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재벌개혁 포기 선언, 국회라도 막아야 한다

정부의 출자총액제한제도 완화 등 재벌정책포기에 대한 참여연대입장

1. 어제(15일) 정부가 출자총액제한제도 완화를 골자로 한 재벌정책의 변경안을 제시하였다. 참여연대는 정부의 재벌정책 변경안 중 상호출자금지의 대상 확대 등은 긍정적인 조치로 환영하지만,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완화 부분과 관련해서는 99년 애써 부활시켰던 제도를 재계의 버티기와 협박에 밀려 정부가 굴복·폐기한 것이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15일의 재벌정책 변경안이 정부와 민주당간의 당정협의에서 발표된 내용이지만, 일부 언론에 따르면 민주당 내 일부 의원들이 이번 변경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재벌개혁 후퇴 정책이 국회에서 제지될 수 있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이제 시장경제 원칙을 지키는 최후의 책임이 헌법기관인 개개 국회의원들의 양심적 판단에 맡겨졌으며, 그 책임에는 여·야의 구분이 없을 것이다.

2. 우선 정부의 출자총액제한제도 완화방침은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변경안에 따르면, 순자산 25% 초과 출자분에 대해서는 의결권 행사만 제한할 뿐, 과징금 부과 및 주식처분 명령 등의 기존 제재조치를 삭제했다. 보상과 제재가 없는 규제는 규제가 아니다. 이것은 99년 ‘5+3’원칙에 의해 출자총액제한제도가 부활된 이후 25% 초과분을 해소하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늘려온 재벌의 버티기 작전에 정부가 굴복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제 시장경제의 경기규칙(rule of game)을 정하고 이를 감독하는 심판자로서의 정부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내년 말 대통령 선거에서 어느 정당이 승리하던 간에 관계없이, 그 정권은 재벌의 포로가 되어 불행한 운명을 맞을 수밖에 없다. 심판자의 권위가 인정되지 않는 경기가 공정하게 진행되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물론 정부는 25% 초과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제한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규제의 비용만 높였지 그 실효성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조치이다. 예를 들어, 甲기업이 A, B 두 계열사에 대해 각각 20%와 10%, 도합 30%를 출자하였을 때, 그 초과분 5%의 의결권을 어느 계열사에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 재벌들이 주주총회 때마다 계열사 지분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이 제한 규정을 피해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제한 규정을 어기고 초과분의 의결권을 행사했다면 어떤 제재를 내릴 것인가? 주주총회 결의 자체를 공정위가 무효로 만들 것인가? 과거에도 재벌들이 제한 규정을 어기고 의결권을 행사한 경우가 있었으며, 이 때 공정위가 신문광고 등의 미미한 제재만을 내렸음을 감안하면, 의결권 제한은 사실상 규제로서의 실효성을 전혀 확보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기업 경쟁력 강화와 핵심역량 집중 등 지극히 포괄적인 기준에 의해 적용제외를 허용하고 심지어 공기업 인수 경우까지 적용제외에 포함되었으며, 모든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한 출자와 국가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산업에 대한 출자도 예외인정 대상으로 추가되었다. 도대체 적용제외와 예외인정에 포함되지 않는 출자는 어떤 것인가. 이제 출자총액제한제도는 규제대상보다 규제되지 않는 출자가 더 많은 누더기가 되고 말았다.

실효성 있는 제재 수단도 없고, 빠져나갈 구멍도 많은 규제로 변질되었다면, 사실상 폐기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는가. 이 변경안에 대해 재계 측에서 크게 불만의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다. 재계로서는 숙원사업을 완수한 셈이다.

규제라면, 특히 출자총액제한제도처럼 시장경제 확립을 위해 핵심적인 규제라면, 보상과 제재의 기준을 명확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부채비율 100% 미만의 재벌에게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적용하지 않는 보상을 주었듯이, 25% 제한을 위배한 재벌에게는 확실한 제재를 부과하여야 한다. 현재의 증시상황을 감안할 때 내년 3월말까지 초과분을 해소하는 것이 정녕 문제가 된다면, 해소시한을 1년 더 연장하되 3개월 또는 6개월 단위의 단계적 해소 계획을 징구하고 그 진척 상황을 점검하는 방식을 채택하여야 한다. 그러고도 해소시한까지 완수하지 못한 초과분이 있다면 당연히 과징금을 부과하고 주식처분 명령을 내려야 한다.

3. 한편, 참여연대는 정부의 발표 내용 중 직접적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 금지 대상을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의 기업집단으로 확대한 점에 대해서는 환영하는 바이다. 직접적 상호출자와 채무보증은 가공자본을 창출하고 과다차입 및 동반부실화를 초래하는 폐해가 있기 때문에 그 대상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오래 전부터 주장해왔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가 그 대상을 다소나마 확대한 것은 다행스러운 면이며, 향후 그 대상을 더욱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규모기업집단 지정제도를 현행 자산순위 기준에서 자산규모 기준으로 변경한 것은 일면 논리적으로 인정되는 부분이 있으며, 그 기준이 되는 자산규모를 공정위가 애초에 제시했던 3조원에서 5조원으로 완화한 것에 대해서는 비록 아쉬움이 있지만, 직접적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 금지 대상을 확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산규모 기준을 10조원 등으로 더 완화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는 수용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 진념 재경부장관이 출자총액제한제도와 대규모기업집단 지정제도를 3년간만 한시적으로 운영하고 그후 폐지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이번 발표에서는 명시적인 일몰조항이 포함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3년 후에 없어질 규제를 성실히 이행할 만큼 순진한 재벌은 없다는 점을 근거로 참여연대는 일몰조항의 도입을 반대한 바 있다. 다만, 일몰조항을 도입하지 않은 것이 규제 자체가 사실상 지금부터 폐기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라면, 이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에 불과하다. 규제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보상과 제재의 명확한 기준을 규정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4. 또한, 지난 8월 공정위가 입법예고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포함되었던, 재벌소속 금융보험회사의 계열사 주식 의결권 행사 허용 방침은 여전히 살아 있다. 재경부가 입법예고한 증권투자신탁업법 및 증권투자회사법 개정안에 의한 재벌소속 투신사 및 뮤추얼펀드의 계열사 주식 의결권 행사 허용 방침도 마찬가지이다. 재벌들이 국민의 저축자금을 이용하여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도록 정부가 법을 바꾸는 것은 산업과 금융의 분리원칙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특정 재벌의 이익을 위해 정부가 정책을 변경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

5. 당연히 확대되어야 하는 직접적 상호출자 금지와 채무보증 금지를 대가로 정부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재벌소속 금융기관에게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참여연대는 정부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또 재벌소속 금융기관에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법 개정방침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며, 만약 이러한 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을 때 국회가 반드시 이를 저지해 줄 것을 촉구한다. 끝.

경제개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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