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경영권 방어장치, 경영진에게 묘약, 회사엔 독약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점검한다③ M&A를 억제하는 경영권 방어장치가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

최근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단체와 재벌 소속 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Korea Discount가 없다’거나, ‘재벌 기업이 영업수익이나 주가수익률 면에서 전문경영기업에 비해 월등하다’는 보고서들이 발표되고 있다. 정부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정책과 소액주주 운동의 정당성과 근거에 대해 ‘전방위 공격’을 가하고 있는 보고서는 많은 경우 재계의 이익을 위해 논리적 일관성과 엄격성을 희생시키고 있다.

실제로 이들이 제시하는 사례나 통계 자료들을 보면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아전인수격 해석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이에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점검한다’ 시리즈에서 각계 전문가의 글을 통해 기업지배구조와 관련된 재계의 주장이 얼마나 근거있고 타당한지 점검할 예정이다.

세번째 글은 신진영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의 ‘M&A를 억제하는 경영권 방어장치가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이다. 이 시리즈는 인터넷참여연대 <경제프리즘>코너를 통해 연재되고 있다. 편집자 주

거세지는 재계의 경영권 방어책 도입 요구

소버린과 SK의 경영권 분쟁 이후 재계는 외국 투기자본에 의한 경영권 위협의 폐해가 심각하므로 기존 대주주와 경영진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M&A 관련 법체계를 정비해줄 것을 정부에 요구해 오고 있다.

최근 몇몇 보고서를 통해 재계는 M&A에 대한 방어 장치가 없어 대주주와 경영진의 경영권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어 경영권 방어를 위해 과도하게 경영자원을 투입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기업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약화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부도 최근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의 “국내 기간산업이나 공공성이 높은 산업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경영권 방어 장치가 필요하다”는 발언에서 볼 수 있듯이 이에 대해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듯 하다.

국민연금 역시 경영권 분쟁 시 원칙적으로 기존 경영진을 지지한다는 가이드라인을 확정했고 최근 코오롱 계열사 주식을 경영권 보호 차원에서 매수하기도 했다.

과연 재계의 경영권 위협 주장은 실증적 근거가 있는 것인가

기업의 경영권 방어와 관련된 논란에서 우선 몇 가지 사실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의 근거로 재계는 경영권에 대한 위협으로 정상적인 경영이 어렵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재계는 외국인 지분 증가에 따라 이들에 의한 경영권 위협이 심각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실제로 외국자본이 주도하여 성공한 국내 대기업에 대한 적대적 M&A는 아직 한 건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가장 기초적인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소버린과 SK간의 분쟁이 유일하게 시도된 대기업에 대한 ‘심각한 경영권 위협’일 뿐이며, 이 사례 역시 사실 국내에서 경영권의 교체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확인해주는 것이다.

M&A를 억제하는 경영권 방어장치가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

과연 M&A의 활성화가 기업의 경영에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기업가치를 훼손시키는가? M&A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경영권 방어 장치에 관한 학계의 연구결과들은 대부분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내고 있다.

(1) 경영권을 위협 받는 기존 경영진이, M&A 시도를 저지하여 자신의 경영권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독약조항, 초다수 의결제 등의 경영권 방어 장치를 도입할 경우, 이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부정적이어서 해당기업의 즉각적인 주가하락이 발생한다.

(2) 경영권 방어책이 있으나 그 정도가 M&A의 가능성을 봉쇄하지 않을 정도(즉 M&A가 성사될 가능성이 있는 기업)인 경우, 경영권 방어장치의 도입은 공격하는 회사의 매수가격(bidding price)을 높이는 효과(즉 인수대상 기업의 협상력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오게 하여 주가를 상승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와 같이 기존 경영진에 의해 적대적 M&A의 가능성을 아예 봉쇄할 목적으로 도입되는 경영권 방어장치는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주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은, 어떤 경우에도 경영권 방어할 수 있는 여러 제도들이 아니라 우수한 기업 성과와 이를 통해 형성된 높은 주가라는 점이다.

실제로 외국의 사례에서 기업성과의 근본적인 개선없이 단순한 경영권 방어 장치의 도입만으로 경영권을 방어하려는 기업과 경영진들의 상당수가 결국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지 못하고 다른 기업에 의해 합병되는 경우는 자주 발견된다.

예를 들어 지나친 현금보유로 인해 대주주들과 분쟁을 겪던 미국의 자동차 기업 Chrysler는 Kirk Kerkorian과 전 CEO인 Lee Iacocca가 주도한 M&A 시도를 Green Mail 전술 (회사가 경영권을 담보로 시가보다 비싸게 살 것을 요구하는 M&A 시도자의 주식을 매수하는 전술)을 통해 저지했으나 결국 독일의 Mercedez Benz에 합병되고 말았다.

전술한 Chrysler의 예가 보여주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기업성과 등에서 문제가 있는 경영진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경영권 방어조치를 취하게 되고, 이것이 일시적으로는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 수호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모르나 장기적으로 이는 오히려 시장에 자신들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 주가가 하락하고 이로써 결국 인수합병에 더욱 노출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초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흔히 M&A 시장은 기업 경영권을 거래하는 시장(Market for corporate control)으로 경영진의 대리인비용을 규제하는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으로 논의된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시장은 그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경제 주체에게 배분되도록 기능하여야 하며 기업 경영권 시장이야말로 이러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리를 가장 충실하게 나타내는 기능이라 할 수 있다.

1997년 Time Magazine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 가운데 M&A 전문 투자자인 Michael Price를 선정했다. 그는 경영진의 무능력 혹은 도덕적 해이로 인해 경영 성과가 낮은 기업의 지분을 확보한 후 일단 획기적인 경영개선을 먼저 요구하고 만약 그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해당 기업에 대한 M&A를 성사시켜 직접 경영 개선을 주도한다.

물론 Michael Price와 같은 인물은 경영권에 집착하는 “문제 경영진”에게는 저승사자와 같은 사람이나 Time Magazine은 그를 기업가치 상승을 주도하는 장기적인 전략을 지닌 인물로 칭송하고 있다.

또한 기업지배구조에 있어 사외이사제도, 감사제도 등은 기업에 대한 내부 통제수단인데 반해, 기업 경영권 시장은 외부통제수단으로 분류될 수 있다. 각각의 통제수단은 별개의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최근 연구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이들 연구들은 기업의 경영권 방어 장치가 적을수록 주가수익률을 포함한 기업의 성과가 우수하며, 특히 경영권 방어 장치가 적으면서 연금과 같은 기관투자자의 비중이 높은 기업의 성과가 가장 우수함을 보이고 있다.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경영성과가 나쁜 기업일수록 경영권 위협을 받는 것은 당연한데 이러한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수단을 도입했다는 것은 결국 내부통제수단이 제 기능을 못할 정도로 무력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표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기업이 외부통제수단에 노출될 수 있도록 기능하는 것이 결국 내부통제수단임을 기존 연구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기업경영권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시장을 통한 기업지배구조개선의 첩경

대주주와 경영자의 경영권을 보호해달라는 재계의 요구에 대해 정부는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 기업 특히 재벌 등 대기업의 지배구조가 개선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단순히 경제가 어렵다거나, 구체적인 근거 없이 외국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 등을 이유로 경영권 보호 장치를 허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재계가 정부와 한 목소리로 강조하는 시장경제 체제의 확립과도 배치된다고 할 수 있다.

도리어 기업 경영권 시장을 활성화시켜 이를 통해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을 시장기능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신진영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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