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솜방망이 처벌’ 검찰 강력 비판

참여연대 “아쉬움을 넘어 분노”, 검찰청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

불법대선자금 사건 수사 종결을 하루 앞두고, 불법자금 제공 경영인에 대한 검찰의 ‘봐주기’ 수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는 20일 오전11시 대검찰청 앞에서 “정치인 수사에 비해 처벌 최소화에 초점을 맞춘 기업인 수사”를 규탄하며 “검찰이 정치권 뿐만 아니라 경제권력을 가진 재벌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라”고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성명서를 통해, 불법대선자금을 받은 정치인들에 비해 차떼기, 책떼기 등의 수법으로 400억원대의 불법자금을 제공한 기업인들에 대해서는 최악으로 처벌을 축소하는 등 너무나 형평에 맞지 않는 수사로 결론짓고 있다며 “또 하나의 권력인 경제권력, 즉 재벌에게 굴복한 검찰의 모습은 아쉬움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고 규탄했다.

참여연대는 100억원대 이상의 불법자금을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방법으로 전달한 경우까지도 불구속기소 처분을 내리는 것은 범죄의 중대성에 비해 지나치게 관대한 처사라고 항의하며, 최근 정몽구 회장이 불기소 처분을 받은 현대자동차그룹과 임원 1명이 불구속 기소된 삼성그룹을 예로 들었다.

박근용 경제개혁팀장은 특히 ‘처벌최소화’를 염두에 두고 조사과정조차 지나치게 축소한 것이 아니냐며 검찰수사를 강력히 비판했다.

박 팀장은 “수백억원대의 불법대선자금이 총수에게 보고되지 않고 정치권에 전달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느냐”며 제대로 된 수사를 하려면 당연히 총수에 대해서까지 조사를 벌였어야 했다고 주장하고, “검찰이 정치권에 대한 수사를 중심에 두고 시작했다 하더라도 조사과정에서 명백하게 드러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대상자가 누구든 처벌해야 한다”며 검찰의 자의적 수사권 행사라고 항의했다.

박 팀장은 경제인 수사가 경제위기 특히 투자위축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와 관련하여서도, 재벌은 수십년간 지속된 정경유착의 공범이며 수백억원대 불법자금의 조성과정 또한 분식회계, 리베이트 수수, 탈세, 배임 횡령 등 백태만상의 범죄행위들임을 지적한 뒤 “투자자들은 기업의 성장잠재력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지 총수 개인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불법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우리 시장의 문제점이 오히려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성명서 전문이다.

정치권 수사에 비해 너무나 미약한 기업인 수사결과

검찰이 경제권력 재벌로부터 독립하기를 촉구한다.

드디어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졌던 불법대선자금 제공사건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작년 10월 SK해운의 분식회계와 그에 따른 비자금 조성에 대한 검찰의 조사이후 LG그룹의 ‘차떼기’, 삼성그룹의 ‘책떼기’ 등 정치권과 기업의 백태만상이 드러나고 규모가 작은 그룹에서는 10억 내지 20억원을, 그리고 상위 재벌그룹들은 100억을 넘어 다 쓰지도 못해 돌려주었다고 할 정도의 400억원대에 육박하는 불법대선자금이 제공된 사실들이 밝혀져왔다.

그리고 총선을 앞두고 불법대선자금을 받는데 관여한 정치인들은 대부분 조사가 완료되었고 또 대부분 구속상태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으며, 대부분은 1심재판이 종결된 상황이다.그동안의 정치인에 대한 엄정하고 가차없는 검찰의 조사 및 처벌방침은 많은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비록 불법자금의 최종 사용처에 대한 수사, 이른바 ‘출구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아쉬움은 있으나 검찰이 드러낸 정치권의 추악한 면모는 정치개혁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총선을 통한 정치지형 변화에도 영향을 줄만큼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권력인 경제권력, 즉 재벌집단들에게 굴복한 검찰의 모습은 아쉬움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수십년간 지속된 정경유착의 구조속에서 공생했던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법위반임을 알면서도 돈을 제공한 기업인, 그것도 수천만원이 아니라 수십 수백억원을 제공한 기업인도 불법행위자들이다. 또 정치권에 제공한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기업본질적인 비리’라 할 수 있는 분식회계나 리베이트 수수, 탈세, 배임횡령 등 갖가지 수단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기업인들에 대한 수사는 단순한 정치자금법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정치인에 대한 수사처리가 종결된 이후 지난 4월부터 본격화되어 이제 막바지에 이른 기업인에 대한 수사결론은 우리를 너무 실망시키고 있다. 인신구속을 엄격히 해야하는 면을 감안하더라도 100억원 이상의 불법자금을 그것도 아주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경우에까지 불구속 기소를 하는 것은 범죄 행위의 중대성에 비해 너무 관대한 것이 아닌가?

또 검찰이 기업인 개인의 자금인 경우와 기업의 본질적인 비리를 통해 조성된 자금인 경우를 구분하겠다고 여러차례 말한 바 있는데, 지금껏 자금 조성경위의 진상을 제대로 공개한 사례가 없다. 롯데그룹, 금호그룹, 한진그룹이 제공한 10억에서 20억원대의 자금이 어떤 계열사에서 어떤 방식으로, 또 누구의 주도하에 조성된 것인지 검찰은 공개한 바가 없다. 그나마 금호그룹에 대해서는 계열사 자금으로 채권 10억원을 조성했다고 했으나 그 계열사가 어딘지는 밝히지 않았다. LG그룹의 경우에도 150억원의 불법자금이 대주주 가족의 재산이라는 식의 발표만 있었지, 그를 입증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된 바가 없으며 1심 재판 과정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다.

100억원을 제공한 현대차그룹의 경우는 더 황당하다. 100억원중 20억원을 현대캐피탈이라는 계열사에서 조성했다고 했으나, 이에 대해서는 현대캐피탈에서 근무한 적도 없는 임원 1명만을 기소하는 것으로 끝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왜 그 임원이 횡령혐의로 처벌받아야 하는지 납득이 안된다.

그리고 삼성그룹의 경우에도 수백억원을 대선자금으로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지방선거에까지 개입하려는 등 기업인의 활동범위를 넘어 정치를 좌지우지 하려는 범죄행위를 저질렀고, 또 불법정치자금 등의 용도로 무기명채권을 조성하는 방식이 너무나 조직적이고 광범위했다는 점에서 행위의 심각성은 비교할 바가 없다. 그러나 삼성그룹의 경우도 역시 임원 1명만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가 끝이난다고 한다.

게다가 검찰이 기업측 항변의 타당성을 고려하는 수준을 넘어 그들의 체면을 고려해서 100억이 넘는 불법자금의 주인에 해당하는 재벌총수들을 직접 조사도 하지 않은 것은 또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 대체 재벌총수가 무엇이길래 검찰은 그들을 조사도 못했는가 검찰은 재벌총수를 감히 접근하지 못할 또 하나의 성역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인가

이쯤되면 검찰의 기업인에 대한 수사는 처벌범위를 어느 선에서 적당히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책임자대신 처벌할 ‘희생양’을 선정하는 일에 치우쳤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우며, 사건의 진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파헤치려하지 않았다고 규정할 수 밖에 없다.

국민들은 검찰이 어떤 경우에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검찰권을 행사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평등하게 법을 집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인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으로 국민적 성원을 얻었다고 해서 재계에 대한 법집행은 미온적이거나 선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경제권력인 재벌로부터 독립한 검찰의 모습은 이번 불법대선자금 수사에서도 보여주지 못했다. 검찰은 재벌로부터도 독립하여 엄정하고 평등한 법집행을 했는지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며, 지금이라도 각 기업인들이 제공한 비자금이 어떤 방식을 통해 조성되었으며 비자금 조성과 관련된 관여자가 누구인지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촉구한다.

2004.5.20

참여연대

최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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