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근거 없이 ‘과거분식 사면’한 개정 외감규정의 문제점, 두산산업개발 분식회계 자진공시 사례에서 극명하게 드러나

형사소송법 등 여타 관련 법률을 금감위 규정으로 무력화시켜

두산측 설명만으로는 분식 경위 납득되지 않아

검찰은 엄정한 수사 위해 금감원에 특별감리 요구해야 할 것



지난 8일(월), 두산산업개발은 1995년부터 2001년까지 두산건설 시절에 2,797억원의 분식회계를 했다는 사실을 자진 공시하였다. 지난달 ‘가족회의 결정’에 따라 그룹회장이 된 박용성 회장이 두산그룹의 지주회사격인 두산산업개발의 업무보고 과정에서 친형 박용오 전 회장 재임시절 2,797억원을 과다 계상한 것을 발견했다며 그 사실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수천억원대의 분식회계 사실이 알려졌다 하더라도, 과거분식을 자발적으로 수정한 경우(심지어 역분식 등의 불법적 방법으로 수정한 경우에도) 감리를 실시하지 않기로 한 지난 3월의 개정 ‘외부감사 및 회계 등에 관한 규정’(외감규정)에 따라 금감위는 두산산업개발에 대하여 제재는커녕 감리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두산에 대해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외감규정의 상위 근거법인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위반 등에 따른 처벌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어, 상위법과 하위규정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게 되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상위법의 위임범위를 현저히 일탈한 개정 외감규정의 문제점이 이번 두산산업개발 사례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것으로 보고, 금감위의 위법, 위헌적 외감규정 개정을 다시 한번 규탄한다.

참여연대는 지난 3월 금감위가 개정한 외감규정과 실무지침이 상위법을 위배하는 위법, 위헌적 규정임을 꾸준히 지적해 왔다(참여연대 보도자료, ‘과거 분식수정에 대해 감리 미실시하는 금감위 규정은 위법, 위헌적인 규정’(2005.4.18) 참고). 외감규정의 상위법인 외감법 어디에도 기업회계기준에 위배되는 회계처리를 용인하거나 이에 따른 처벌을 면제하는 근거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감위가 전기오류수정 외에 관련항목의 수정(역분식)까지 허용하고 감리마저 실시하지 않기로 한 것은 명백한 상위법 위반이다.

금감위는 외감규정 개정의 근거로 지난 2월에 개정된 ‘증권집단소송법’ 부칙조항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개정 증권집단소송법은 자산 2조원 이상의 82개 상장기업에 대해 분식회계 혐의로 인한 집단소송만을 2년간 유예했을 뿐인데, 금감위의 개정 외감규정은 자산 70억원 이상의 3만여 외감기업 전체에 대해 감리를 유예함으로써 집단소송은 물론 개별민사소송과 형사처벌까지도 사실상 사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감독당국이 감리를 실시하지 않으면 외부인은 분식의 실체를 전혀 알 수 없고, 따라서 민형사상의 책임을 추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두산산업개발의 분식회계 자진공시는 이른바 ‘형제의 난’으로 인해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자 분식회계 부분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미연에 봉쇄하기 위해 취해진, 즉 개정 외감규정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악용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판단된다.

실제로 이번 두산산업개발의 분식회계 자진공시 내용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여러 가지 의문점을 내포하고 있다.

두산산업개발은 ‘95년부터 01년까지 건설공사의 매출을 선인식하여 매출 2,797억원을 과대계상한 바 있으며, 이로 인하여 04년 12월말 현재 동 금액이 매출채권과 잉여금에 각각 과대계상 되어 있다’고 공시하였다. 두산산업개발의 진술대로라면 1995년부터 무려 10년 가까이 약 2,800억원 가량의 가공금액을 매출채권에 계상해 왔다는 것인데, 이는 고려산업개발과의 합병 전인 2003년의 매출채권 잔액 4,001억원의 약 70%에 이르는 금액이다.

그런데 건설회사의 특성상 가공채권 금액은 매년(길어야 2-3년을 주기로) 새로운 분식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매출채권 잔액의 70%에 이르는 금액을 매년 새로운 분식으로 대체한다는 것은 회계실무상 지극히 어려운 일로서, 회계법인과의 공모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으며, 두산그룹 총가일가의 사전인지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 건설업계는 2001년 이후 유례없는 호황을 구가하였다. 그러나 두산산업개발의 재무제표에는 호황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고, 더군다나 두산산업개발은 이 기간 중 분식을 해소하지도 않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오늘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두산산업개발은 1999년 유상증자시 대주주 일가가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주식인수 자금에 대해 이자를 회사 돈으로 대납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두산산업개발이 자진공시한 분식 내용과 회사의 내부보고용 문건 내용이 그 구체항목에서 많이 다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두산산업개발의 자진공시 내용이 분식회계의 실체를 그대로 다 드러낸 것이라고는 전혀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두산그룹 총수일가의 비자금 조성, 외화 밀반출, 그리고 분식회계에 대한 실체적 진실은 검 찰 수사에 의해 밝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검찰은 관련 의혹 전부에 대해 엄정한 수사를 하여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분식회계의 실체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금감원에 특별감리를 요청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금감위는 두산산업개발의 과거분식 수정을 신뢰할 수 없는 정황증거들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만큼 특별감리를 통해 분식회계의 실체를 철저히 밝히고 엄정히 제재하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 금감위는 차제에 위법, 위헌적 외감규정을 폐기하고, 회계투명성 제고를 통해 투자자를 보호하는 본연의 설립목적에 충실하기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

두산산업개발을 분식회계를 자진공시한 바로 그날(8일), 금감위는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 전략’의 일환으로 자본시장의 국제화를 적극 추진하기 위한 추진기획단을 발족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자본시장 국제화를 위한 5대 중점 과제 중의 하나로 ‘회계기준의 국제정합성 확보’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금융감독기구가 위법, 위헌적 외감규정을 통해 기업의 분식회계를 방조하면서 동시에 자본시장의 국제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에 불과하다.

금감위는 본연의 설립목적에 충실하여 기본원칙을 지켜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분식회계를 사실상 사면하는 위법, 위헌적 외감규정은 즉각 폐기되어야 한다. 참여연대는 올 정기국회에서 금감위의 외감규정 개정에 따른 문제점에 대해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추궁이 이루어지도록 촉구할 것이다.


경제개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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