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이 금융을 지배하게 되면 나라가 망합니다

"경제학 교수 체면 좀 살려주십시오"

 

(편집자주)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와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는 공동기획으로 '재벌개혁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기사를 연재합니다. 다음은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한성대 교수)의 글입니다.

재벌개혁 연재① – 그 법 통과되면 전 보험해약할 겁니다

재벌개혁 연재② – 내년 4월 시행 앞둔 집단소송제, 재계 반발 여전

재벌개혁 연재③ – 설비투자 위해 출자총액제한 폐지한다고요?

1.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 그러나…

재경부가 은행법은 고치겠다고 나섰습니다. 은행법 개정, 은행 민영화, 또는 '은행 주인 찾아주기.'

여러분, 지겹지 않으십니까? 솔직히 저도 지겹습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3번 이상 들으면 지겹다는데, 20년 동안 똑같은 노래를 틀어댔으니 신물이 날만도 할겁니다.

그러고 보니 참 세월이 빠르긴 빠르군요. 제가 80년대 초에 정운찬 교수님으로부터 이 내용을 배울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제가 그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으니…. 저는 나중에 제 제자가 똑같은 내용을 가르치지 않기를 진정 바랍니다. 지겨운 수뢰바퀴 돌기, 이제 끝내야 합니다.

내용은 아주 간단합니다. '돈을 빌리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역할까지 맡기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어렵게 말하면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인데, 상식 수준에서 이해 못할 내용이 아니죠. 암놈과 수놈이 한 몸에 있으면 괴물이듯이, 돈을 빌려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이 돈 빌려주는 장사까지 하면 나라꼴이 뭐가 되겠습니까?

흘러간 노래 재탕한다고 나무라지 마시고, 제가 재미있게 편곡했으니 끝까지 한 번 들어보시죠. 자, 갑니다.

2. 호리에 행장, 큰 일 하셨습니다.

얼마 전에 제일은행 호리에 행장이 '짤렸습니다'. 본인은 자진사퇴라고 우겼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한국경제의 애물단지 하이닉스에 돈 잘못 빌려줬다가 경질된 겁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작년 말에 정부가 은행들 팔 비틀면서 현대건설에 돈 빌려주라고 했을 때 호리에 행장이 'No' 했던 거 기억나시죠? 재경부, 쇼크 받았을 겁니다. 그런데 이 돈키호테 같은 호리에 행장이 올해 들어와서는 정부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이닉스에 거금을 빌려주었습니다.

이런 거 배워야 합니다. 물론 제일은행이 기업금융은 안하고 소비자금융만 한다, 또 소액예금자는 홀대한다 등등 말들이 많지만, 이런 은행이 있으면 저런 은행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은행이 좋은 은행인지는 예금하는 사람, 대출 받는 사람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그런데 호리에 행장이 진짜 한국경제에 공헌한 바는, 행장으로서 잘한 것보다는, 행장 잘못 했다고 짤렸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행장은 자기가 선택한 경영전략을 소신있게 밀어붙이고, 이사회가 그 결과를 평가하여 '야, 너 이것밖에 못해. 그만둬'라고 말하는 풍토, 정말 부럽습니다. 우리가 제일은행을 통해 10조짜리 고액과외(공적자금)를 하고 있는데, 이것만큼은 확실히 배우고 가야 합니다. 호리에 행장, 기백억 스톡옵션 날린 것은 애석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한국 국민은 당신을 오래 기억할 겁니다. 짤리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참, 한 가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제일은행이 좋은 은행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제일은행 이사회가 좋은 이사회라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각자 알아서 판단할 문제입니다. 판단에 도움이 될 약간의 정보는 제공할 수 있습니다. 제일은행에는 뉴브리지 캐피탈이라는 투자펀드가 대주주로 있습니다. 이 투자펀드는 사실 은행업을 본업으로 하는 금융기관이 아닙니다.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고 제일은행에 투자한 거죠. 경영이 정상화되어서 주가가 오르면 팔고 나갈 사람들입니다. 주가가 얼마나 오를지, 언제 나갈지, 그건 저도 모릅니다.

또 한 가지 주의할 점. 투자펀드가 아니라, 진짜 은행업을 할 사람들은 우리나라 은행에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세계적인 은행인 HSBC나 도이체방크가 서울은행 인수를 포기한 이유가 뭐겠습니까? 한국에 계속 눌러 앉아서 장사를 할 사람 입장에서 보면, 한마디로 돈이 안된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 재벌들은 은행을 인수하지 못해 안달입니다.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나라 재벌들은 HSBC나 도이체방크도 모르는 은행경영의 비법을 알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니면 염불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만 군침을 삼키고 있든지요. 여러분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비법을 알고 있는 재벌이라면 그 많던 종금사 다 말아먹지는 않았겠죠.

3. 엄격한 금융감독?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 금융동향 세미나에 참석한 금융사 직원들 ⓒ 오마이뉴스 김시연

그런데도 재경부는 계속 우깁니다. 은행주식 보유한도를 10%로 올려도 대주주에 대한 금융감독을 엄격하게 할 것이기 때문에 재벌의 사금고화를 막을 수 있다구요. 금융감독? 제가 이런 표현은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할 수 없군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하지 마십시오!

금융감독에 관한 이론은 정말 재미가 없으니 생략하겠습니다. 두 가지만 지적하겠습니다.

첫째, 우리나라 금융감독당국의 능력이 믿을 만한 것이라면 무슨 무슨 게이트라는 게 왜 생기겠습니까? 우리나라 금융산업 전체가 낙후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덜 떨어진 것이 바로 금융감독입니다.

둘째, 공적자금 먹는 하마가 된 부실금융기관들을 조사해 보니 놀라운 사실이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전체 부실의 약 40%가 부도나기 직전 3개월 동안에 발생했다는 겁니다. 이게 실물기업과 다른 금융기관 고유의 특성입니다. 대우그룹이 40조의 부실을 만들어내는데 20년 걸렸다면, 같은 규모의 금융기관이라면 1년이면 족합니다. 그만큼 금융감독은 어려운 겁니다.

금감위와 금감원이 따로 있으니, 금융감독은 재경부의 소관업무도 아닐텐데, 도대체 나중에 무슨 책임을 어떻게 지시려고 이렇게 큰 소리 빵빵 치시는 겁니까? 금감위와 금감원이 자신 있으니 맡겨달라고 합디까? 아니면 옛날처럼 금융감독도 재경부가 다 총괄하시려는 겁니까?

4. 공적자금 회수? 아하, 바로 이 거였군요.

재경부가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는? 재경부가 한 번도 시인한 적은 없지만, 이 역시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정부가 갖고 있는 은행주식 팔아서 공적자금을 빨리 회수하겠다는 거죠. 공적자금 펑크 나면 국민이 세금으로 메꿔야 하니,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더군다나 야당이 국가부채가 400조다, 아니 1000조다 하고 몰아붙이니 오죽 답답하겠습니까?

전세계적으로 제대로 된 은행치고 대주주가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경우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는 거 개나 소나 다 아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지금 증시 상황에서 은행주식을 시장에 내다 팔 수는 없고, 결국 공적자금 회수에 쫓기다 보니 10%, 20%씩 떠안아줄 큰손만 찾게 된 거죠. 그 중에서 외국인 투자펀드는 상상을 초월하는 특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제껴놓고, 이제 특혜 요구도 없이 은행을 인수하겠다는 재벌만 남은 겁니다.

재경부로서는 재벌이 고마울 겁니다. 물론 재벌도 숙원사업 해결하는 거구요. 누이 좋고 매부 좋은데 뭐가 문제냐구요? 암수한몸이 되어 나라 경제 말아먹으면, 국민만 '독박' 쓰는 겁니다. IMF 경제위기로 수백조짜리 족집게 과외했으면서도 아직 이것도 못 깨우쳤다면 대학진학은 포기해야 합니다. 선진국 될 수 없다는 이야깁니다.

IMF로부터 빌린 돈 다 갚았고 IMF 졸업했다고 했죠? 그러면 공적자금 회수와 관련해서 IMF와 맺은 암묵적 약속도 수정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항간의 소문에 의하면, 내년 말까지 뭔가 확실하게 보여주기로 했다면서요? 세계적 동시불황에다 대테러 전쟁으로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현 상황에서 IMF도 내년 말까지 뭔가를 확실하게 보여달라고 고집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무디스나 S&P 등 국제신용평가기관에게 물어보십시오.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은행을 재벌에 파는 것이 국가신인도 제고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IMF 졸업했으니, 이제 좀 여유를 가지고 멀리 내다보면서 신중하게 행동합시다. 재경부께 부탁드립니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5. 참여연대가 독자적인 은행법 개정안을 국회에 입법청원했습니다.

 

 

 

 

▲ 지난 15일 참여연대는 은행의 거리, 서울 명동에서 증권 집단소송법 제정 캠페인을 열었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시민단체는 사사건건 딴지만 거느냐구요? 아닙니다. 대안이 있습니다. 그것도 실현가능한 현실적 대안이 있습니다.

대주주가 없는 은행이 제대로 경영되려면 지배구조가 확실하게 작동해야 합니다. 경영진에 대한 감시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금융감독당국도 열심히 감독해야겠지만, 무엇보다 주주, 예금자들이 감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관치금융도 재벌치금융도 사라질 겁니다.

그래서 참여연대가 이번 정기국회에 독자적인 은행법 개정안을 입법청원했습니다. 계획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법안을 만들어서 국회의원의 소개를 받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내용은 은행 주식을 단 1주만 갖고 있는 주주도 주주대표소송을 낼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것,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쉽게 설명 드리면, 호리에 행장의 경우처럼 주주가 '야, 너 이것밖에 못해. 그만둬'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입니다. 다른 점은, 외국인 대주주만이 아니라 국내 소액주주도 그렇게 할 수 있게 하는 거죠. 훌륭하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데만 초점을 맞추었는데, 다음에는 예금자도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집단소송제의 적용대상을 확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약속드립니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부탁드립니다. 도와주십시오. 우리의 은행, 우리가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혹시 서명운동이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그 때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십시오.

6. 제 체면 좀 살려주십시오.

제 직업이 경제학 교수, 그 중에서도 화폐금융론 교수입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재벌보험사에 보험 들지 말아라, 재벌투신사 수익증권 사지 말아라, 그리고 재벌은행에 예금하지 말아라,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면 제 직업적 자긍심이 뭐가 되겠습니까? 결국 저축한 돈을 장롱 속에 넣어두라는 얘기밖에 안되니까요.

도와주십시오. 재벌이 금융을 지배하게 되면, 나라가 망합니다. 제 체면은 둘째치고, 나라가 망합니다. 은행법을 비롯한 금융관련 법률의 개악을 막고, 제대로 된 법과 제도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여러분 손에 달렸습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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