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반기업 정서는 없다

기업은 국민들에게 삶의 터전이고 국가경제에는 성장의 원천이다. 나라살림에서 이렇게 중요한 존재인 기업을 국민들이 싫어한다면 그 나라는 희망이 없다. 최근 전경련 등 일부 재계에서는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 때문에 기업하기가 어렵다는 넋두리를 자주 하고, 보수언론들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 재계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삶의 터전을 부정하는 나라에 희망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미래가 없다고 단정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반기업 정서는 없다. 사실은 정반대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기업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나라의 미래는 밝다.

전경련이 재벌기업에 대한 국민인식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일반국민들은 기업에 대하여 호감을 갖는 이유로 절대다수가 경제성장을 통한 국부 창출에 기여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긍정적인 쪽을 들고 있다. 기업이 경제성장의 원천이며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기업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반면에 국민들이 기업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이유로는 절대다수가 정경유착, 부당거래와 분식회계, 그리고 총수의 독단적 경영을 들고 있다. 국민들은 가장 반시장경제적이고 반기업적인 불법행위와 황제경영을 분명하게 싫어한다. 이 또한 크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민들이 기업은 불법행위를 해서라도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의 천민자본주의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경련의 조사결과를 종합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기업의 긍정적인 역할을 좋아하면서 기업인, 특히 총수들의 부정적인 행위를 싫어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들의 기업과 시장경제에 대한 올바르고 건강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재계가 반기업 정서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경련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전경련의 조사결과는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의 ‘친기업 정서’를 보여주고 있으며, 국민들이 싫어하는 것은 앞서 지적한 총수들의 불법행위와 독단적인 황제경영 등의 일부 기업인들의 ‘반기업적 행태’인 것이다. 재계가 주장하는 ‘반기업 정서’는 정확하게 ‘반재벌총수 정서’다. 전경련의 조사결과에서 국민들의 44%가 재벌기업에 대해서 안 좋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국민들의 85%가 전문경영인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고 있으며, 오너기업인에 대해서는 44%가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나서 재벌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재벌총수들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과 완전히 일치한다. 전경련은 재벌기업과 재벌총수를 동일시하여 총수들의 불법행위를 싫어하는 것을 반기업 정서라고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몇 해 전 외국의 컨설팅회사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가 22개 조사대상국 중에서 기업에 대해서 가장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 것도 반기업 정서의 근거로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이 또한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이 조사는 일반국민이 아니라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들만을 대상으로 했고 질문의 내용도 ‘기업’이 아니라 ‘기업가’에 대해서 물어본 것이었다. 한 가지 더 분명하게 구분해야 할 것은 ‘기업’과 ‘재벌’이다. 기업과 기업인을 동일시하는 재계의 왜곡된 주장마저도 일부 재벌기업이나 대기업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일 뿐이며 어떠한 조사도 중소기업까지 포함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국민들의 인식을 조사한 근거가 없다.

국민들을 반기업적으로 매도하여 얻는 것이 무엇인가를 오히려 재계에 반문하고 싶다. 회사재산을 빼돌려 자식에게 넘겨주고, 분식회계를 해서 국민과 투자자를 속이고, 정경유착으로 특혜를 받고, 비자금을 만들어 우리 사회를 부패시키고, 불법을 저지르고 외국 도피행각을 벌이는 그런 기업인마저도 사랑해달라는 말인가. 기업가, 경영자, 노동자, 주주, 소비자 그리고 국민들은 두루 기업을 삶의 터전으로 사랑하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나라의 미래는 밝다. 우리나라에 반기업 정서는 없다.

* 이 글은 2004년 8월 25일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글입니다

장하성(고려대 교수, 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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