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삼성공화국’ 비판세력이 1%뿐이겠는가

이건희 회장의 고려대 ‘철학’ 명예박사 학위 사건 이후 삼성그룹이 연일 곤혹을 치루고 있다. 이른바 삼성공화국 논란이다. 급기야는, 역시 삼성답게, 이건희 회장의 엄중 지시가 떨어졌고, 부랴부랴 구조본 팀장과 계열사 사장 40여명이 참석하는 그룹 사장단 회의인 수요회에서 2주 연속 대책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가 6월 1일 “삼성 사장단 ‘국민기업 정착 방안’ 토의”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보도자료이다.

이 보도자료를 읽으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 삼성의 미래를 진정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삼성공화국 비판을 삼성의 눈부신 성장에 대한 “단 1% 반대세력”의 시기심 어린 투정으로 간단히 치부해버리는 삼성의 오만함 때문이다.

예수님의 12 제자 중에서도 배신자가 나왔거늘(약 8%의 반대세력), 어찌 삼성은 99%의 절대적 지지를 획득한 진리의 담지자임을 자부할 수 있는가? 어떻게 이다지도 오만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은, 삼성공화국 비판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의 성과를 시기하는 것도 아니고, 나아가 삼성전자의 성장을 억제해야겠다는 반시장적 정서의 표출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삼성전자는 더욱더 성장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더욱더 많은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해야 한다. 또한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이 더욱더 많이 나와야 한다. 여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여기에는 단 1%의 반대세력도 없다.

삼성공화국 비판의 핵심은, 삼성이 경제환경에 탄력적으로 적응하는 기업조직의 차원을 넘어, 경제환경을 왜곡하고 오염시키는, 그럼으로써 그 자신의 조직적 탄력성은 물론 국민경제의 동태적 활력마저 질식시키는 경제권력으로 변모하였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금산법과 금융지주회사법 문제 등 삼성의 위법행위를 적법행위로 둔갑시키는 법개정안 사례에서 확인되었듯이 삼성의 힘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권능을 이미 초월했다. 국민소득 2만불, 산업혁신 클러스터, 기업도시 등 정책 의제의 선점 사례에서 보듯이 삼성의 기획 아이디어는 정부관료의 머리를 완전히 압도했다. 고위 판검사와 유망한 변호사를 블랙홀처럼 싹쓸이하는 과정에서 ‘삼성에서 전화 받았느냐’가 법조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유일 기준이 되었다.

삼성전자 제품을 선전하는 전면광고 바로 옆에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을 찬양하는 기사가 실린, ‘사회의 소금’기가 짝 빠진 싱거운 신문만 남았다. 수백억원의 발전기금 기부를 받기 위해 구조본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CEO 대학총장님의 자화상 속엔 ‘비판지성의 빛’이 꺼진 곡학아세의 어둠만이 짙다.

삼성의 요구를 재계 전체의 요구로 포장하는 전경련을 ‘삼경련’으로 부르는 여타 경쟁재벌의 냉소 속에서조차 경쟁질서의 실종에 직면한 두려움이 짙게 배어 있다.

삼성공화국 비판은 바로 입법, 행정, 사법, 언론, 대학, 경쟁기업 등 우리 사회의 감시와 견제의 메커니즘 모두가 예외 없이 삼성의 경제권력 앞에 무릎 꿇는 현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필자가 굳이 ‘정의론’까지 들먹이지는 않겠다. 삼성공화국은 기본적으로 경제문제이기 때문이다. 삼성공화국은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이 많이 많이 출현’하는 것을 막는 절대적 진입장벽으로 작용함으로써 한국경제의 미래를 잠식하고 있다.

삼성공화국은 이건희 회장 본인의 위기경영론과는 정반대로 위기징후에 둔감한 환경지배자로 군림함으로써 그 스스로의 미래를 잠식하고 있다. 따라서 삼성공화국은 한국경제 전체에 대한 위협이자 삼성그룹 및 이건희 회장 일가 그 자체에 대한 위협이다.

한편, 필자가 그 보도자료를 보면서 삼성의 미래를 진정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삼성공화국 비판의 연원, 즉 ‘이재용씨 세습 문제’와 ‘무노조 경영 문제’에 대한 일말의 반성도 엿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삼성은 ‘국민기업’ 운운하기 이전에 주식회사의 실질부터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 소액주주와 보험계약자의 돈을 훔치면서, 하도급기업과 노동자의 희망을 짓밟으면서, 어찌 국민기업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수 있는가? 어떻게 이다지도 후안무치할 수 있는가?

삼성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삼성의 미래의 총수 이재용씨를 결코 내려올 수 없는 쓰레기통 위에 올려놓은 것은 그 1%의 반대세력이 아니라 바로 삼성이라는 사실이다. 고 이병철 회장이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짊어진 그 멍에를, 이건희 회장이 삼성자동차 실패로 짊어진 그 멍에를, 이재용씨는 총수로 등극하기도 전에 주렁주렁 매달고 평생을 가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를 진심으로 충고한다.

삼성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이건희 회장 일가를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처럼 될 수 없게 한 장본인은 그 1%의 반대세력이 아니라 바로 총수 일가 자신들이라는 사실이다. 노조를 부정하는 발렌베리 가문을 상상할 수나 있는가? 법질서를 무시하고 공권력을 농락하는 발렌베리 가문을 상상할 수나 있는가? 사회의 존경과 신뢰는 결코 돈으로, 그것도 회사 돈으로, 즉 남의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를 진심으로 충고한다.

삼성이 “진정한 국민기업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진정 삼성의 미래를 걱정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단 1%의 반대세력”으로 치부하는 그 오만함부터 버려야 한다. 그리고 이재용씨를 총수로 만들기 위해서는 불법도 적법으로 만들 수 있다고 오판하는 ‘삼성 내부의 단 1%의 가신그룹’부터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총수의 말 한마디면 CEO 40여명이 일사분란하게 복창하는 기업문화를 효율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총수 일가의 세습왕조적 사고방식’부터 위기경영론의 관점에서 재고하여야 한다. 삼성에 위기가 닥쳐온다면, 그것은 내부로부터의 위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민주노동당의 진보정치연구소 홈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 경제개혁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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