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삼성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궤변들

안기부 x-파일로 드러난 불법정치자금 제공의혹,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불법매입논란, 이를 시정하고자 국회에 상정된 금융산업구조개선에관한법률 개정안,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에 대한 법원의 유죄판결 등 삼성과 관련된 굵직한 사건들이 올 여름부터 지금까지 연이어 터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삼성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궤변들 또한 힘을 얻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세 가지를 살펴보자.

최근 들어 급부상하고 있는 물타기 기법이 바로 ‘삼성 발목잡기’류의 궤변이다. 이에 따르면 삼성에 대한 비판적 여론은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과 시민단체가 항상 일등을 놓치지 않는 삼성을 너무나도 시기한 나머지 삼성을 흠집 내기 위해 저지르고 있는 불장난이라는 것이다. 세 가지 궤변들 중 가장 황당한 것으로서 주객전도형 또는 전반하장형 궤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삼성에게 정작 돌이킬 수 없는 흠집을 낸 것은 정치인들도 시민단체도 아니라 바로 삼성의 총수일가라는 사실을 은근슬쩍 덮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문제의 본질은 3세로의 무리한 경영권승계를 위해 총수일가가 감행한 각종 불법 또는 탈법적 거래행위들에 있다. 우선 3세의 삼성에버랜드 지배의 경우 전환사채 불법발행이 현재 법원에서 문제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삼성에버랜드의 삼성생명 지배는 현재 금융지주회사법 저촉시비에 휘말려 있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보유는 금융산업구조개선에관한법률 위반논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과 관련해서는 헌법소원까지 제기된 상태이다. 지배의 연결고리마다 문제투성인 것이다. 불법 또는 탈법시비를 불러일으키면서까지 총수일가가 이러한 거래행위를 감행한 이유는 간단하다. 3세에게 무리를 해서라도 경영권을 승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의 발목을 잡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아니고 바로 경영권승계에 대한 삼성 총수일가의 뿌리 깊은 집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국민감정에 호소한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지만 첫 번째 궤변보다 좀 더 지능적인 것이 바로 삼성전자에 대한 ‘외국인 적대적 인수론’이다. 이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을 먹여 살리는 알짜기업 삼성전자는 현재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인수위협에 직면해 있으며 이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 및 금융산업구조개선에관한법률상의 제한에도 불구하고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지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궤변의 가장 큰 맹점은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인수위협이 현재 거의 존재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 증거를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이 개정된 2004년 12월 이전 총수일가와 계열사들이 삼성전자 지분을 전혀 늘리지 않았다는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기업인수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사실, 현행법 하에서도 얼마든지 다양한 경영권방어수단이 존재한다는 사실 등이 이를 입증한다. 삼성생성의 삼성전자 지분 확보는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인수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3세의 경영권을 확고히 해서 외부주주들에 의한 위임장대결마저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보여 진다.

앞서 언급된 두 가지 궤변들보다 좀더 솔직하고 직설적인 궤변도 있다. 바로 ‘총수경영 우월론’이 그것이다. 경영권승계 때문에 총수일가가 삼성에 흠집을 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총수의 강력한 지도력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삼성전자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총수의 경영권은 영원히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의 실증연구 결과들에 의하면 총수경영이 우월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삼성전자 주주들의 입장에서 총수일가의 존재가 기업가치 또는 성과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된다면 총수일가가 보유한 지분에 관계없이 이들을 경영에 참여시킬 것이라는 사실이다. 즉, 정말 필요한 존재라면 계열사들을 통해 무리하게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보호막을 구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총수경영이라는 것도 불법과 탈법마저 용인되어야 할 지고지선의 가치는 아니라는 점이다.

비록 불법 또는 탈법으로 얼룩졌지만 필자는 최근의 사태를 놓고 삼성총수 일가를 비난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오히려 비난의 화살은 이것을 가능케 했고 지금도 방치하고 있는 일부 정책당국자들에게 있다고 생각된다. 지금이라도 삼성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법을 엄격히 집행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김우찬(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부소장,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