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바보와 배임의 차이

질문 1: 자기 재산을 엄청 싼값으로 팔아치운 사람, 또는 큰 이익이 될 거래를 스스로 포기한 사람을 뭐라고 하는가? (답: 바보)

질문 2: 회사 재산을 엄청 싼값에 팔아치운 이사, 또는 회사에 큰 이익이 될 거래를 포기한 이사를 뭐라고 하는가? (답: 배임범죄자)

바보와 배임의 차이는 무엇인가. 자기에게 손해가 될 비합리적 행동을 한 사람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할 뿐,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다. 그러나 주식회사의 이사는 문제가 다르다. 이사는 주인(주주)의 돈을 관리하는 대리인이기 때문에 주인에 대한 의무를 위배한 경우, 동정은커녕, 민·형사상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이것이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회사법의 기본원리다.

물론 사업에 실패했다고 해서 무조건 이사나 경영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경영판단의 원칙(business judgement rule)에 따라 보호할 정당한 경영행위와 민·형사상 책임을 추궁할 배임행위 사이의 경계선을 긋는 일은 정녕 솔로몬의 지혜를 필요로 하는 어려운 문제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재벌총수의 배임행위에 대해서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경우가 별로 없었다. 재벌총수의 배임특권을 보호하는 쪽으로 경계선이 워낙 편향되게 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선진경제를 추구한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대리인이 주인의 돈을 멋대로 빼돌리는 회사에 어느 투자자가 주식을 장기 보유하고, 어느 은행이 돈을 빌려주고, 어느 노동자가 열심히 일하겠는가.

그러나 이제 우리 나라에서도 배임특권의 철옹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난 12월 2일 검찰이 삼성에버랜드 CB발행과 관련하여 전현직 대표 2명을 배임혐의로 기소한 것은 재벌총수 일가의 배임특권을 근절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8만 5천원 또는 10만원에 거래한 기록이 있고 순자산가치가 20만원이 넘는 에버랜드 주식을 그 10분의 1도 안되는 가격인 7,700원에 발행한 것이 배임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배임인가. 과세당국이 적용하는 세법상의 보수적 평가기준을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기업의 이사가 사용한 경우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으며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명시한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 2심판결문에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여전히 세법 운운하며 적법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강심장인가. 자신 재산이라면 한 푼이라도 더 받아냈을 현명한 사람들이 회사 재산은 헐값에 팔아 넘기고도 어찌 이리 당당한가.

한편, 에버랜드의 주주였던 계열사들은 하나같이 이 유리한 조건의 CB 인수를 스스로 포기하고 총수 아들에게 몰아주었는데, 이는 그룹차원의 사전기획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이 배임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배임인가. 자신의 재산증식 기회는 결코 놓치지 않았을 현명한 사람들이 회사에 큰 이익을 가져다 줄 CB 인수는 스스로 포기하고서도 어찌 이리 당당한가.

검찰의 에버랜드 임원 기소는 너무나 당연한 조치다. 물론 여전히 아쉬움이 남고, 해결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우선 이건희 회장은 CB를 헐값에 발행한 에버랜드의 이사이자, CB 인수를 포기한 계열사의 지배주주였다. 즉 이건희 회장은 이중 배임이다. 당연히 추가 기소되어야 한다. 그 외에도, 삼성SDS BW발행을 통해 이재용씨에게 편법증여하거나, e삼성 등 이재용씨의 인터넷 사업실패 부담을 계열사들이 떠안아준 사건 등에 대해서도 검찰은 즉각 배임혐의 조사를 하여야 한다. 여타 재벌들의 경영권 승계 과정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정당한 경영행위와 위법한 배임행위 사이의 경계선을 새로 긋는 작업을 시작했다. 관건은 어리석은 바보 주인이 되지 않도록 대리인인 이사의 행동을 철저히 감시하고 책임을 추궁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이 기사는 12월 4일 ‘한국일보’에 기고된 칼럼입니다.

김상조 (경제개혁센터 소장, 한성대 경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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