과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

경제민주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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