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과 김상조 경제개혁센터 소장
"기업이 응하지 않으면 방법없다. 공정위의 조사권 강화 절실하다"
(편집자주)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와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는 공동기획으로 '재벌개혁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기사를 연재합니다. 다음은 그 마지막으로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와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과의 대담을 싣습니다.
재벌개혁 연재① – 그 법 통과되면 전 보험해약할 겁니다
재벌개혁 연재② – 내년 4월 시행 앞둔 집단소송제, 재계 반발 여전
재벌개혁 연재③ – 설비투자 위해 출자총액제한 폐지한다고요?
재벌개혁 연재④- 재벌이 금융을 지배하게 되면 나라가 망합니다
사진: 오마이뉴스 이종호 기자
정리: 오마이뉴스 김시연 박수원 기자
"특정 재벌을 위한 규제 완화 아니냐?"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 교수)
"우량기업의 경영권은 보호돼야 한다"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
재벌정책의 '칼자루'를 쥔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과 재벌개혁 민간 전도사 역할을 해온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한성대 교수) 소장이 자리를 함께 했다.
11월30일 오후 3시 과천 정부종합청사에 있는 공정거래위원장 직무실에서 얼굴을 맞댄 이들은 그간 서로의 활동을 격려하면서도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날 이남기 위원장은 시종 "내 기본적인 생각은 김 교수와 같다"면서 김상조 교수의 견해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하지만 최근 대기업 금융보험사의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허용과 기업집단 출자총액제한 완화 등 공정거래법 개정의 실효성 문제를 둘러싸고 서로간의 크고 작은 견해차를 드러내기도 했다.
"금융사 의결권 허용, 삼성에 가장 큰 혜택"
우선 대기업 금융기관 의결권 허용이 "국내 우량기업의 경영권 보호를 위한 차선책"이라는 이남기 위원장의 답변에 김상조 교수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결합이란 큰 부작용을 낳는 워스트(최악의) 정책"이라며 정면 반박하면서 격론에 불이 붙었다.
이남기 위원장은 "이 제도가 기본적으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분리시키는 원칙에는 맞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우량 기업이 최선을 다하는데도 주식수가 모자라 경영권이 넘어가는 것을 막는 방법"임을 강조했다.
▲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반면 김상조 교수는 "금융보험사의 의결권이 허용되면 나머지 4대 그룹의 의결권 상승효과는 1%에도 미치지 않는 반면 삼성 계열사의 지분율은 10~15%까지 높아져 특혜를 입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결국 나머지 재벌들도 금융업 진출을 시도하게 돼 결국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결합이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내년 4월 시행을 앞두고 25% 이상 출자에 대해선 의결권만 제한한 출자총액제한제도에 대해서도 이견을 나타냈다. 김 교수가 "예외조항만 지나치게 늘려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유명무실해졌다"고 지적하자 이 위원장은 "예외조항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오너가 불합리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은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핵심역량 관련 출자를 출자총액에서 제외시킨 것에 대해서도 김상조 교수는 90년대 업종전문화정책의 실패를 떠올리며 그 실효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김 교수는 "기업은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 것이며 오히려 정부가 기업의 핵심역량 결정에 개입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남기 위원장은 "표준산업분류표를 기준으로 삼거나 주무부처가 공신력 있는 연구기관을 통해 추천하게 하는 방식 등을 도입해 사전에 핵심역량 관련 사업의 기준을 명백히 하는 한편 이 문제를 최종 판단할 심의위원회 도입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혼합결합심사 강화"
▲ 이남기 위원장은 공정위 주요 요직을 거친 정통 관료 출신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한편 지금까지 공정위가 주도해온 재벌 지배구조개선 작업이 아직 미흡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식을 같이 했다. 이남기 위원장은 "현 정부 들어 제도 정비를 통해 법적 장치를 많이 만들었지만 여전히 재벌 오너가 자기 지분의 60배가 넘는 '보팅 파워'(투표력)를 행사하는 등 미흡한 점도 있다"며 남은 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재벌들이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주로 다른 업종끼리 합병하는 혼합결합을 활용하고 있다고 보고 내년부터는 혼합결합심사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상조 교수가 불합리한 혼합결합을 막는 계열분리 명령제나 청구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하자 이 위원장은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현 재벌규제정책의 대체수단으로서 장기검토할 문제"라며 일단 유보적 입장을 나타냈다.
YTN, 삼성 문서 공개 요구 거절
또한 이재용 씨 관련 e삼성 계열 인터넷기업 부당지원행위에 대한 공정위 조사를 삼성그룹이 조직적으로 방해한 사실이 최근 YTN 보도를 통해 밝혀진 것과 관련, 김상조 교수는 공정위가 재조사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이남기 위원장은 "분명한 혐의 없이 재조사하는 데는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사실 관계를 확인한 후 재조사 여부를 검토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한편 YTN이 삼성그룹 내부 문건 보도 이후 이남기 위원장이 직접 YTN측에 해당 자료를 요청했지만 YTN측은 취재원 보호를 내세워 이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문제와 관련, 두 대담자는 준사법기관인 공정위의 조사권한이 다른 나라에 비해 미약하다면서 기업에 대한 압수수색권, 금융정보요구권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의견을 같이했다.
다음은 김상조 교수와 이남기 위원장간의 대담 전문을 요약, 정리한 내용.
"경제비상상황에서 빅딜 어쩔 수 없어"
▲ ⓒ 오마이뉴스 이종호 |
김상조: 지난 4년간 재벌개혁정책의 성과를 평가한다면.
이남기: "재벌개혁 타이틀이 크게 붙긴 했지만 '재벌분산정책'이라고 부르는 게 좋을 것 같다. 현 정부 들어 지배구조개선에 역점을 두고 업무를 추진했다. 지난 3년 반의 공과에 대해선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제도 정비 등 법적으로 많은 조치를 만들었다. 그러나 실제 숫자를 놓고 보면 여전히 오너가 적은 지분으로 60배 이상의 '보팅 파워'를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지배구조개선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앞으로 남은 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내도록 하겠다."
김: '빅딜'과 부채비율 200% 등 국민의 정부 초기 2년간 재벌개혁 조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이들 조치가 나름대로 의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생산물 시장과 자금 시장에서 독과점 현상을 오히려 심화시켰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 "당시 언론에서 빅딜과 부채비율 제한이 집중적으로 부각됐지만 공정위도 지배구조개선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30대 기업집단 상호출자를 완전히 없앴고 33조 원에 이르는 지급보증도 금지시켰다. 이와 같은 것들이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당시 빅딜 정책은 경제비상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빅딜로 인해 사업자수가 줄어 경쟁이 제한되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도산 기업의 흡수나 효율성 증대 효과 등을 함께 고민해 결정했다. 부채비율 200% 역시 마찬가지다. '빅딜'이 공정위가 앞장서서 취할 정책은 아니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본다."
김: 출자총액제한 대상 기업집단 규모를 애초 자산 3조 원에서 5조 원으로 완화한 배경은 무엇인가?
이: "나는 원래 3조를 지켰다고 본다. 이 기준대로라면 민간 17개 외에 공기업 7개를 포함돼 24개 기업이 포함된다. 내년 4월 1일이 되면 3개 기업 정도가 더 추가돼 30개에 근접하기 때문에, 3조가 5조로 변한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김: 30대 기업집단 지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보다 (출자총액제한에서) 제외된 재벌 중에는 오히려 지배구조에서 더 문제가 있는 기업들이 있다. 보완책은 무엇인가?
이: "그런 기업들이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은 다른 업종간의 M&A, 특히 혼합결합이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혼합결합'에 중점을 둘 생각이다. 내년부터는 혼합결합 심사를 심층적으로 추진해 기업집단의 영향력 확산 문제를 개선해 갈 계획이다."
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혼합결합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보는데, 불합리한 혼합결합을 막기 위한 계열분리 명령제나 청구제를 도입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독점시장을 막으려면 계열분리 명령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아직 우리나라에 없는 제도지만 지금 같은 재벌규제정책이 언젠가 사라진다고 본다면 그 대체수단으로라도 그런 제도를 가져야 한다.그러나 아직은 장기검토 과제다."
"핵심역량 여부 판단할 심의위원회 검토"
▲ ⓒ 오마이뉴스 이종호 |
김: 출자총액제한 대상에서 핵심역량 관련 출자를 제외시켰는데 이는 결국 90년대 업종 전문화 정책처럼 정부가 기업의 핵심역량 결정에 개입한다는 비판에 직면할텐데.
이: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핵심역량 강화다. 자동차회사가 엔진회사도 만드는 데도 제한했던 규제를 터주겠다는 것이다. 다만 표준산업분류표 8단위 안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거나 주무부처가 공신력 있는 연구기관 통해 추천하게 하는 방식 등을 통해 사전에 기준을 명백히 하겠다. 또한 심의위원회를 만들어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공무원이 사전에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최대한 없애겠다."
김: 예외조항을 늘려 복잡하게 하는 것보다 예외를 단순화시키고 의결권 제한을 없애는 대신 순자산의 25%를 40% 정도로 조정하는 게 더 실효성이 높다고 보지 않는가.
이: "예외조항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오너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이 있어서는 안 된다. 오너가 불합리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은 막는다는 기본 잣대를 갖고 시행령을 만들겠다."
금융계열사 의결권 허용 차선책-워스트 격론
김: 재벌 계열금융기관의 의결권 행사 허용 근거로 재벌의 핵심 계열사에 대한 외국인 지분의 확대에 따른 경영권 위협 가능성을 들었다. 그렇다면 애초 적대적 M&A 활성화를 통해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증시를 활성화하겠다던 정책의지는 포기한 것 아닌가?
이: "포기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분리시키는 원칙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량 기업이고 최선을 다해 운용하는데도 주식수가 모자라 경영권이 넘어가는 것은 바람직한 정책방향이 아니다. 베스트는 아니겠지만 차선책 정도로 생각한다."
김: 난 워스트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법은 삼성그룹에게 최대의 혜택을 주는 법이다. 5대 재벌을 비교해 봤더니 삼성을 제외한 나머지 그룹의 의결권 상승효과가 1%에도 미치지 않았지만 삼성 계열사의 경우 10~15%까지 높아지는 사례가 있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재벌들도 금융업에 진출하려 할 수밖에 없다.
김: 우리 기업들이 경영권 위협과 경영 감시를 구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공정거래법 제11조 개정안에 의해 30%까지 의결권 행사가 가능해졌는데 보통 주총 출석률이 70%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실제 영향력은 40% 가까이 될 수 있다. 이는 결국 경영권 감시를 위한 사외이사 선임이나 해임, 영업 양수도, 피합병 등 주총 특별결의를 원천봉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 아닌가?
이: "주총특별결의를 위해선 출석 주주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30%의 지분율은 이를 저지하기 위한 1/3에는 다소 부족한 수준이기 때문에 주총 특별결의가 원천봉쇄되지는 않을 것이다."
▲ ⓒ 오마이뉴스 이종호 |
김: 최근 문제가 된 삼성 이재용 씨 관련 인터넷기업에 대한 부당지원행위에 대한 재조사 계획은 있는가? 관련 문건자료를 확보한 YTN이 자료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데 이를 강제로 요청해야 하는 것 아닌가? .
이: "YTN 측에 직접 자료를 요청했으나 아직 전달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사에서 취재원을 보호하겠다고 하는데 억지로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이재용 씨 관련 인터넷기업 재조사 여부는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검토할 예정이다."
김: 공정위 조사 방해, 상장회사 이사회 의사록 조작 등 관련 법률 위반에 대한 검찰 고발 계획은? 재조사뿐 아니라 공무집행방해로 (삼성을) 고발한 생각이 없는가?
이: "우리가 가진 정보는 YTN과 한겨레 보도가 전부다. 이미 조사를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를 해서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나는 나름대로 신념이 있고 옳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재조사에 위험 부담이 있다. 공정위가 강제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부인할 수 없는 자료 확보가 필요하다."
김: 준사법기관으로서 공정위가 갖는 압수수색권이나 금융정보요구권 등 조사권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이: "OECD 국가 경쟁당국 가운데 우리 권한이 가장 약하다. 기업이 조사에 순순히 응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과징금을 부과하는 게 전부다. 금융정보요구권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내부거래를 조사하는데 도움이 됐지만 조사권한 강화는 절실히 필요하다. 최소한 기업체가 쉽게 거부할 수 없는 조사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종은 서류에는 없다?
이날 대담은 예정된 시간보다 30여 분을 넘겨 1시간30분만에 끝났다. 대담 서두에 "서류에서는 특종이 나올 수 없다"고 말한 이남기 위원장은 실제 이번 대담을 위해 준비된 16쪽 분량의 '모범답안'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자기 견해를 유감없이 피력했기 때문이다. 때론 기업 실명까지 직접 거론하는 이 위원장의 공격적인 답변은 함께 배석한 공정위 관계자들뿐 아니라 김상조 교수까지 놀라게 만들었다.
대기업규제정책 개정안은 일단 공정위의 손을 떠나 국회로 넘어갔다. 이남기 위원장으로선 한숨 돌렸겠지만 결국 재벌개혁의 칼자루를 쥔 건 공정위라는 점에서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견제와 감시 역할이 계속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이날 대담은 재벌개혁의 양축인 공정위와 시민단체들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 견제하고 협력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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