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그래도 재벌기업 감시가 필요한 이유

‘권리’란 ‘법으로 보호되는 일정한 지위’이다. 당사자들 간의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하기 위해 법률 영역에서 권리라는 개념은 너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권리란 개념을 사용함에 있어서 구분하여야 할 중요한 개념이 권한인데, ‘권한’이란 ‘타인을 위하여 일정한 법률효과를 발생하게 하는 행위를 할 수 있는 법률상 자격’으로서 대표적인 예가 ‘대리인의 대리권, 이사의 대표권’이다. 즉 권한이란 권한 행사자 자신이 아니라 권리주체에게 모든 효과를 귀속시키고자 하는 행위 자격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러한 책 속의 개념은 현실에서 변질되고,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주주를 대신하여 경영권한을 행사하는 이사의 경영권이 주주권을 압도할 뿐아니라 나아가 주주의 이익에 상반되는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작년 내내 삼성의 이사회가 이런 행태를 보여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더니 올해는 연초부터 두산이 주주총회를 앞두고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두산의 지배주주 일가가 주도하는 경영진의 다수가 올 1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에관한법률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 죄목은 분식회계를 비롯하여 비자금 조성 및 횡령 등인데, 결국 총수일가의 이익을 위해 경영권한을 회사와 주주에게 해가 되도록 행사했다는 것이다. 법원의 유죄판결은 피고인들의 과거행적에 대한 책임을 물어 그에 부합하는 처벌을 가하게 된다. 아직 확정판결이 나오진 않았으나 두산 경영진은 스스로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더불어 향후 두산그룹을 지주회사체제로 개편하면서 지배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공약을 내 걸었다. 진행중인 재판에 정상참작 사유를 제공하여 2심에서 처벌의 강도를 낮추면서 동시에 실추된 시장에서의 평가를 재고시키겠다는 계산임을 누구라도 알 수 있다. 그 의도가 무엇이든 공약사항이 지배구조의 개선으로 이어져 더 이상 불법행위가 불가능하도록 보장되기만 한다면 쌍수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두산의 공약만으로 이를 환영하기는 이른 것 같다. 공약을 실현할 첫 무대인 주주총회에서부터 지배구조 개선의 의지를 의심케하는 행태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두산 경영진은 ‘획기적인 체질개선’을 내세우면서도 동시에 바로 두달 전에 범죄행위로 유죄판결을 받는 당사자인 박용만 전 부회장을 ㈜두산의 이사로 재추천하였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집중적인 성토를 당하고서야 마지못해 박용만 이사 추천을 철회하긴 하였으나 과거 불법행위의 대가를 치르고 향후 책임경영을 통해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공약을 스스로 공허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재벌기업들의 태도를 접하면서 ‘책임경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실 ‘책임경영’의 책임은 ‘경영’이란 개념에 내재된 하나의 요소이므로 ‘책임경영’은 ‘역전 앞’과 마찬가지로 동어반복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영진이 권한행사에 따른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았다는 역사적 의미가 포함된 것이고, 그래서 ‘이제는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 굳이 용어사용을 반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과거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던 경영진이, 앞으로도 책임을 질 의사와 능력이 없으면서도 ‘책임경영’이란 공약을 내세우는 것은 최소한 막아야 하지 않을까. 법원의 유죄판결과 재벌기업 경영진의 책임경영, 투명경영 발표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기업감시가 필요한 이유이다.

송호창(변호사,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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