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증권집단소송 왜 단 한 건도 제기되지 않는가

2005년 1월 1일자로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이 시행된 지 이제 만 1년을 넘어섰다. 2004년 하반기부터 이제 ‘증권집단소송시대’가 도래했다고 하면서 마치 기업들이 다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재계와 언론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증권집단소송이 단 한 건도 제기되었다는 소식이 없는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머쓱해진 재계는 과거 분식에 대한 유예조치 때문에 그렇게 되었으므로 과거분식에 대한 유예가 끝나는 2007년부터는 집단소송이 본격적으로 제기될 것이라든가, 지금은 폭풍전야일 뿐이고 한 건이 제기되면 곧 여러 건이 제기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여전히 증권집단소송제는 위협적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증권집단소송이 지난해 단 한 건도 제기되지 않은 것은 과거분식에 대한 유예조치 때문도 아니고 아직 집단소송이 제기될 만한 건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다. 실제로 필자가 최근까지의 금감원 보도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증권집단소송이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주가조작, 내부자거래 등의 사안들이 최소 18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별첨 표 참조). 이들 사안들은 금감원의 공식조사 및 제재조치를 받은 건들이므로 집단소송이 충분히 제기되었어야 하는 사안들이다. 그러나 이들 사안에 관하여 증권집단소송이 제기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증권집단소송 자체가 제기되기 매우 어렵고,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법률서비스시장의 구조와 재판제도 하에서는 활발하게 활용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증권집단소송제도는 원래 도입 초기부터 남소를 우려할 만큼 그리 위협적인 제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계와 이들의 엄살에 편승한 정치권은 참여연대가 제안한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의 소송대상을 축소시키고 원고측의 소제기 부담을 가중시켜 손발을 다 묶어 놓는 바람에 그렇잖아도 활용되기 어려운 증권집단소송을 거의 사문화시킬 정도에까지 이르게 한 것이다.

지난 2004년 가을 어느 한 대기업의 이사회가 주최한 내부 세미나에 참석해서 증권집단소송제에 대해서 설명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는 미국의 집단소송전문 변호사도 참석했다. 당초 증권집단소송의 위력을 강조하고 대비를 촉구하러 왔던 그 전문가는 우리나라 재판제도의 실상을 듣고는 깜짝 놀라면서 그렇다면 집단소송은 제대로 활용되기 어렵다고 인정한 바 있다. 미국에서는 원고가 소송을 걸어 놓은 후 증거개시제도를 활용해서 회사측의 증거를 확보할 수 있으므로 소 제기가 쉽지만 우리는 검찰이나 금감위의 조사발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원고가 패소를 하더라도 악의적 소송만 아니면 회사측의 소송비용을 물어주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선의의 소송이라도 패소하면 천문학적 액수에 이르는 회사측 소송비용을 물어 주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인지대가 소송액수에 관계 없이 소액인데 우리나라는 액수에 비례하여 증가하므로 막대한 액수의 인지대 부담을 해야 한다. 미국에서 집단소송의 폐해는 미국식의 독특한 사법시스템과 법률시장 구조에서 발생하는 것인데 재계와 언론 및 다수의 전문가들이 이를 알면서도 숨겨서 국민들과 정치권을 오도한 것이다.

이번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의 사례는 재계의 로비와, 오도된 언론, 그리고 편파적인 전문가들이 입법과정을 어떻게 왜곡시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사례가 주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성과는 이제 재계가 근거 없는 남소우려를 들어 제도의 도입을 반대하기 조금은 더 어려워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주주대표소송제도의 경우도 그랬고, 제조물책임법의 경우도 그랬다. 검증되지도 않은 막연한 “남소우려”를 내세워 여론몰이를 했지만 번번히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재계는 과연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일반집단소송, 징벌적손해배상제도 등에 대한 반대논거로 또 남소우려를 들고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우리나라도 “신뢰 (Trust)”라는 사회적 자본 (Social Capital)”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비록 집단소송제가 두렵게 느껴지더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형성되는 신뢰의 가치는 측정하기 어렵다. 증권집단소송제가 하루 빨리 보완되고 타 분야로 확산되어 사회 곳곳에 만연한 “사기”가 사라지고 우리 사회의 신뢰수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으면 하고 희망한다.

김주영 (변호사,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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