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 행정지침으로 분식사면특별법 제정한 금감위

감독당국이 오히려 불법 조장하고 시장의 불확실성만 높여

국민과 국회와 대통령을 기만한 금감위원장 사퇴해야

지난 6일 금감위가 발표한 ‘과거 회계기준 위반사항의 수정시 감리 미실시’ 세부지침으로 인해 향후 2년간 한국 기업의 재무제표는 사실상 신뢰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기업회계기준을 엄격하게 집행함으로써 투명성을 확보하고 투자자를 보호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금융감독기구가 기업회계기준의 사문화를 만천하에 공언하였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금융감독기구가 오히려 기업의 분식회계를 눈감아줄 방법을 고심하는 모습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으며, 불법을 오히려 조장하는 금감위는 이미 그 존재 이유를 상실했고 윤증현 금감위원장은 더 이상 금융감독기구의 수장으로 재직할 명분이 없음을 분명히 지적한다.

과거 분식회계를 집단소송 대상에서 2년간 제외하는 증권집단소송법 개정과 기업 재무제표에 대한 감리 면제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다. 오히려 ‘과거 분식’만을 집단소송에서 유예할 경우 이에 따른 불확실성의 증폭을 막기 위해서는 더욱더 철저하게 감리에 임해야 한다.

그렇다면 증권집단소송법의 유예가 왜 감리 면제로 귀결되었는가? 그것은 그동안 재계가 궁극적으로 원했던 것이 증권집단소송법의 유예가 아니라, 분식회계에 대한 특별사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식회계에 대한 특별 사면은 기존의 사법체계를 뒤흔드는 것이며 증권집단소송법 유예만으로는 외감법과 증권거래법에 따른 민형사상의 책임까지 면하게 할 방법이 없다. 정부 역시 이를 추진할 명분이 없으며, 이를 받아들일 국민도 없다. 결국 재계와 금감위는 법이 아니라 감리와 관련된 하위 규정을 손질함으로써 분식회계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하기로 한 것이다.

원고가 피고로부터 직접 증거를 획득할 수 있는 discovery제도가 없는 우리 나라의 소송절차법 체계에서 분식회계를 밝혀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은 감독당국의 회계감리이다. 따라서 금융감독기구가 감리를 하지 않는다면 분식회계는 발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분식회계 특별사면을 위해서는 감리 면제가 필요했던 것이며, 금감위는 자신의 존립근거인 기업회계기준을 사문화시킴으로써 사실상 ‘분식회계사면특별법‘을 제정하는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 행위를 하게 된 것이다.

증권집단소송법 개정을 분식회계사면특별법으로 확대하기 위해 금감위는 끊임없이 ‘말 바꾸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금감위는 증권집단소송법 개정 논의 초기 일부 언론을 통해 감리 면제 추진 계획이 보도되자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공식적으로 해명했다. 그러나 불과 한달 남짓 지난 2월 초, 국회 법사위 논의 중에 전기오류 수정에 대해서는 감리를 면제할 방침임을 비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규정변경에 따른 지침을 통해 기업회계기준에 따른 처리방법(즉 전기오류수정) 외에도 관련항목 수정을 통한 분식 해소(즉 이른바 역분식)에 대해서도 감리를 면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말 바꾸기뿐만이 아니다. 최근 증선위 서면결의를 통해 규정을 변경하고 이를 제때에 공개하지 않은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불투명한 행정에 대한 의혹까지 불거진 상태이다. 만약 참여연대가 금감위의 3월 11일 감리 면제 방침 대통령 보고 사항에 대해 공개질의하지 않았다면, 과연 금감위가 외부감사 및 회계등에 관한 규정 변경과 세부지침을 상세하게 발표했을지도 의심스럽다.

결국 금감위의 감리 면제 방침은 사실상 과거 분식회계에 대해 증권집단소송법 외에도 외감법, 증권거래법 등 타 법에 의한 민형사적 책임까지 면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증권집단소송법 개정안의 취지는 과거분식을 ‘집단소송 대상에서만’ 제외하는 것이다.

실제로 증권집단소송법 개정 당시 재경부와 금감위 등 정부는 입을 모아 타 법에 의한 민형사적 책임을 면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여 법안 개정에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금감위가 감리를 면제하거나 지적 대상에서 제외할 때 검찰이 먼저 인지수사에 나서거나 투자자가 기업에 책임을 묻는 것은 실질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타 법에 의한 민형사적 책임까지 면제된 것이며, 이는 국민에 대한 기만행위에 다름없다. 그리고 여기에는 증권집단소송법을 2년 유예시킨 법사위 위원들을 비롯한 국회의원들에게도 그 책임이 있음을 지적하지 아니할 수 없다. 국회는 무엇보다도 증권집단소송법을 유예시킨 취지가 기업의 과거 분식회계에 대한 사면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집단소송 대상에서만 제외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만약 그 취지가 분식회계의 사면이 아니라면 법 개정 취지를 넘어서는 규정을 제정한 금감위에 대해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금감위는 과거분식의 해소 방안으로 전기오류수정뿐만 아니라 기업회계기준에서 인정하고 있지 않는 ‘관련항목으로 회계처리하는 경우’(역분식)까지 인정하였다. 또한 과거분식을 ‘상당부분’ 수정하는 경우 감리제외 대상으로 밝히고 있으며, 그 구체적인 사례로 분식금액의 60%를 수정하는 경우도 상당부분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분식의 경우 전기오류수정으로 일시에 회계처리하지 않는 방법은 모두 기업회계기준 위반 사항이다. 따라서 감독위는 이번 외감규정 개정을 통해 기업회계기준과 감사기준을 사문화시켰다. 더구나 감독당국이 역분식으로 과거분식을 해소하는 것, 나아가 그것도 이년동안 나누어서 해소할 수 있도록 인정해준 가장 큰 이유는 기업들이 드러나지 않게 과거분식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결국 금감위의 이번 조치는 어떤 기업이 얼마의 분식을 어떻게 인식하였는지 그리고 향후 얼마를 인식할 것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시장에 제공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분식을 하지 않은 다른 기업의 재무제표까지 한꺼번에 신뢰성을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제 한국의 자본시장은 원래 분식을 하지 않은 기업, 과거 분식이 있었으나 이를 수정한 기업, 과거 분식을 여전히 수정하지 않은 기업을 전혀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세계의 어떤 금융감독기구도 이렇게 감독대상의 불법을 조장하고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규정을 만든 사례는 없을 것이다. 결국 금감위는 증권집단소송법 대상 기업의 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기업 전체의 재무제표에 대한 신뢰성을 훼손함으로써 기업의 건전성과 시장의 투명성을 오히려 악화시키는, 즉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정책을 허용하고 말았다.

금감위의 감리 면제 방침은 말 그대로 ‘분식사면특별법’과 다름없다. 금감위는 시장의 투명성 확보와 투자자 보호라는 금융감독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스스로 훼손했다. 따라서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금융감독기구가 오히려 시장의 불투명성만 확장하는 정책을 추진한 사실에 분명하게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참여연대는 윤증현 금감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향후 금감위가 원칙적으로 철저하게 감리를 실시하도록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경제개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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