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KT&G 사태, 위험한 이분법

SK㈜의 경영권을 위협했던 소버린 사태는 우리에게 외국자본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주었다. 이른바 ‘먹튀’다. 최근 칼 아이칸이라는 전설적 기업사냥꾼의 KT&G 공격으로 인해 외국자본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원 마련 문제로 온 나라가 세금 논쟁에 휘말려 있는 상황에서, 외국자본이 교묘히 세금도 안내면서 조 단위의 단기차익을 먹고 튄다면 기분 좋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이런 정서적 거부감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경영권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면, 십중팔구 주가는 오른다. 주가 상승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무능한 경영진에 대한 외부 견제가 효율성 증진에 매우 효과적인 수단임은 분명하다. 그러면 외국자본의 공격이 없었더라도, 그 효율성의 증진이라는 국민적 이익이 자동적으로 실현되었을까? 글쎄다.

칼 아이칸이 KT&G에 요구한 인삼공사의 공개(IPO), 유휴부동산의 매각 등은 사실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국내외 증권사들의 애널리스트 보고서에 다 쓰여 있던 내용들이다. 그러면 왜 KT&G의 경영진은 보유자산의 잠재가치를 현실화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는가. 이게 문제다. KT&G는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회사정관에 좋은 말을 써놓았다고 해서, 지배구조가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내부감시 뿐만 아니라 외부견제도 필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이번 사태는 KT&G 경영진으로 하여금 외부의 요구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게 함으로써 결국 효율성을 증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른 한편, 외국자본의 경영권 위협을 막으면 ‘우리 모두’의 이득이 되는가? 이건 정말 글쎄올시다이다. 외국자본이 다 같지 않듯이, 우리 한국민도 모두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자본이 국내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면, 국내기업의 경영권을 철옹성처럼 지켜주는 데도 사회적 비용이 든다. 문제는 경영권 보호의 편익은 누가 갖고,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이다.

최근 국내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금융관련법상의 금산분리 원칙을 재검토하고 공정거래법상의 재벌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설사 경영권 보호가 중요한 정책목표라고 할지라도, 투자자의 권익보호와 경쟁적 시장구조의 유지를 내팽개칠 정도로 유일한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도대체 누구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누구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려 하는가.

또한 독약처방, 차등의결권 등 회사법 상의 방어수단을 새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문제의 핵심은, 어떤 방어수단을 도입할 것인가라기보다는, 방어수단 사용의 의사결정권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이다. 독립성을 갖춘 사외이사 및 기관투자자가 사실상 전무한 우리의 현실에서 이사회의 재량으로 경영권 방어수단을 사용할 수 있게 하면, 현 경영진의 지위는 그 능력과는 무관하게 철옹성이 될 것이다. 이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요즘 사회통합 내지 상생협력이 사회적 담론이 되고 있다.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너와 나의 이익이 다르다’는 사실부터 인식해야 한다. 이걸 은폐하는 ‘외국자본 대 국내자본’이라는 이분법은 그래서 위험하다.

※ 이 컬럼은 한국일보에도 실렸습니다.

김상조(한성대 교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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