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독약증권: 한국에선 진짜 독

법무부 산하 상법개정특별분과위원회가 미국의 대표적 경영권방어수단인 독약증권(poison pill)의 도입여부를 심각하게 검토한다고 한다.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1982년 처음 고안된 이후 2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그 정당성과 관련하여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 도입될 때 독약증권은 그 부정적 요소들이 긍정적 요소들을 크게 압도할 것이라는 점이다.

독약증권이란 기본적으로 적대적 인수대상회사의 경영진이 적대적 인수에 대비해 기존주주들에게 회사주식을 매우 낮은 가격에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미리 지급함으로써 인수비용을 현격히 높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독약증권은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서 주주들에게 失이 될 수도 있고 得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적대적 인수에 따른 경영진 교체로 기업가치가 상승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경영진이 자신의 경영권을 계속 유지시키고자 하는 이기적 동기에서 독약증권을 사용한다면 이는 너무나도 명백하게 주주들에게 손해가 될 것이다. 이는 또한 자원배분의 왜곡이고 사회후생의 감소라고도 할 수 있겠다.

반면, 독약증권은 좋은 의도로 사용될 수 있다. 예컨대 독약증권은 인수대상회사 주주들의 가격협상력을 높여 주주들이 보다 높은 가격에 회사를 매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측면이 있다. 또한, 독약증권은 인수자가 기업가치 제고보다는 사적 편익에 더 관심이 많은 경우 이러한 인수자로부터 잔존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독약증권을 사용하는 경영진의 의도와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견제장치의 유무라고 하겠다. 미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독약증권을 주주총회가 아닌 이사회 의결만으로 도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초 예상과는 달리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의 저명한 회사법학자 Ronald Gilson은 그 이유를 세 가지 측면에서 찾고 있다.

먼저 미국에서는 독립적인 사외이사들이 어느 정도 견제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의 보상이 90년대 이후부터 주가에 연계되면서 주가인상요인인 적대적 인수에 매우 호의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고 것이다.

두 번째, 미국에서는 법원이 판례법을 통해 어느 정도 독약증권의 남용을 막고 있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미국기업들을 관할하는 델라웨어 주법원은 1985년 비록 주주총회가 아닌 이사회 결의만으로도 독약증권을 발행할 수 있다고 판시했지만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독약증권들은 허용하고 있지 않다.

세 번째, 미국에서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독약증권의 남용을 강력하게 견제하고 있다. 이들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행사기준을 살펴보면 주주동의 없이 독약증권을 도입하는 경우 관련 이사들의 선임에 반대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 주주총회 결의 약속을 저버린 머독의 News Corp가 전 세계 기관투자자들로부터 공개적으로 맹비난을 받고 있는 것은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어느 한 견제장치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음이 너무나도 분명하다. 사외이사의 독립성 결여, 법원의 보수성, 기관투자자들의 소극적 주주권 행사는 그 동안 줄기차게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던 내용들이다.

그러나 더 우려되는 것은 우리나라 재벌기업들의 경우 외부주주들의 이익보다는 총수일가의 이익을 위해 독약증권을 사용할 소지가 농후하다는 점이다. 경영세습에 대한 욕구가 매우 강하고, 경영세습을 위해서라면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거래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을 그 동안 확실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끝으로 정관상 독약증권제도의 도입, 독약증권의 발행, 독약증권상의 권리행사의 전 과정을 주주총회의 결의로서만 가능하게 규제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남용될 소지가 크다고 생각된다.

주주총회소집을 기껏해야 주주총회 2주전에 통지하고, IT강국이면서도 아직 전자투표제도를 한번도 실시한 바 없고, 증권예탹원의 shadow voting으로 주주의 의결권행사를 독려할 유인이 전무하며, 영업상의 이해관계 때문에 기관투자자들이 항상 경영진에게 찬성표를 던지는 현실에서 주주총회의 결의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상법개정특별분과위원회는 미국에서 나타난 독약증권의 일부 긍정적인 측면을 침소봉대해서 이를 근거로 독약증권의 도입을 정당화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우찬(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부소장,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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