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센터 기타(ef) 2008-02-19   1069

[한겨레 칼럼] 삼성이 가야 할 길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는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이고,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는 삼성에스디아이(SDI)와 삼성생명이고, 삼성에스디아이의 최대 주주는 삼성전자다. 그래서 삼성생명을 지배하면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 삼성생명의 최대 주주는 에버랜드다. 그리고 에버랜드의 최대 주주는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다.
이 전무가 에버랜드의 최대 주주가 된 건 1996년에 63만주를 취득하면서다. 에버랜드가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이 전무가 이를 인수해 주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때 이건희 회장의 세 딸도 함께 63만주를 취득했다.

지난 5월29일에 내려진 고등법원의 판결은 이 거래의 불법성을 거듭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 회장의 자녀들이 에버랜드 주식을 취득하면서 치른 가격은 주당 7700원이다. 그런데 2년 뒤에 삼성카드가 중앙일보사한테서 에버랜드 주식을 살 때는 주당 10만원을 치렀다. 99년에 에버랜드가 발행한 신주를 삼성카드와 삼성에스디아이가 인수할 때도 주당 10만원이었다. 그 밖에도 많은 사실들이 7700원은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임을 말해 준다. 그 차이만큼 에버랜드가 손해를 보았으며, 에버랜드의 손해는 에버랜드의 대주주였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손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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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법원의 판결문에는 그 전에 있었던 이상한 주식거래도 적시돼 있다. 이 전무가 에스원 주식과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취득한 뒤 두 회사가 상장되었고, 이 전무는 두 회사 주식을 매각해 539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그러나 가장 큰 불법 또는 편법은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최대 주주가 되는 과정에 숨어 있다. 98년에 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주식 345만주를 취득하면서 치른 가격은 주당 9천원인데, 이것이야말로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이다. 같은 시기에 이건희 회장도 삼성생명 주식 300만주를 추가로 취득했다. 대신 삼성생명의 주주명부에서 삼성의 전·현직 임원들이 사라졌다. 상속세를 피하려 맡겨둔 주식을 돌려받았을 것이라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

삼성은 우리나라 재벌의 전형이다. 총수가 계열사 출자에 의존해서 적은 지분으로 많은 기업을 지배하며, 이 지배력은 대물림된다. 그리고 지배력 강화와 대물림을 위해 다양한 불법과 편법이 동원된다. 삼성이 여타 재벌그룹과 다른 점도 있다. 삼성에서는 금융회사가 지배구조의 핵심이다. 다른 재벌그룹에도 금융회사가 있긴 하지만 금융회사를 통해 주력회사를 지배하지는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삼성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불법과 편법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지배력의 대물림이 어렵다. 과거의 불법과 편법을 고치려면 대물림을 포기해야 한다. 순환출자가 금지되거나 금산분리가 강화되어도 지배력 유지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명백한 불법조차도 부인하면서 더욱 교묘하고 은밀한 방법으로 대물림을 시도하고, 모든 영향력을 동원해서 금산분리 원칙을 무너뜨리려 할 수 있다.

삼성에는 다른 길도 있다. 적은 지분을 가진 총수가 대를 물려가며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체제에서 벗어나서 모든 이해당사자를 위한 삼성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삼성생명을 비롯한 금융그룹을 분리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경영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 그러한 삼성이 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절대적 지배는 부패로 이어지고, 지배의 대물림은 무능을 불러온다. 부패와 무능을 막으려면 재벌체제가 개혁되어야 하며, 삼성은 모범이 되어야 한다. 총수와 가신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시장의 규칙을 어기거나 사회의 원칙을 무너뜨리려 해서는 안 될 일이며, 삼성은 삼가야 한다. 삼성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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