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PEF 도입 논쟁을 지켜보면서

흔히 미국 사람들은 80년대를 “탐욕의 10년”(decade of greed)라고 한다. 왜냐하면 적대적 인수합병, 정크 본드, 차입에 의한 기업인수 등이 그 시기의 키워드였기 때문이다. 이런 풍조는 영화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월 스트리트”라는 영화에서 마이클 더글러스가 연기한 게코(개코가 아니다)는 탐욕과 허위의 화신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자본주의는 마치 쓰레기더미에서 피어난 꽃처럼 야한 화장을 덕지덕지한 채 천박한 웃음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조금 더 인간적인 모습을 한 자본주의도 있다. 줄리아 로버츠를 일약 미국의 연인으로 자리매김한 “귀여운 여인”에서 리차드 기어의 직업도 게코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게코는 배신을 당하고 모든 것을 잃었지만, 리차드 기어는 신데렐라를 손에 넣었다는 점일 것이다.

시민단체 웹사이트에 글을 올리면서 난데없이 왠 영화타령일까. 사모투자전문회사(소위 PEF) 때문이다. 80년대에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필자에게 각인된 PEF의 이미지는 월 스트리트에 나온 게코 그 자체였다. 부자들에게 돈을 모아서 회사를 산 뒤 노동자들을 반쯤 자르고, 지점을 삼분의 일쯤 폐쇄한 뒤 기업가치를 높여 되파는 장사꾼 바로 그것이다. 물론 아니러니컬하게도 자본주의는 이런 과정을 통해 효율성을 회복해 나간다.

그러나 흥하는 기업을 상대로 돈장사를 하는 전통적인 금융업과는 달리 망하는 기업을 상대로 돈장사를 하는 PEF는 본질적으로 더 많은 편법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마치 타오르는 불꽃을 향해 무작정 뛰어드는 불나비처럼 이 업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편법과 위법을 구분하지 않고 탐욕을 추구하다가 사법적 심판대에 서곤 했다. 마치 게코가 그랬듯이.

우리 나라에도 이제 PEF의 시대가 조만간 열릴 것 같다. 정부가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을 개정하여 PEF를 도입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PEF는 자본주의 경제에 매우 유익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산업폐기물을 먹어치우고 분해하는 박테리아가 없으면 자연은 순환할 수 없듯이 망해가는 기업을 적당히 정리하여 그 속에서 경제적 가치를 건져내는 PEF가 없다면 자본주의는 그 건전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다.

그러나 온갖 군데에 박테리아가 서식하면 물건이 ››어 나가듯이 PEF 역시 적절히 통제되지 않으면 오히려 사회에 역작용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우리 나라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PEF가 기존의 모든 정책목표를 초월하는 방식으로 도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관련 규제도,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원칙도, 금융기관 자산운용의 건전성도, 심지어 은행의 소유에 관한 규제도 모두 “어떻게 해서든 PEF를 화끈하게 도입해야 한다”는 명제앞에 모두 폐기되고 있다. 차관회의를 통과했다고 하면서 정부가 발표한 보도자료에 나타난 수정안은 문제의 본질을 치유하지 않은 채, 그저 시늉만 내면서 마냥 앞길을 재촉하는 형국이다.

굳이 문자화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항간에는 PEF의 도입배경을 놓고 이러쿵 저러쿵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필자 역시 물증은 없으나 마음은 이러한 추측에 상당 부분 경도되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지난 일주일 동안 PEF와 관련한 여러 형태의 논의의 장을 거치면서 이런 “경도된 추측”은 더욱 확고해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필자가 보기에 정부가 PEF의 도입과 관련하여 무슨 일이 있어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이 3가지 있다. 하나는 은행에 대한 소유규제를 현행 수준으로 강화하는 것, 다른 하나는 공정거래법에 나타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원칙을 되살리는 것, 마지막 하나는 연기금의 PEF 투자를 통제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고, 또한 연기금 돈이 PEF에 들어오도록 한 뒤 그것을 가지고 은행을 사버리는 것” 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훼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흐음. 쩝.]

이래서 필자는 걱정이다. 또 누군가 멀쩡한 사람이 앞뒤 분간않고 설치다가 게코처럼 추락할 것 같기 때문이다. PEF의 도입을 바라는 업계의 사람들도 요새는 불안해한다. 이런 식으로 문제가 복잡해지면 자칫 PEF의 도입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런 조항 없어도 우리는 장사할 수 있는데 정부가 왜 고집을 피우지? 공연히 논란거리가 되느니 차라리 저런 조항 없애고 빨리 그리고 조용히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우리는 더 좋은데……” 아마도 이것이 업계 사람들의 솔직한 심정인지도 모른다.

필자는 80년대에 경제학을 공부하러 미국에 간 뒤 근 20년만인 지난 2000년에 미국으로 연구년을 떠났다. 그 때에는 우연히 파산법을 공부하게 되었다. 도통 알 수 없는 법률 용어 속에서 우연히 하나 아는 용어가 나와서 무척 반가왔다. 그것은 파산을 전후하여 나타나는 “차입에 의한 기업인수”(소위 LBO)라는 용어였다. 그러나 파산법 판례에 나타난 LBO는 소수주주를 등쳐서 기업의 가치를 빼돌리는 전형적인 수단이었다. 물론 이런 것들은 나중에 부인권이라는 법리에 의해 원상회복된다. 그러나 씁쓸한 입맛을 어쩔 수 없었다. 20년만에 게코를 다시 만난 느낌이었다.

그리고 요즘 필자는 다시 게코를 만나는 느낌이다. 빨리 게코가 귀여운 여인을 만나서 리차드 기어처럼 무사히 행복한 생활을 해야 할텐데 세상일이란 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전성인(홍익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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