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인동窓> 3/14 e삼성 수사결과에 대한 한 변호사의 소회

삼성특검이 알려준 합법적인 손해회피 절차
– e삼성 수사결과에 대한 한 변호사의 소회


이상훈(변호사,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



얼마 전 자문하고 있는 기업의 직원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기껏 돈 벌어놨더니 모기업인 건설회사에서 미분양 물량 몇 채를 할당해서 거기에 상당한 돈을 썼다는 내용이다. 삼성특검이 무혐의 결정을 한 ‘이재용의 e삼성 등 매각 사건’도 이와 비슷하다. ‘이재용의 e삼성 등 매각 사건’은, 2000년 3월경 이재용이 e삼성 등 4개 IT회사를 설립하였다가 2001년 3월말에 삼성계열사 9개 회사에게 위 회사를 매각한 사건이다. 이에 대하여 참여연대는 2005년 10월 14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률위반(업무상 배임) 등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였다. 고발 요지는,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에서 이재용의 전문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부각시키려고 설립 및 경영과정을 주도하다가, 2000년 하반기부터 인터넷 거품이 꺼지면서 회사 상황이 어려워지자 회사를 처분하여 회사 실패로 인한 손실을 계열사에 떠 넘겼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2년 6개월 뒤인 2008년 3월 13일 드디어 서울중앙지검에 이어 수사를 계속한 삼성특검이 수사결과를 발표하였다. 삼성특검은 삼성그룹의 구조조정본부가 e삼성 등 4개 회사의 설립, 운영 및 처분 과정에 관여하였음은 인정했다. 특히 2001년 3월 27일 구조조정본부에서 이재용의 지분을 계열회사에 인수한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불과 4일 만에 보도자료 내용대로 9개 계열회사들이 이재용 등의 주식을 일사불란하게 매수한 사실도 인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특검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이재용 등 전원에게 무혐의 결정을 하였다. 이유는, 비록 9개 계열사들이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의 지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삼성 계열사들이 투자적정성과 주식가치를 평가한 후 적정가격에 주식을 매수하였고, 이재용의 지분처분 역시 참여연대가 계속하여 문제 삼은 점을 고려한 것이지 오로지 이재용의 사업실패를 계열사에 떠넘기려는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삼성 계열사들이 구조조정본부에서 사라고 해서 샀지만 비싸게 사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재용의 지분 처분 역시 악의적인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참여연대의 요구에 따랐다는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은 무시하고,
다른 재벌총수에게 합법적인 손해회피절차도 안내해 준
이번 삼성특검의 결정, 여러 모로 답답하다.


과연 위에서 시켜서 샀지만 비싸게 사지 않았다면 괜찮은 것인가? 아니다. 판례는 모회사의 대주주가 소유한 다른 회사의 비상장주식을 매입한 경우, 거래의 목적, 계열체결의 경위 및 내용, 거래대금의 규모 및 회사의 재정상태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그것이 회사의 입장에서 볼 때 경영상의 필요에 의한 정상적인 거래로서 허용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주로 주식을 매도하려는 대주주의 개인적인 이익에 불과하다면 그 대주주와 모회사 및 자회사의 임직원들은 업무상 배임죄이고, 설사 비상장주식의 실거래가격이 시가와 근사하거나 적정한 가격으로 볼 수 있는 범위 내라고 해도 마찬가지라고 보고 있다(대법원 2005. 4. 29. 선고 2005도 856판결).


그렇다면 당시 거래의 목적, 계열체결의 경위 및 내용, 거래대금의 규모 및 회사의 재정상태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9개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자체적인 경영상의 필요에 의하여 e삼성 등을 매수한 것인가. 특히 에스원은 정관에서 이사회 안건 통지를 7일 전에 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단축시키면서 e삼성 등을 매수한 것이 자체적인 경영상의 필요에 의한 것인가. 이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바로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이었다. 즉 e삼성 등의 설립 및 운영, 처분을 주관한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의 법무팀장인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에서 불법성을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e삼성 등의 실적이 예상과 달리 부진하여 이재용이 재산상으로 손실을 볼 것이 우려되어 이를 피하기 위하여 계열사의 주식 매입을 추진한 것이다”라고 증언하였다. 그러나 삼성특검은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을 무시하고 자체적인 경영상 필요에 의하여 e삼성 등을 매입한 것이라는 삼성측의 기존 항변을 믿은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인터넷 거품이 꺼지는 상황에서 e삼성 등과 같은 벤처회사의 가격을, 자산에서 부채를 공제하는 방식인 순자산가치 평가방법으로 평가한 것 자체가 적정하지 않다. 왜냐하면 2000년 5월부터 2001년 3월까지 코스닥에 등록된 IT업체들의 주가가 평균 4분의 1로 폭락했고, 메릴린치도 e삼성 같은 벤처회사는 순자산가치에서 30-40% 할인돼 팔렸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IT회사는 적은 자본으로 설립이 가능하고 계열사와의 계속 거래를 통해 안정적인 이윤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재벌 총수 일가들이 IT회사를 부의 편법 상속으로 악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삼성특검의 결정은 삼성 그룹 뿐만 아니라 다른 재벌 총수들에 대하여도 만일 IT회사의 운영이 어려워질 경우 손해를 보지 않고 처분할 방식을 만들어 준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은 무시하고, 다른 재벌총수에게 합법적인 손해회피절차도 안내해 준 이번 삼성특검의 결정, 여러 모로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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