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부실감사

관료들의 정책실패 책임 묻지 않고 ‘관치금융’ 초래할 대안 제시

전윤철 원장, 감사원법 위반하여 특감 관여, 신뢰성에 근본적 의문

1. 오늘 감사원은 신용카드 대란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감사는 카드대란의 모든 원인을 금융감독체계의 비효율성 문제로만 몰아감으로써 재경부 및 금감위 관료들의 정책실패·감독실패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을 묻지 않고 면죄부를 주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더군다나 전 재경부장관으로서 카드정책을 담당했던 전윤철 감사원장이 감사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규정한 법률을 위반하여 감사에 참여함으로써 기본적인 절차적 정당성과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또한 관치금융이 야기한 카드대란의 해법으로 감독기구의 관료조직화라는 관치금융을 오히려 심화시키는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미래의 한국 금융산업 역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이번 감사원의 카드특감은 총체적 부실감사 그 자체이다. 따라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감사원 감사 결과의 모든 문제에 대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적극 대응할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2. 참여연대가 수차례 지적해온 것처럼 분명 ‘카드대란’은 재경부 – 금감위 – 금감원으로 3원화된 감독체계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은데 그 근본원인이 있다. 특히 법령 제·개정 등 카드 정책을 담당하는 재경부가 금감위·금감원 등의 감독기구를 직·간접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카드사에 대한 건전성 감독이 단기 경기부양 등의 거시경제정책에 종속되었으며, 그 결과 재경부의 정책실패를 조기에 교정하지 못하고 감독기구가 시스템 리스크 방지라는 명분하에 감독권의 엄정한 집행을 유보(Supervisory forbearance)하는 감독실패의 악순환을 야기한 것이다.

따라서 금융감독체계의 비효율성은 감독권한이 세 기관에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재경부에 모든 권한이 집중된 데 비해 재경부의 책임성을 물을 수 없는, 즉 감독기구간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붕괴된 왜곡된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관료에는 면죄부를 주고, 감독기구를 관료조직으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감사원의 결론은 본말이 완전히 전도된 것이다.

3. 또한 감사원이 지적한 대로 카드대란에는 길거리 모집 금지 해제 결정을 내린 규개위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동안 규개위는 ‘규제완화 내지 규제폐지 만능주의’에 사로잡혀 금융회사에 대한 건전성 감독이라는 정부의 중요한 권한을 무력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러한 문제는 규개위 구성의 펀파성을 감안할 때 불가피한 결과이다. 규개위가 재계의 목소리만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인사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규개위는 정부발의 법률안은 물론 각종 시행령과 규칙을 사전심의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규개위의 결정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은 전혀 없다. 더구나 규개위가 규제완화라는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그 위험성은 사실상 통제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규제개혁을 위해서는 규개위부터 개혁되어야 한다. 규개위 인적구성의 균형 회복은 물론,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키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여야 한다.

4. 전윤철 감사원장은 자신이 카드정책을 집행한 전 재경부장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감사에 참여함으로써 본인과 관계있는 사안의 심의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감사원법 제15조 제1항의 제척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했다. 동시에 이것은 전윤철 원장이 감사원장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을 상대로 감사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자신이 관여했던 사안일 경우 회피하겠다던 약속도 뒤집은 것이다.

감사원은 이에 대해 원장 역시 다른 6인의 감사위원과 동등하게 의결에 참여했으므로 감사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이는 제척규정 위반은 그 자체로 하자사유가 된다는 행정법상의 기본원리를 무시한 변명에 불과하다(재판의 경우 제척규정을 위반하였을 때는 절대적 상고이유에 해당할 뿐 아니라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참여연대는 국가 최고의 감사기구가 이러한 기초적인 법 원리조차 무시한 채 내놓은 감사결과의 공정성에 심히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전윤철 원장이 주도한 이번 카드 특감은 출발부터 잘못되어 있었다. 전 개경부장관으로서 관료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오히려 관료들의 권한을 강화하는 감독기구 개편안을 제안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따라서 국회는 전윤철 원장의 제척 규정 위반과 감사결과의 왜곡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여야 할 것이다.

5. 감사원은 이번 감사에서 ‘카드대란’의 근본원인인 정책 결정자의 직무유기나 관치금융 등의 권한남용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감사원은 내수진작 차원에서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한도의 폐지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한 강봉균 전 재경부장관, 정덕구 전 차관, 이헌재 전 금감위원장, 2001년 금감원의 카드규제 건의를 ‘소비회복에 찬물을 끼얹는다’면서 거부하여 카드사 부실을 키운 진념 전 재경부장관, 이정재 전 차관, 강철규 전 규제개혁위원장, 2003년 4월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카드사에 대한 적기시정조치 발동을 유보하고 금융권의 팔을 비틀어 5조원의 자금을 지원한 김진표 전 재경부장관, 변양호 전 금융정책국장, 이정재 금감위원장, 김석동 금감위 정책1국장과 같은 최고 정책 책임자들에 대해서는 카드 대란에 대한 책임 여부나 정도에 대해서 추궁하지 않은 채 기관경고로 넘어간 반면, 금융감독원 부원장에게는 책임을 묻는 등 형평성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또한 카드 규제정책의 건의를 묵살한 재경부의 책임은 묻지 않고 민간기구인 금융감독원의 책임만을 강조한 점 역시 이번 감사가 보여준 명백한 한계이다.

6. 감사원은 환란 위기에 대해 직무유기로 고발된 강경식 전 재경원장관이 법원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은 데에서 볼 수 있듯이 정책실패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원의 판단은 ‘직무유기’라는 특정한 형사책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지 고위공직자가 의회와 국민에게 부담하는 정치적 책임성(accountability)까지 면제해준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감사원은 고위공직자의 경우 설사 법적으로는 문제 삼기 어려운 행위라 할지라도 정책실패에 대해서는 최고 책임자의 책임을 지적한 선례가 여럿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의약분업 사태이다.

감사원은 의약분업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주무장관인 차흥봉씨에 대해서 “차 장관이 국민생활에 심각한 불편을 주고 재정파탄을 일으킨 문책사유가 있다”고 지적하고, 다만 이미 현직에서 퇴임했다는 이유로 고발을 하지 않은 전례가 있다. 감사원 스스로가 의약분업이라는 정책실패에 대해 최고 책임자의 정치적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의약분업과 달리 카드사 부실 문제는 최근 LG카드의 추가 출자전환 논란에서 보듯 현안으로 잠복해있을 뿐 아니라, 과거 잘못된 정책의 책임자 중 다수가 여전히 카드 정책을 담당하는 재경부장관, 금감위원장, 주무국장의 지위에 있으며 또한 상당수가 국회 관련 상임위의 위원으로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당연히 이번 감사에서 최고 책임자의 정책실패에 따른 책임 소재를 분명히 물었어야 했다.

감사원의 이러한 태도는 책임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금융감독기구의 공무원 조직화를 언급한 스스로의 제안과도 배치된다. 감사원은 4백만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 금융시장을 시스템 리스크 직전까지 몰고 간 대표적인 정책실패 사례인 카드 정책에 대해 관료들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으면서 책임성 제고를 위해 공무원 조직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를 자문해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감사원은 ‘카드 대란’과 관련된 관료의 책임을 면책하여 미래에도 동일한 금융위기와 동일한 관치금융이 재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기대를 시장에 심어놓음으로써 시장규율에 대한 감시자로서의 자신의 책무를 져버렸다.

7. 감사원은 금융 법령의 제정 권한과 감독 기능이 분리되어 있음으로 인해 카드 대란이라는 비상 상황에 감독기관이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판단 하에 장기적으로 금융법령 제정 권한과 감독 권한을 보유한 공적 조직인 금융의 신설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감사원의 개선안은 관료의 무능·무책임성으로 발생한 금융불안을 또 다시 관료적 규율의 강화로 해결하려는 것으로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물론 현재의 금융감독체계가 갖고 있는 결함은 시급히 개선해야 하지만, 이를 빌미로 금융감독기구의 관치적 색채를 강화해서는 안된다. 금융감독기구의 조직개편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금융감독정책에 대한 정부 및 정치권의 직·간접적 영향력을 차단하고 상호 견제와 균형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감사원의 금융감독기구의 관료조직화안은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먼저, 금융감독기구의 운영에 있어 금융산업의 발전 속도를 따라 갈 수 있는 전문적 인력의 확보가 필수적인데, 금융감독기구는 그것이 공무원조직인 한 아무리 개방직과 아웃소싱을 확대한다 하더라도 관료조직 특유의 경직적 예산운영과 조직 구조 하에서 시장참여자 수준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없다.

또한, 감사원이 말하는 공무원 조직이 민간기구에 비해 보다 높은 책임성을 갖는다는 주장도 카드 특감 결과에 비추어 보면 전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감사원의 제안이 실행된다면 재경부 금융정책국의 관료들이 공무원으로 신분이 바뀐 금감원 출신을 제치고 금융감독기구의 요직을 장악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럴 경우 금융감독기구가 오히려 감독정책을 여타 경제정책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마지막으로, 감사원이 금감원- 금감위 공적 조직화의 논거로 제시하는 ‘민간조직이 인·허가, 감독, 제재 등 행정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위법·위헌’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금융감독원은 금융감독기구의설치등에관한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을 뿐 아니라 업무범위에 대해 관해서도 동 법률에 명백히 규정되고 있다. 또한 98년 4월 금융감독기구를 통합하기 이전에는 은행감독원·증권감독원·보험감독원이 감독기능을 행사하여 왔으며, 현재 민간기구인 한국은행도 발권력을 비롯한 통화신용정책을 담당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감사원의 금융감독기구 신설 논리는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다.

오히려 궁극적으로는 금융감독기구의 완전 민간기구화를 목표로 하되, 민간기구의 전문성과 책임성에 대한 신뢰를 축적하는데 필요한 과도기에는 정부조직인 금감위와 민간조직인 금감원의 이원적 조직 틀을 유지한 가운데, 공무원으로 구성된 금감위 사무국의 금융감독 기능을 완전히 폐지하여 금감위는 오직 의결기구로서의 기능만을 담당하도록 하고, 그 전제하에 금감위에 법령 제·개정권을 부여하는 방안이 적절하다. 단 이 경우 금감위는 현행의 비상임위원 제도를 폐지하여 금통위와 같이 전원 상임위원으로 구성하여 금감원에 대한 실질적인 지휘감독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8. 참여연대는 감사결과보고서 전문을 검토하여 대통령과 국회에 관료들의 법적·정치적 책임을 물을 것을 요청할 것이다. 또한 제척 규정을 위반하여 감사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관료들의 책임을 면제한 전윤철 감사원장에 대해 국회 법사위가 책임을 물을 것을 요청할 것이다. 카드 대란에 책임이 있는 전직관료 출신인 국회의원들 역시 자신의 정책실패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여 국민의 대표에 걸맞는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참여연대는 감독기구 개편과 관련하여 만약 정부가 금융감독기구의 관료조직화를 추진할 경우, 학계와 다른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여 이에 반대하는 운동을 진행할 것임을 분명히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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