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증권집단소송법 적용 유예의 득실

증권집단소송법은 7년 동안의 논란 끝에 올해 초 국회를 통과했다. 그런데 이러한 증권집단소송법의 적용을 다시 유예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유예대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당장 내년 1월 1일부터 소송대상이 되는 자산규모 2조원이상 = 기업의 분식회계에 있다.

 

유예 논의 배경은 이러하다. 비록 현행법 부칙 제2항에 따라 법 시행(2005.1.1) 이전의 분식은 집단소송의 대상이 되지 않지만 과거의 분식행위가 법 시행 이후의 회계에 반영되어 그대로 공시되거나 과거분식을 실질에 맞게 원상 복귀시키는 역분식을 하게 되면 집단소송의 대상이 된다는데 있다.

 

과거의 분식까지 들춰내서 기업들을 못살게 하는 것이 법 도입의 취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분식행위에 대해서는 3년이라는 유예기간을 두어 해소할 시간을 충분히 주자는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유예조치가 없으면 많은 기업들이 분식회계로 집단소송에 피소될 것이고 이 경우 가득이나 어려운 경제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언뜻 보기에는 지당한 주장 같다. 그렇지만 몇 가지 점에서 필자는 득보다는 실이 더 많다고 본다. 먼저 득과 관련해서는 3년의 유예기간을 주더라도 기업들이 그 기간동안 과거분식을 털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점이다. 이유는 네 가지다.

 

먼저, 과거분식을 털기 위해서는 전기오류수정이나 전기 재무제표 재작성이 필요한데 이로 인한 엄청난 이미지 손상을 무릎 쓰고 분식사실을 자백할 기업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둘째, 고해성사를 유도하기 위해 금융감독당국이 감리면제라는 유인책을 쓸 수 있겠지만 형사상의 책임은 면제시켜줄 수 없을 것이고 증권집단소송이 아닌 다른 형태의 손해배상소송은 여전히 가능하다.

 

셋째, 현행 증권집단소송법은 그 법안 논의과정에서 이미 두 차례에 걸쳐서 유예기간이 연장된 바 있다. 따라서 3년의 유예기간이 끝나는 2008년 1월 1일 직전에 또 다시 유예기간이 부여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과연 기업들이 과거분식을 털지 의문이다. 넷째, 증권집단소송 자체가 큰 위협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증권집단소송이 두려워서 과거분식을 미리 털 가능성이 적다고 본다.

 

증권집단소송이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활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우리나라는 미국과는 달리 증권집단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본안 심리에 앞서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막연한 의혹 제기만으로는 소송제기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증권집단소송의 제기는 검찰수사 또는 금융감독원의 특별감리로 분식회계가 구체적으로 적발된 경우에 국한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우리나라에서는 미국과는 달리 변호사가 판사의 권한을 위임받아 광범위하게 증거를 수집할 수 있는 디스커버리제도가 인정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주주들이 소송을 일단 제기하고 증거수집절차를 이용하여 입증을 하는 미국식 집단소송관행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끝으로 현행법은 변호사가 증권집단소송을 대리할 수 있는 기회가 3년 내에 3건으로 제한되어 있다.

 

유예에 따른 실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과거의 분식과 연관된 분식을 새로운 분식으로부터 구별해 내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할 경우 기업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분식도 과거의 분식과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분식행위의 시점과 관계없이 모든 분식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3년 동안의 유예기간을 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 기업들의 회계투명성 확보만 요원해지는 것이다. 둘째, 현 경제부처는 경제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되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기금관리기본법을 상정하면서 정부는 연기금의 원칙적인 주식투자 허용을 주장하고 있다. 주식에 투자하려면 해당기업의 회계가 투명해야 하는데 분식회계에 대한 증권집단소송법의 적용을 유예한다면 과연 일관성 있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김우찬(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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