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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벌개혁/경제민주화
  • 2001.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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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 연재① - 재벌총수가 남의 돈을 마음대로 쓰게 한다면



(편집자주)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와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는 공동기획으로 '재벌개혁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기사를 연재합니다. 김대중 정권 후반기에 접어들어 각종 재벌정책들이 후퇴하는 원인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놓기 위해서입니다. 다음은 그 첫번째로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한성대 교수)의 글입니다.

'보험 해약.' 매우 선정적인 제목이죠? 명색이 화폐금융론 교수이면서, 더군다나 네거티브 캠페인(반대를 위한 반대)을 극도로 자제해왔던 참여연대의 한 부서 책임자로 있는 사람이 이런 도발적인 제목을 붙였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재미없는 경제이야기이지만, 가능한 한 쉽게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남의 돈'도 종류가 두 가지입니다.

며칠 전에 세계 굴지의 자동차 회사인 포드에서 창업자인 헨리 포드의 증손자(윌리엄 클레어 포드 2세)가 최고경영자로 나선 일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4세 승계죠.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오너경영의 의미를 재확인한 사건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포드 가문이 전체 주식의 약 40%를 갖고 있으니, 오너라고 불러도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포드는 자동차 전문기업이고 대주주의 경영을 감시할 수 있는 내부장치를 갖고 있다는 등등 포드와 우리나라 재벌의 차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한 가지만 여쭈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재벌총수를 오너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우리나라 재벌의 문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재벌총수가 남의 돈으로 황제처럼 행세한다'는 것입니다. 30대 재벌 전체로 보면 총수와 그 가족이 직접 보유한 주식은 5%도 안 되고, 특히 5대 재벌의 경우에는 1%대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해, 재벌총수는 오너가 아니라, 그야말로 소액주주입니다. 우스개 소리로, 재벌총수는 참여연대가 하는 소액주주운동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되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소액주주에 불과한 재벌총수가 황제처럼 행세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남의 돈을 이용할 줄 아는 기술이 있다는 이야기가 되죠. 사실 이 기술은 고도의 첨단 기술이 아닙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다만, '남의 돈'도 종류가 두 가지이다 보니, 이 기술도 두 가지로 나뉘어집니다. 하나는 매일 주식 시세표 보면서 한숨짓는 외부 소액주주의 돈을 이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금리 떨어지는 것 보면서 망연자실하는 저축자의 돈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경제정책이 아무리 엉망이라고는 하지만, 남의 돈을 무한정 갖다 쓰도록 하지는 않았겠죠. 재벌에 대한 규제정책이 있습니다. 30대 재벌로 지정된 재벌에 대해서는 앞서 말한 두 가지 기술 각각에 대해 일정한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비금융 계열사가 여타 계열사 주식을 보유할 수 있는 한도를 정해 놓은 출자총액제한이고, 둘째가 계열 금융기관이 계열사에 대출하거나 투자할 수 있는 한도를 두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규제장치는 '남의 돈'의 종류에 따라, 그리고 비금융 계열사와 계열 금융기관의 업무 성격의 차이를 반영한 것으로, 우리나라 재벌정책의 두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 출자총액제한은 다음 주에 설명드리고, 오늘은 두 번째 계열 금융기관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이 두 가지 규제가 남의 돈을 재벌총수 마음대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라는 점에서 같은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겠습니다.

▲ 지난 10월 18일 참여연대 주최로 여의도 노사정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재벌 및 금융부문 규제완화 관련 토론회' 장면.


2. 의결권 제한 완화? 왜? 누구를 위해서? 결과는?

금융기관은 돈 장사하는 데죠. 그것도 남의 돈으로. 보통 금융기관은 자기자본이 5%밖에 안되고 나머지 95%는 저축자의 돈입니다.

그런데 재벌이 거느린 계열 금융기관이 저축자의 돈으로 계열사 주식을 사서 그 의결권을 마음대로 행사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죠. 그래서 30대 재벌 소속 금융기관의 경우에는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유가증권 투자를 주요 업무로 하는 금융기관이니만큼, 계열사 주식 보유 자체를 금지할 수는 없는 것이고, 다만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입니다.

물론, 못하게 한다고 해서 안 할 재벌이 아닙니다. 작년에 공정위가 조사를 해보니, 법으로 금지된 의결권을 버젓이 행사한 계열 금융기관이 8군데나 적발되었습니다. 별 볼일 없는 작은 데냐구요? 천만에요. 삼성생명, 현대증권 등 굵직굵직한 뎁니다. 백주대낮에 위법행위를 하는 재벌의 담대함도 놀랍지만, 적발해 놓고도 신문광고 등의 미미한 제재조치만 내리는 공정위의 소심함도 안타깝습니다.

우리나라 금융산업과 자본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는 기관투자가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은행을 제외한 제2금융권 대부분이 재벌의 계열사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을 풀어버린다면, 그야말로 남의 돈을 이용한 재벌총수의 황제경영을 더욱 심화시킬 것입니다. 의결권 제한 완화는 산업과 금융의 분리가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정기국회 때 재경부와 공정위가 짝짜꿍이 되어서 이 제한을 풀어버리겠다고 나섰습니다. 출자총액제한 문제에 대해서는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을 정도로 이견을 보였던 재경부와 공정위가 계열 금융기관 의결권 문제만큼은 완전히 한통속이 된 거죠. 그리고 소리소문도 없이 관련 법률 개정안들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우리나라 경제부처 내부의 팀워크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출자총액제한을 둘러싼 충돌은 정말 예외 중의 예외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개정 법률안들의 내용이 걸작입니다. 공정위가 제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보면, 재벌총수가 지배하는 주식 비율(내부지분율)이 30% 미만인 상장 계열사에 대해서만 의결권 제한을 푼다는 겁니다. 재경부가 제출한 증권투자신탁업법(투신사 관련)과 증권투자회사법(뮤추얼펀드 관련) 개정안에는 경영권 변동 관련 사항에 대해서만 의결권 제한을 푸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니, 정부가 그토록 강조했던 바대로, 그 동안의 구조조정 노력에 의해 시장기능이 어느 정도 작동하기 시작했다면, 모든 기업의 주주총회 결의 사항 전부에 대해 의결권 제한을 풀어야지, 재벌총수의 지배력이 약한 계열사에 대해 그것도 경영권 변동 관련 사항에 대해서만 푼다는 거, 해괴망측하지 않습니까?

사실 재경부나 공정위가 이 법률들의 개정이유를 명시적으로 설명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재경부와 공정위의 핵심 국장 두 분이 어느 토론회 자리에서 그 이유를 밝힌 것을 제가 직접 들었습니다. "외국인 투자가의 적대적 M&A 위협으로부터 재벌총수의 경영권을 보호해주기 위해서"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M&A를 활성화한다는 것이 정부가 내세운 재벌 개혁정책의 주요 항목 아니었던가요?

물론 이 논리에는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M&A를 방어한다'라는 다분히 민족주의적인 정서가 깔려 있습니다. 저 역시 한국 사람입니다. 외국인이 국내기업을 인수한다면 기분 좋을 리 없습니다. 적어도 정서적으로는 말입니다.

우리 한번 냉철하게 따져봅시다. 외국인에 의한 M&A 위협이 실제로 그토록 심각한 상황인지. 얼마 전에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2조 7000억 원만 있으면,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인수할 수 있다"고. 제가 그 기자에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2조 7000억 원 마련해줄테니 경영권 인수해보라고. 말도 안 되는 이야깁니다. 2조 7000억 원은 삼성전자 내부지분율 11%의 현 시가입니다. 실제 삼성그룹 측이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율은 이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 항간의 소문입니다. 삼성전자를 M&A하기 위한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감안하면 최소한 33% 이상의 지분이 필요하고, 또 지분 매집 과정에서 주가가 급등할 것이니, 실제로는 2조 7000억 원의 최소 5배에서 10배는 필요할 겁니다.

그러면 외국인 투자가들이 이런 엄청난 액수의 돈을 동원해서 적대적 M&A에 나설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한마디로 제로입니다. 이왕 삼성전자 이야기가 나왔으니, 삼성전자 주식의 외국인 지분구조를 살펴보죠.

작년 말 현재 외국인 전체로는 53%의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 중 최대주주는 DR 예탁기관으로 10%를 갖고 있는 Citibank N.A.인데, 말 그대로 남의 주식을 맡아두는 기관이기 때문에 의결권 행사와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7%를 갖고 있는 Capital이라는 미국계 투자펀드이고, 그 외 1%대 지분을 갖고 있는 3개의 투자펀드들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1% 미만의 군소 주주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이 적대적 M&A를 시도하기 위해서는 수십 개의 투자펀드들이 일시에 담합해야 합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투자가들은 대부분 경영권 탈취와는 무관한 투자목적의 펀드들입니다. 이들 투자펀드의 행동원리를 설명하는 용어로 '월스트리트 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네가 경영진을 지지하지 않는 회사의 주식에는 투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월스트리트 룰을 지키는 투자펀드들이 현 경영진을 내쫓기 위한, 언제 끝날지 그리고 성공할지조차 불확실한 적대적 M&A를 시도한다? 그것도 수십 개의 투자펀드들이 일시에 담합한다? 한마디로 난센스입니다. 단언컨대, 이런 사례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펀드의 속성상 국내 주식시장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주장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투자펀드들이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으니 이에 대한 방어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말도 안되는 주장이 계속 나오는 걸까요? 단적으로 말해서 재벌총수가 외부주주에 의한 경영감시를 받지 않겠다는 속셈입니다. 삼성전자의 실제 최대주주가 누군지 아십니까? 7%를 갖고 있는 삼성생명입니다. 삼성화재 등 여타 계열 금융기관까지 합치면 8%가 넘습니다. 여기에는 삼성투신과 뮤추얼펀드가 보유한 주식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현행 법체계 하에서는 실태 파악조차 불가능합니다.

더군다나 최근에 보험업법 시행령과 투신업법 시행령이 개정되어 이들 보험사와 투신사의 계열사주식 보유한도가 다시 늘어났습니다. 보유한도 축소는 김대중 대통령이 99년 8.15 경축사 때 제시한 5+3 원칙의 핵심적 성과물이었는데, 이른바 주식시장 부양을 위해서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원위치시켰습니다.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입니다.

보험업법 시행령은 추석 연휴 전날인 9월 29일에, 투신업법 시행령은 추석연휴 다음 날인 10월 4일에 개정·공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시행령 개정 사항이기 때문에, 국회에 보고하고 논의하는 절차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한국이 인터넷 최강국임을 항상 자랑하던 재경부는 보험업법 시행령 개정 사실을 인터넷에 올리지도 않다가, 2주일 후에 참여연대가 이 사실을 발견하고 항의하자 그제서야 인터넷에 게시했습니다. 요즘 재경부 일하는 스타일이 거의 히트 앤드 런 수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경부와 공정위가 제출한 개정안대로 계열 금융기관의 의결권 제한을 풀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경영권 위협은커녕, 외부주주는 독립적 사외이사 한 명도 선임하지 못할 겁니다. 경영감시가 불가능해지는 것이죠.

그럼 이것이 삼성그룹만의 문제일까요? 지금 상황에서 이 법개정의 최대 수혜자는 삼성그룹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겁니다. IMF 경제위기 이후 재벌들이 거느린 금융기관들이 많이 망했습니다. IMF 위기의 주범 중 하나였던 재벌소속 종금사들이 사실상 다 없어진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제2금융권에서는 비자발적인 차원에서나마 산업과 금융의 분리가 진행되어 온 셈이죠.

그러나 계열 금융기관을 통해 저축자의 돈으로 계열사 주식 사고 경영권 방어까지 할 수 있게 된다면, 어느 재벌이 금융업에 다시 진출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은행법을 개정하여 은행까지 넘겨준다니…. 제가 요즘 이 문제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는 이유를 이제 짐작하시겠습니까?

그 토론회 자리에서 공정위 국장님께서 이 법개정이 실질적 효력을 미칠 기업이 11개쯤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업 이름을 밝히지는 않으셨지만,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업들로, 각 재벌의 핵심 계열사들입니다. 이제 이 법들이 개정되면, 재벌총수의 경영권은 철옹성이 될 것이고, 경영감시조차 불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재벌의 금융업 진출이 가속화되면서 그 숫자는 20개, 50개, 100개로 늘어날 것입니다.

최초로 재벌개혁을 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천명한 그 국민의정부에서 전두환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 때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재벌총수가 저축자의 돈으로 계열사 주식 사서 경영권 방어하는 일이….

3. 이 법 통과되면 저는 보험해약할 겁니다.

이 법 통과되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습니다. 보험회사가 제가 낸 보험료로 어느 계열사 주식을 샀는지, 의결권을 어느 방향으로 행사했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투신사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제가 워낙 가진 것이 없다 보니 투신사 수익증권은 한 구좌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저희 학교에서 교직원들 후생복리 차원에서 어느 재벌보험사에 월 3만 원씩 보험 들어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제 돈이 재벌총수의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쓰이는 것이 싫습니다. 그리고 제 돈이 재벌총수 2세, 3세, 4세의 경영권 승계에 악용되는 것이 싫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보험료 들어간 것이 아깝기는 하지만, 어쩔 수없이 보험해약하려고 합니다.

이 법 통과되면 저는 보험해약할 겁니다. 여러분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한성대 교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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