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기업지배구조와 투자

지난 몇 년간의 저투자, 저성장기조를 놓고 재계와 일부 진보학자들은 그 원인을 외환위기 이후 줄곧 이루어진 미국식 주주자본주의 도입과 기업지배구조 개혁에 돌리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재벌의 안정적인 경영권 보호와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최근 민족주의 감정과 결부되면서 이제는 일반인들의 머릿속에도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듯하다. 심지어 관료와 국회의원들도 이에 동조하는 입법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론과 실증분석에 입각한 보다 냉철한 고찰이 필요한 때이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투자부진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전개되어 왔다. 초창기에는 주로 공정거래법상의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관련된 것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대규모기업집단 소속기업들의 경우 순자산의 25% 범위 내에서만 국내 다른 기업에 지분출자를 할 수 있도록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유망한 투자처가 있어도 이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계열사간 출자는 내부 자본시장(internal capital market)의 핵심인데 출자총액제한은 이를 어렵게 하여 투자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결국 외부에서의 자본조달이 용이하지 않은 고위험의 대규모 투자는 포기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투자가 부진하다는 것이다.

매우 그럴듯해 보이는 주장이지만 그 근거는 매우 미약하다. 다섯 가지 점을 지적하고 싶다. 먼저, 출자총액제한은 주식취득만을 제한하는 것이지 실물투자 자체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출자총액제한 대상 기업이 직접 수행하는 설비투자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둘째, 주식취득의 경우에도 대다수 대상기업들이 그 한도 (순자산의 25%) 이내에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셋째, 기업경영활동에 대한 제약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다양한 형태의 예외가 인정되고 있다. 동종·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종에의 출자, 신사업분야에의 출자, 원료공급·부품을 생산하는 중소벤처기업에의 출자, SOC 민간투자회사에 대한 출자, 민영화되는 공기업인수를 위한 출자, 국가·자치단체가 30% 이상 소유하고 있는 회사에 대한 출자, 외국인투자기업에의 출자 등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예외가 많이 인정되고 있다. 넷째, 그 동안의 주식취득을 보면 신주인수보다는 실물투자와 연결되기 힘든 구주인수가 대부분이었고, 목적도 실물투자보다는 부채비율 감축을 위한 자본 확대, 차입금 상황 등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주요내용』, 2004). 다섯째, 1998-2003년도 자료를 통해 실증분석을 해본 결과 피출자기업의 실물투자와 피출자규모 간에는 상관관계가 “0”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계열사 출자가 실물투자에 도움을 준다면 상관관계가 양(+)이고 통계적으로도 유의하게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시장개혁 추진을 위한 평가지표 개발 및 측정』, 2003).

따라서 재계가 출자총액제한의 폐지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출자총액제한이 폐지되면 계열사간 출자가 자유롭게 되고, 각 계열사에 대한 총수의 내부지분률이 높아져 경영권이 보장된다 (entrenchment effect). 뿐만 아니라 직접지분에 비해 계열사 지분비중이 높아지면서 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유인이 떨어지고 (agency problem), 이들 계열사로부터 직접지분이 높은 계열사로의 부당내부거래를 촉진 시킨다 (tunneling effect). 이에 근거한다면 재계는 경영권 유지와 부당내부거래를 통한 사적편익추구를 위해 출자총액제한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존속되어야 하는 제도이지 폐지되어야 하는 제도가 아니다.

출자총액제한제도에 이어 투자부진의 원인으로 재계와 일부 진보학자들이 두 번째로 지적하는 것이 외국인투자자들의 지나친 배당요구이다. 단기실적주의를 추구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나치게 많은 배당을 요구한 나머지 해당기업들이 투자재원을 소진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실물투자, 특히 장기투자가 감소했다는 것이다. 또 배당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CEO에 대해서는 차기 주주총회에서 이사선임의 건에 반대하는 방법으로 압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여섯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먼저, 외국인투자자들이 국내 투자자들에 비해 단기실적을 추구한다는 것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 평균적인 주식보유기간만 계산해 보더라도 2003년도의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은 9개월인데 반해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4개월, 국내 투자신탁회사들은 단 2개월인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기업은 순이익의 내부유보만으로 투자재원을 조달하는 것이 아니다. 과다배당 지급으로 내부유보가 없다고 하더라도 신주를 발행할 수 있는 것이고, 차입도 가능하다. 셋째, 외국인들의 배당요구로 투자재원이 소진되었으면 기업들의 현금비율도 낮아져야 하는데 오히려 외환위기 이후 줄곧 상승하였다. 2004년도의 경우 대기업들의 매출액대비 현금비율은 9%에 이르러 6-7%였던 90년대 초반에 비해 높다 (삼성경제연구소,『기업 현금보유수준의 진단 및 시사점』, 2005). 넷째, 설사 과다배당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외국인들에게만 차등배당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배당으로 지급된 현금이 국내에 잔류해 있다면 다시 투자수익률이 높은 곳으로 흘러들어 가서 실물투자와 연결되었을 것이다. 외국인들에게 지급된 현금배당도 상당부분 국내에 재투자되었다면 국내기업의 투자재원 소진은 근거 없는 주장이 된다. 다섯째, 배당성향 또는 배당수익률이 높은 기업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투자기회가 불투명하거나 새로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성숙기의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기업의 경우에는 배당을 적게 지급한다고 해도 실물투자와 연결되지 않는다. 여섯째, 실증분석 결과를 살펴보아도 외국인투자자 비중과 배당성향, 외국인투자자 비중과 실물투자 간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상장사협의회,『상장회사 배당 및 유상감자제도 개선방안』, 2005 및 한국증권연구원,『외국인주주가 배당 및 투자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분석』, 2005).

외국인투자자들의 과다배당 요구에 이어 투자부진의 원인으로 재계와 일부 진보학자들이 세 번째로 주장하는 것이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인수위협이다.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인수위협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들은 불가피하게 자사주 매입을 위한 현금을 많이 보유할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투자재원이 부족해서 우리나라의 실물투자가 감소했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세 번째 주장이 두 번째 주장과 상충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세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먼저, 앞서 지적했지만 내부유보만 투자재원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내부유보금은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현금형태로 보유하더라도 신주발행이나 차입을 통해 얼마든지 투자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인수위협이 실존한다고 볼 수 없다. 외국인투자자 비중은 오래전부터 시가총액의 40%를 넘었지만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기업인수는 단 한건도 없었기 때문이다. 소버린자산운용과 SK(주) 경영진간의 대결도 어디까지나 정관개정과 일부 등기이사 교체를 위한 위임장대결이었을 뿐이지 절대 지분 인수를 통한 경영진의 반영구적 일괄교체는 아니었다.

셋째, 현금보유는 경영권 방어수단이 아닌 경영권 또는 위임장대결 촉발원인이 될 수도 있다. 대리인문제의 태두 Michael Jensen의 Free Cash Flow Theory에 따르면 현금비중 또는 현금흐름이 높은 기업은 오히려 적대적 인수대상이 된다. 인수기업이 인수대상기업의 현금을 이용하여 인수에 따른 차입금을 손쉽게 상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현금이 많으면 결국 낭비하게 되고 이를 더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인수기업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Jensen, 1986『Agency Costs of Free Cash Flow, Corporate Finance and Takeovers』American Economic Review).

한편 Faleye (2001)에 따르면 높은 현금비중이 자사주 매입 등에 사용됨으로써 적대적 인수 가능성을 떨어뜨릴 수 있겠으나, 위임장대결은 오히려 촉발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Olubunmi Faleye, 2001『Cash and Corporate Control』). 따라서 높은 현금비중은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인수위협 또는 위임장 대결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투자부진에 따른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재계와 일부 진보학자들의 주장은 이론적으로나 실증적 분석에 있어서나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그릇된 민족주의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진실을 왜곡시키는 주장들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최근 줄기세포의 진실을 덮어버리고자 했던 보수언론과 기득권층의 주장과도 결코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김우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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