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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벌개혁/경제민주화
  • 2001.06.01
  • 337
  • 첨부 1

재벌 구태 유지시키는 규제완화조치 철회하라



1. 정부가 어제 당정협의를 통해 경쟁력 강화와 수출·투자촉진이라는 명분 아래 기업규제완화 방안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기업규제 완화방안에는 경쟁력강화나 수출 ·투자 촉진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기업지배구조를 후퇴시키고 선단식 경영, 문어발식 사업확장 등 재벌의 구태를 그대로 유지시키기 위한 방안들이 끼워넣기식으로 포함되어 있어서, 이러한 기만적인 정책은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2. 정부는 재벌 금융계열사들의 의결권제한을 풀고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예외를 확대하는 등 핵심적인 재벌규제 정책을 포기하면서 기업경영의 투명성 강화 방안으로 이를 보완하겠다고 했으나,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아예 고려되지도 않았으며 집단소송제 도입도 전혀 실효성이 없는 것이어서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규제완화를 위한 기만적 명분에 불과한 것이다. 사실상 정부는 이번 조치를 통해 IMF위기 이후 국민적 합의에 기반하여 진행되어 온 재벌개혁을 포기하고 친재벌정책으로 돌아선 것으로 판단된다.

재벌금융사 의결권부활은 총수의 지배력만 공고하게 할 뿐

3. 먼저, 재벌금융계열사들의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을 부활시킨 것은 이미 계열사 지분을 이용해서 지배력을 확보해온 재벌총수들의 지배력을 더욱 높여주는 것으로 총수의 독단적 경영을 막기 위한 지배구조개선 정책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더구나 금융계열사들이 보유하는 타계열사 지분은 돈을 맡긴 투자자들의 몫인데 이를 총수지배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4. 현재도 제2금융권 장악을 통해 계열사를 장악하고 있는 재벌총수들은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계열금융사에 의한 출자를 더욱 늘리는 등 금융자본과 산업자본간의 결합을 촉발할 것이며, 재벌계열사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 등 중요한 시장규율이 원천적으로 어려워져 '한번 재벌은 영원한 재벌'로 남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재벌기업의 경영진은 총수의 눈치만 보며 현실에 안주하고 끊임없는 구조조정과 자기혁신으로 기업가치를 제고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할 것이며, 결국 총수의 경영 전횡으로 회사와 소액주주들의 이익이 침해되는 재벌의 폐해가 증폭될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가 엄격히 시행되고 있고 정부도 이를 기본정책방향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벌의 제2금융권 소유 제한 등 근본적인 조치를 취하지는 못할 망정 그나마 남아 있던 견제수단마저 포기한다는 것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설명될 수 없다.

5. 또한 지난해 법을 개정해서 보험사 자기계열 투자한도 범위를 2%로 축소하고 초과분처리를 위해서 1년 연장해준 것을 다시 1년 연장해주겠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특히, 이 조치와 함께 재벌금융계열사에게 의결권을 허용한 것은 보험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삼성그룹을 위한 조치가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정부는 이러한 조치가 과거 특정 재벌의 이익을 위한 부끄러운 정경유착적인 제도변경이 아니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재계의 압력에 굴복해 후퇴하고만 출자총액제한제도

6.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후퇴는 결국 규제대상인 특수이익집단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이미 현행법은 1998년 2월에 폐지되기 전 출자총액제도에 없던 포괄적인 예외사유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예외사유는 기업구조정을 위한 예외인정과 지주회사에 대한 예외인정이다. 현행 공정거래법 제10조는 기업의 경쟁력강화를 위한 구조개선, 외국인투자의 유치 또는 중소기업과의 기술협력을 위하여 주식을 취득 또는 소유하는 경우에는 5년내지 8년동안 출자총액제한이 면제되는 등 이미 포괄적으로 출자총액제한의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7. 아울러 현행법은 과거에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던 지주회사제도를 허용하여 지주회사가 주식을 취득하는 경우에는 출자총액제한이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 올들어 2조 6천억원규모의 지주회사인 LGCI가 설립되는 등 지주회사의 숫자가 13개로 급증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번 조치는 너무나 많은 예외를 인정하여 이미 불구가 된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숨통마저 끊겠다는 의도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정책은 왜 후퇴시키는가?

8. 정부는 재계의 요구에는 발빠르게 부응하면서 그간 투자자와 전문가, 시민단체 등이 줄곧 요구해온 집단소송제 도입, 집중투표제의 강화 등 기업지배구조 개선안은 무시하고 있다.

정부는 특히, 집단소송제도의 적용을 자산규모 2조 이상의 회사에 한정하려는 등 집단소송제의 취지를 퇴색시키려 하고 있다. 집단소송제도는 허위공시, 주가조작, 내부자거래 등 증권사기행위를 범한 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손해배상책임을 손쉽게 추궁할 수 있는 제도로서, 기업이 정상적으로만 경영한다면 결코 위협적인 제도가 아니며, 현재 국회에 계류된 법안에는 집단소송의 제기에 법원의 사전허가를 요하는 등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이미 마련되어 있다.

이러한 제도가 자산규모 2조이상인 회사에 투자한 경우에만 인정되어야할 아무런 논리적 근거가 없다. 정부는 각종 기업지배구조 관련 법 적용시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자산 2조원이라는 기준을 내밀고 있는데 도대체 그 근거가 무엇인가?

자산 규모 2조원 이상이라고 해봐야 겨우 54개 기업에 지나지 않아 전체 704개 상장사 중 8%도 채 안된다. 54개 기업 외에 나머지 기업들은 주가조작 등의 증권사기 행위를 해도 괜찮다는 뜻인가?

9. 또한, 소액주주가 단 한사람의 독립된 사외이사라도 선임할 수 있는 제도인 집중투표제를 아직도 의무화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외이사들이 총수와 오너의 들러리로 소액주주의 이익을 전혀 대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금년 주주총회에서도 확연히 드러났고, 사외이사제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집중투표제와 같은 제도를 통해서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선임되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집중투표제 도입을 외면하는 것은 정부정책이 투자자보호 보다는 재벌의 경영권 보호에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이 정부의 기업구조개혁 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재벌개혁을 후퇴시키는 5.31 조치를 철회하라

10. 위와 같이 정부의 이번 조치는 규제완화라는 명분 하에 재벌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규제완화는 결국 시장에서의 경쟁을 촉진시키기 위해 진입장벽 등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재벌의 경제력집중과 무분별한 사업다각화, 순환출자를 통한 지배권 독점을 막기 위한 대기업정책은 다른 일반 규제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서구의 다국적 기업들이 주력 부문에 집중하는 동안 우리의 재벌들은 비관련부문 다각화에 몰두했다. 재벌은 특혜금융을 통한 여신을 독점하여 중소기업의 자금줄을 막아 우리 경제구조를 왜곡하였으며 부당내부거래를 통해 공정한 경쟁질서를 훼손해 왔다.

이러한 재벌의 구태가 IMF사태의 근본원인이며 대우, 현대사태는 이런 문제가 근본적으로 시정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한다. 선진국에서는 소액주주들의 견제, 세제상 불이익, 투자회사법에 따른 규제로 인해 우리나라와 같은 재벌기업의 출현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재벌이 여전히 국내 경제의 운명을 좌우하고 경제구조의 개혁도 요원한 상황에서 먼저 현행제도를 완화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전도된 것이다.

11. IMF위기 이후 전국민적 합의에 기초하여 재벌개혁 정책이 추진되어 왔다. 출자총액제한제도만 하더라도 지난 99년 장기간의 의견수렴과정을 거쳐 99. 8. 25.자 정·재계의 서면합의를 통해 부활된 조치이다. 그런데 이토록 진통을 겪으면서 신설된 제도가 정작 축소될 때는 정부와 재계간의 간담회라는 형식으로 국민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재벌개혁의 문제에 이해관계를 가진 것은 대기업만이 아니다. 우리는 한보, 기아, 대우, 현대 등 재벌기업들의 실패로 인하여 수많은 국민들이 당한 고통과 불안을 상기해야 한다. 재벌의 문어발식, 선단식 경영으로 인해 초래된 재앙에 대하여 전체 국민들이 그 책임을 분담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재계는 재벌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무시한 채 전문가와 시민단체의 참여를 배제한 채 밀실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 재벌개혁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참여연대는 재벌개혁을 포기하고 오히려 재벌위주의 경제체제로 복귀하려고 하는 정부의 이번 조치에 실망을 금할 수 없으며, 이를 즉각 철회할 뿐만 아니라 집단소송제 전면 도입, 집중투표제 의무화, 재벌의 2금융권 소유 제한 등 근본적인 재벌개혁 정책들을 적극 추진할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경제민주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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