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현대 계열사간 법정싸움의 교훈

지난 달 25일, 전대미문의 계열사간 분쟁에 대해 하이니스반도체(前 현대전자), 현대증권 및 이익치 전 현대증권 사장은 현대중공업에 1,718억 원을 연대해서 지급하라는 판결이 선고되어 또다시 파문이 일고 있다. 겨우 한 달 전인 지난 해 12월 27일에 삼성전자 이사진을 상대로 한 주주대표소송에서 수원지방법원이 그 이사들에게 977억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선고했던 데 이어 다시 한번 이사회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이 사건에서 현대전자는 자금을 조달하고자 1997년 당시에 보유하고 있던 현대투신 주식을 1억 7,500만 달러에 CIBC란 외국은행에 매각하였다. 이 과정에서 CIBC는 동 주식의 가치하락을 우려하여 현대중공업으로 하여금 일종의 지급보증을 하게 하여, 3년 내에 동 주식을 연금리까지 포함하여 2억 2063만 달러에 재매수토록 하는 옵션계약을 체결하였다.

현대증권과 현대전자 당시 사장들은 이 옵션계약과 관련하여 현대중공업에 어떠한 재정적 부담도 지우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제공하였다고 알려졌는데, 이 각서를 믿고 옵션계약을 체결하였다가 손해를 입은 현대중공업에 현대전자, 현대증권 등은 1,718억 원의 책임이 발생하였다고 법원이 판시한 것이다.

이 역사적인 판결의 교훈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사외이사제도의 중요성을 확인하였다.

이번 판결은 사외이사제도의 실효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같은 그룹 계열사를 위해 사실상의 지급보증을 해주고서 결국 책임을 부담하였더라도, 그에 따라 발생하는 구상권 같은 권리는 당연히 포기함이 관행적이었다. 그러나, 본 사건에서는 현대중공업 사외이사들의 끈질긴 설득에 의해 수천억 원을 회수할 수 있는 절차를 거쳤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본 사건은 현대중공업이 원칙에 입각한 독립경영을 선포하는 신호탄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만일 사외이사들이 제 본연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 벌어진 것이다.

둘째, 이사회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번 사건에서 하나 더 지적할 것은, 법원에서 현대중공업에 대해서도 30%의 과실상계를 인정하였다는 부분이다. 현대중공업이 현대증권 및 현대전자 당시 사장들로부터 각서를 받았을 때 이에 대한 이사회의 결의를 거쳤는지를 전혀 확인하지 않은 점에 대해 일부과실을 인정한 것이다. 즉, 타회사와 일정 규모 이상의 거래를 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이사회의 결의를 거쳤는지 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법원에서 계열사간 지급보증 기타 부당지원행위를 엄격하게 심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였다는 것이다.

그룹 총수의 주도 아래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계열사간 부당지원행위, 즉 자사의 이익과 무관하게 타계열사를 위해 물적, 인적 자원을 제공하는 행위는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그 동안 현대중공업 같이 우수한 회사가 세계금융시장에서 다른 경쟁사들에 비해 기관투자자들에 의하여 저평가되어온 데는 이러한 부당지원행위가 손꼽히는 요소로 작용하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넷째, 대표이사인 현대증권 이익치 前 사장에게도 개인자격으로 1,718억 원의 천문학적인 액수를 회사와 연대하여 지불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부여하였다.

이익치 사장의 경우 이사회 결의도 없이 효력이 없는 각서를 현대중공업에게 제공한 책임이 인정되었다. 이는 최고경영자가 회사를 대표하여 행동할 때, 적법하게 권한을 위임받지 않았다면, 이를 신뢰하여 손해를 입은 상대방에 대하여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이므로 이에 대한 책임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번 판결의 의미는, 비록 거대그룹의 계열사이더라도 상장되어 소유주식이 분산된 경우에는 그 이사회는 책임지고 회사를 위해 독립적인 경영을 하여야 한다는 회사법의 기본원칙을 재확인하였다는 데 있다.

김준기(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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