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궤변과 오만의 산물, 재벌총수체제 집착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점검한다②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을 가로막는 총수체제가 불가침의 성역일 수 없다

최근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단체와 재벌 소속 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Korea Discount가 없다’거나, ‘재벌 기업이 영업수익이나 주가수익률 면에서 전문경영기업에 비해 월등하다’는 보고서들이 발표되고 있다. 정부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정책과 소액주주 운동의 정당성과 근거에 대해 ‘전방위 공격’을 가하고 있는 보고서는 많은 경우 재계의 이익을 위해 논리적 일관성과 엄격성을 희생시키고 있다.

실제로 이들이 제시하는 사례나 통계 자료들을 보면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아전인수격 해석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이에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점검한다’ 시리즈에서 각계 전문가의 글을 통해 기업지배구조와 관련된 재계의 주장이 얼마나 근거있고 타당한지 점검할 예정이다.

김우찬(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의 ‘이익단체 발간보고서를 읽을 때 주의해야할 5가지 사항’에 이은 두번째 글은 송호창 변호사의 ‘궤변과 오만의 산물, 재벌총수체제 집착론’이다. 이 시리즈는 인터넷참여연대 <경제프리즘>코너를 통해 연재되고 있다. 편집자 주

총수의 경영권 보장을 목소리 높여 얘기하는 삼성그룹

최근 재벌총수 체제의 아성을 위협하는 모든 요소에 대한 삼성의 목소리가 드높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여기에는 날카로운 각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삼성의 요사이 발언은 예전과 달리 상당히 조직적이고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기업의 경영권을 법적으로 보장해 달라’는 윤종용 부회장의 주장과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통한 양면작전이 바로 그것이다.

언제 단 한 번이라도 사법시스템이 재벌의 경영권을 위협한 적이 있었는가

얼마 전 윤 부회장은 대검찰청의 검사들 앞에서 “기업이 과거에 나쁜 일도 많이 했지만, 결국 경제의 가장 큰 주체는 기업”이므로 “인권에 대응하는 기업의 경영권” 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윤 부회장은 “아무런 이유 없이 파업으로 회사가 손해를 봤을 때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노동운동으로 인한 경영권 행사의 애로를 검찰에 전달하였다.

필자는 이 강연을 직접 듣지 못해서 이 발언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만약 이것이 윤 부회장이 생각하고 있는 경영권 보호의 취약성의 사례라면, 필자는 경영권 문제에 대한 윤 부회장의 인식의 현실성과 균형 감각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필자가 알기로는 우리 사회의 사법 시스템은 단결권,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을 행사하는 노동자보다도 이른바 경영권을 행사하는 지배주주를 언제나 과잉보호해 왔다. 멀리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들의 비자금 수사에서부터 가까이는 2002년 불법대선자금 수사에 이르기까지 현직 재벌그룹의 총수 중에 형사처벌을 받고 실형을 산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그들은 대부분 기소단계에서 불구속상태로 수사를 받다가, 재판과정에서 모두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집행유예로 나오고, 다시 몇 년 있으면 기업 활동에 애로를 해소해준다는 명분하에 사면을 받는 것이 현실 아닌가.

반면에 노동자들의 경우 파업에 대한 형사책임 뿐 아니라, 각종 가처분, 가압류로 인한 민사상 책임까지 재벌총수들보다 몇 배는 더 가혹한 책임을 진다. 현실에 이럴진대 윤 부회장이 검찰의 면전에서 노동자와 비교하여 보다 강한 경영권 보호를 주장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한편 윤 부회장은 검찰이 ‘기업’의 경영권을 더욱 보장해야 한다고 표현하였는데, 이때 ‘기업’은 사실은 ‘재벌총수’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더욱 더 문제이다. 윤 부회장은 여전히 재벌기업과 재벌총수를 동일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발언은 “총수와 같은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기업이 얼마나 희생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외환위기와 그 이후 개벌총수에게 기업의 의사결정이 집중되는 문제를 해소하려는 기업지배구조 개선 노력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마저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영미식, 유럽대륙식도 아니라면 재벌총수의 입맛에 맞는 기업지배구조가 정답인가

윤 부회장의 주장이 ‘재벌총수의 경영권’에 대한 법적 보호를 강조한 것이라면,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는 ‘재벌총수 체제’에 대한 경제적·정책적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정부와 시민단체의 주장을 영미식의 ‘소유와 경영 분리’라고 전제한 후, 영미와는 전혀 경제적 토양이 다른 한국의 경우는 ‘재벌총수에게 의사결정권이 집중된 재벌체제가 적합’하고, ‘지배주주인 총수에 의한 경영의 결과 한국기업은 탁월한 경영성과와 월등히 높은 주가상승률을 기록’했으며, 이처럼 ‘재벌의 성과가 좋아서 한국경제가 발전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이 보고서의 논리는 그 전제부터가 잘못되었다. 도대체 어느 시민단체가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지배구조 개선의 목표로 단정하였는가.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필자가 아는 한 시민단체에서 이런 주장을 한 적은 없다. 지배구조 개선은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함으로써 기업가치를 제고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투명성과 책임성의 원칙은 영미식 모델만의 것인가. 유럽대륙식 모델은 지배주주의 불투명하고 무책임한 의사결정을 용인하고 있다는 말인가. 영미식 모델이 우리의 토양에 맞지 않는다면, 삼성은 유럽대륙식 모델처럼 노동자와 채권자를 기업경영에 참여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러면 삼성에는 왜 노조가 없는가. 영미식도 아니고 유럽대륙식도 아니라면, 삼성이 요구하는 지배구조는 무엇인가. 노동조합도 채권자도 그리고 외국자본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철옹성과 같은 재벌총수의 경영권인가.

물론 지금 몇몇 재벌 그룹의 경제적 성과는 외환위기 이후 몇 년 사이에 눈에 띠게 향상되었다. 삼성전자는 당기순이익 100억불 클럽에 가입했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국가경제 전체를 얼어붙게 한 외환위기의 주범이 재벌이란 것은 이미 백일하에 드러났고, 재벌 또한 그 책임을 인정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란 사실을 돌이켜 보면,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는 과거에 대한 냉철한 평가도 없이, 그리고 실증연구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 요건도 결여한 채 현재의 재벌체제를 옹호하는데 급급해 하고 있다.

또한 삼성경제연구소는 자신이 언급한 재벌기업의 탁월한 경영성과는 상당 부분 우리 사회의 다른 부분의 희생의 대가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수출 경쟁력에는 물론 삼성전자의 부단한 연구개발 노력이 밑받침이 된 것이 사실이나, 인위적인 환율 저평가로 인한 가격 우위도 그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환율 방어를 위해 작년 외국환 평형기금 운용과정에서 약 10조 가량의 손실을 입었고, 이것은 국민 전체의 부담이 되었다. 삼성전자의 10조 당기순이익의 이면에는 환율방어를 위한 인위적인 환율 저평가와 이로 인한 내수 위축 및 양극화의 심화가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시민운동의 삼성비판, 총수에게는 뼈아프나 삼성의 경쟁력에게는 약이 될 것

삼성의 재벌 체제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은 삼성이란 기업에 흠집을 내기 위함이 절대 아니다. 본래 명약은 쓰기 마련이고, 이러한 질책은 오히려 삼성의 무궁한 발전과 성장을 위함이다. 필자가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음하고 있는 삼성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것은 총수 일가의 지배권 유지와 승계를 위해 회사의 경쟁력을 스스로 훼손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삼성은 제살 깎아먹기 경영을 계속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03년 1,000억원, 2004년 6,000억원에 더하여 최근 삼성카드에 5,576억원을 추가 출자하였다. 그러나 영업 관련성이 전혀 없는 부실 카드회사에 출혈적 출자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가 단지 재벌총수의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삼성카드가 문을 닫으면, 삼성카드가 25%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에버랜드에 대한 지배권이 흔들리게 되고, 이는 곧 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이자 이재용 씨로의 승계구도에서 핵심고리인 삼성생명의 문제로 곧바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삼성전자가 삼성카드(삼성카드에 합병된 삼성캐피탈 포함)에 출자한 총금액은 1조 6,493억원이고, 이로 인한 2003년, 2004년 2년간의 삼성전자의 지분법 평가손실은 1조 6,700억원에 달한다. 이건 영미식 모델에서도 유럽대륙식 모델에서 불가능한 일이고, 오직 한국의 재벌체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삼성전자가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재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무런 사업관련성도 없는 분야로 문어발식 확장경영을 꾀하다가, 그리고 지배주주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부실계열사를 무한정 지원하다가 망한 사례는 수도 없이 확인된다. 이런 제살 깎아먹기가 가능한 것은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을 가로막는 총수체제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치열한 산업전쟁에서 결코 성공은 영속적이지 않다. 지금과 같은 제살 깎아먹기가 계속되는 한, 재벌총수에게 모든 기업지배권이 독점되는 한, 삼성 ‘신화’는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건전한 지배구조가 기업의 단기적 성공을 보장해 주지는 않을지 모르나, 불건전한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이 장기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송호창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실행위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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