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SK 사건을 빌미로 한 재계의 재벌개혁 저지 의도를 경계하며

출자총액제한, 계열금융사 의결권 제한, 지주회사 요건 완화 요구에 대한 반론

김상조(한성대 교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1. 크레스트증권이라는 한 외국계펀드가 SK(주)의 14.99% 최대주주로 부상한 사건을 계기로 재계와 일부 언론은 지배구조 개선의 시급한 개혁과제를 저지하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외국계 펀드의 실체와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를 그린메일 또는 적대적 M&A로 단정하고, 이른바 국부유출 및 국내자본 역차별 등 민족주의적 정서를 자극하는 논리를 통해, 결국 재벌총수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규제완화 내지 개혁후퇴를 주장하는 것은 사실왜곡과 논리비약에 다름이 아니다.

특히 이번 SK(주) 사건을 빌미로 재계가 출자총액제한(공정거래법 10조), 계열금융기관 의결권 제한(공정거래법 11조), 지주회사 실립요건(공정거래법 8조의2)의 강화 노력에 제동을 거는 것에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경영권의 안정을 기하고자 한다면, 그 유일한 방법은 지배구조의 개선을 통해 기업가치를 제고함으로써 주주와 채권단의 신뢰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재계는 개혁의 후퇴를 통해, 즉 소액주주와 저축자의 희생을 기초로 재벌총수의 경영권을 보호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지배구조 개선에 역행하는 조치를 통해 위기를 일시적으로 모면하려고 하는 것은 결국 개별기업, 기업집단, 나아가 한국경제 전체의 불안정성을 오히려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2. 재계가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사실상 소액주주에 불과한 재벌총수가 계열사 출자를 통해 수많은 계열사를 황제처럼 지배하고, 외부주주와 채권자 이익의 희생을 기초로 사적인 지배이익을 추구하는 재벌 지배구조상의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최소한 규제장치이다. 그런데 이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2001년 말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사실상 재벌규제로서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졌다. 규제대상이 자산 5조원 이상의 기업집단으로 축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적용제외 및 예외인정 사항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번에 문제가 된 SK그룹의 경우 2002.4 현재 순자산액 17.0조원 중 출자총액은 6.5조원으로 출자비율이 38.10%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당시 출자총액 규제대상인 12개 민간재벌의 평균 출자비율 30.63%를 훨씬 초과하는 것이다. 즉 SK(주) 등 SK 그룹의 계열사들은 총수의 지배력 유지를 위해 순자산의 약 40%를 무수익 자산이나 다름없는 계열사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시너지 효과 또는 전략적 제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과도한 부담이 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SK그룹 문제의 근본원인이 되었다. 재계는 출자총액제한 제도가 국내자본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나, 만약 선진국 기업이 순자산의 40%를 무수익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었다면 정부의 규제를 받기 이전에 이미 시장의 힘에 의해 퇴출되었을 것이다.

또한 2002.4 현재 SK그룹의 출자총액 6.5조원 중 1.8조원(적용제외 1.3조원, 예외인정 0.5조원)이 각종 명목으로 규제대상에서 제외됨으로써 실제 규제 출자비율은 27.43%로 크게 하락하였다. 즉 SK그룹의 과도한 계열사 출자에 비추어본다면 개정된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규제효과는 미미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작년에 SK그룹은 출자비율이 규제기준인 25%를 초과한 상태에서도 KT지분 및 두루넷 인수, 발전·가스·카드 사업 진출 모색 등 활발한 사업확장을 꾀하였는데, 이는 출자총액제한 제도가 이미 재벌의 확장을 저지할 수 없는 누더기 규제로 전락하였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한 이 외국계펀드의 SK(주)에 대한 지분이 10%를 초과함으로써 SK(주)가 외국인투자촉진법상 외국인투자기업으로 간주되고 따라서 SK글로벌 등 여타 계열사의 SK(주)에 대한 출자가 공정거래법상 출자총액 제한의 예외인정 대상이 되어 그 의결권이 부활하는 현재의 상황은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왜곡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이 확인될 때까지 유지되어야 하며, 특히 그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각종 적용제외 및 예외인정 사유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다만, 순자산 대비 25%라는 규제기준 자체는 신성불가침의 것이 아니다. 즉 25%라는 숫자를 지키기 위해 적용제외 및 예외인정 조항을 덕지덕지 붙이기보다는, 차라리 적용제외 및 예외인정 조항을 완전히 삭제하고 규제기준을 예컨대 30%수준으로 상향조정하고 그 초과분에 대한 엄격한 해소계획을 징구하는 것이 규제의 실효성과 예측가능성을 제고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3. 재계는 재벌총수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계열금융기관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행사를 전면 허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2001년 말 공정거래법 개정, 그리고 2002년 초의 증권투자신탁업법 및 증권투자회사법의 개정을 통해 계열금융기관의 계열사 주식 의결권 행사는 사실상 전면 허용된 것이나 다름없다. 즉 상장 계열사의 경우 정관변경, 임원임면, 영업양수도 및 합병 등 경영권 변동 관련 사안에 대해 내부지분율 30%까지 계열금융기관의 의결권 행사가 허용된 것이다. 더구나 2001년 가을에는 재벌소속 보험사와 투신사의 계열사 주식 보유 한도마저 1999년 이전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무엇을 더 완화해 달라는 것인가.

특히 이른바 경영권 변동 관련 사안은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s)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계열금융기관이 저축자의 자금을 이용하여 재벌총수의 지배권을 유지하는 것은 지배구조 개선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계열금융기관을 이용하여 재벌총수의 경영권을 방어하고자 하는 유인이 강해짐으로써 삼성그룹 등 이미 거대 계열금융기관을 보유한 재벌 이외에도 여타 재벌들 역시 금융업에 신규진출하고자 할 것이다. 이는 산업과 금융의 분리라는 지배구조 개선의 가장 중요한 개혁과제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계열금융기관의 계열사 주식 의결권 행사는 원상회복, 즉 원천 금지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최근 공정위의 대통령 업무보고 자료(2003.4.7)에 명기된 바와 같이, 그동안 확인된 부당내부거래의 86.7%가 금융기관을 통한 것이었으며, 계열금융기관을 통한 직접적인 지원 사례가 전체 부당내부거래의 51.3%에 달하고 있다. 따라서 계열분리 청구제 도입, 금융기관 대주주의 자격 유지조건 부과,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한도 및 유가증권투자한도 축소 등을 통해 산업과 금융을 분리하는 노력을 더욱 가속화해야 할 것이다.

4. 한편, SK그룹 사건 이후 많은 재벌들이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지주회사 설립요건, 특히 부채비율 요건(100%) 및 자회사 지분율 요건(상장자회사 30%, 비상장 자회사 50%)의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지주회사는 자회사로부터의 배당이 주된 수입원이다. 배당률이 차입금리에 크게 못 미치는 현실에서, 지주회사의 높은 부채비율은 심각한 재무불안정성을 야기할 것이다. 예컨대, 자산 200, 자본 100, 부채 100(즉 부채비율 100%)으로 이루어진 지주회사의 경우 자산 200에 해당하는 자회사 주식으로부터 나오는 배당 수입으로 부채 100의 이자를 상환해야 한다. 그러나 배당률이 2%도 안되는 우리의 현실에서 6% 이상의 차입금리를 감당하기 어렵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최근 출범한 LG그룹의 지주회사 (주)LG도 부채비율을 74%로 낮게 유지하고 있으며, 지주회사 산하 태스크포스팀의 인건비의 상당부분을 자회사에 부담시키고 자회사로부터 브랜드 사용료를 징수하는 등의 편법을 강구하고 있다.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지주회사가 파산위기에 처한 경우 그 원인은 자회사의 부실보다는 지주회사 자체의 재무불안에 기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지주회사의 부채비율 요건 완화 요구는 자칫 지주회사의 부실을 초래할 위험을 안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자회사 지분율 요건의 완화 요구는 지주회사와 자회사 사이의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s) 위험을 더욱 크게 할뿐이다. 특히 지주회사 대주주(즉 재벌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 자회사 소액주주의 이익을 희생을 야기하는 지주회사 구조는 현재의 재벌구조와 아무런 차이를 없다. 한편으로는 연결납세 인정의 요건을 높게 설정함으로써(예컨대 자회사 지분율 80% 이상), 다른 한편으로는 집단소송제 등을 통해 이해상충 행위에 대해 엄격한 제재를 부과함으로써 자회사 지분율을 스스로 높여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지주회사만 공개·상장하고, 자회사 주식은 지주회사가 거의 100% 보유함으로써 사실상 완전자회사하는 것이 원래 지주회사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5. 재계가 이번 SK(주) 관련 사안을 계기로 소수의 지분을 가진 재벌총수가 계열사 출자를 통해 수많은 계열사를 황제처럼 지배해 온 그동안의 복잡하고 전근대적인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계기로 삼지 않는 점에 대해 실망감을 금할 수 없으며, 오히려 재벌이 대주주로 있는 일부 언론을 통해 재벌개혁 저지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재계는 개혁에 저항하는 태도를 버리고 스스로 지배구조 개선의 의지와 계획을 보여줌으로써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여야 할 것이며, 정부는 일관된 법제도 개선 노력 및 엄정한 집행 의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경제개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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