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오늘’의 김진방 시민경제위 위원장 인터뷰 기사

“이건희, 전자와 생명 둘 중 하나 포기해야” 

[진보 씽크탱크 릴레이 인터뷰 1] 재벌 연구 권위자,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2008년 01월 21일 (월) 19:45:49 이정환 기자 ( black@mediatoday.co.kr
 
 
우리는 삼성 특검과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가 동시에 진행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삼성의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비리는 이건희 회장 일가의 경영권 편법 승계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의 움직임은 순환출자와 경영권 편법승계를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게임의 룰을 어기는 수준을 넘어 게임의 룰을 바꾸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다.

김 교수는 국내 재벌 연구의 최고 권위자다. 재벌 문제가 정치의 영역으로 확산돼 있는 상황에서 방대한 자료와 정확한 분석에 기초한 그의 논문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교과서처럼 널리 읽힌다.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는 이른바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환상이 넘쳐나는 시대에 그는 원론적이지만 경제 정의를 역설한다. 경제 정의가 바로 서야 진정한 의미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고 그때 비로소 경제도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경제 정의 잡혀야 기업하기 좋은 나라다”

미디어오늘은 진보 씽크탱크 릴레이 인터뷰의 첫 번째 순서로 18일 오후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재벌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교수는 “삼성의 문제는 이 회장 일가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 이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데서 비롯한다”면서 “삼성그룹을 금융과 제조업으로 분리하되, 이 회장 일가는 둘 중 하나를 과감히 버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이치열 기자  
 
–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재벌 정책도 큰 변화를 맞게 될 전망이다. 금산분리 완화가 예정돼 있고 출자총액제한제도도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 바야흐로 게임의 룰을 바꾸려는 시도가 진행 중인데.
“이명박 정부는 자본과 노동의 대립에서 자본의 편에 서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대립에서 생산자의 편에 서 있고 지배주주와 외부주주의 대립에서 지배주주의 편에 서 있다. 재벌 문제에서 주목할 부분은 이명박 정부가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게임의 룰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게임의 룰이 설비투자도 늘리고 고용도 늘고 경제도 활성화 논린데 동의할 수 있나. 나는 못 하겠다.”

–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는 어떻게 보나.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비판도 많았다.
“유효한 규제가 아니라는 건 맞다. 과거 출자총액을 순자산액의 25%로 제한할 때도 적용 제외 조건이 많아 의미가 없었는데 40%로 완화하면서 이미 폐지된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됐다. 그런데도 왜 폐지하자고 아우성일까. 좀 더 의미를 붙인다면 지금 출총제 대상 기업 가운데서는 지배구조 모범 기업을 제외하겠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 조항을 근거로 소유지배구조를 공정위원회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만약 출총제가 폐지되면 소유지배구조를 보고하지 않아도 되고 감시감독을 피할 수 있게 된다.”

– 출총제 폐지는 이미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장기적인 전망은 어떤가.
“재벌은 정치권과 언론을 장악해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를 폐지하는 쪽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집단 지정제도가 폐지되면 대기업집단에 포함된 기업들을 모두 개별 기업으로 간주하게 된다. 상호출자 금지나 부당 내부거래나 금산법이나 증권거래법 등의 규제를 받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삼성카드에서 무슨 짓을 하든 삼성전자 주주로부터는 간섭을 안 받겠다는 것이다. 금산법에서 5% 이상 소유하지 못한다고 할 때도 특수 관계인을 고려하지 않고 개별 기업에 적용하면 사실상 금산분리 규제가 무용지물이 된다. 기업들이 요구할 것이고 이명박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게임 룰, 삼성에게도 유리할까

– 외국에도 이런 규제가 있나.
“일단 재벌이라는 시스템이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다르지만 미국은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이를테면 A라는 회사가 투자한 B라는 회사가 C라는 회사에 투자해서 배당을 받으면 A에 세금을 매긴다. JP모건이 록펠러의 정유회사에 투자하고 이 회사가 다른 회사를 지배하면 세금 부담이 늘어나 JP모건이 이 회사에 직접 투자한 것보다 수익률이 낮아진다. 창업자 일가와 기관 투자자들 사이에 힘의 균형 있어서 사익 추구를 위한 집단조직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1920년대부터 기관투자자들 참여가 활발했던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증자가 아니라 은행 부채를 통해 성장해 왔기 때문에 주식 희석이 안 됐다는 차이가 있다.”

– 지주회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순환출자 구조는 해소됐지만 소수 지분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지주회사도 마찬가지 아닌가.
“SK를 보자. 과거에는 최태원 회장이 SKC&C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했는데 이제는 지주회사를 지배하고 지주회사가 SK를 지배한다. 그 과정에서 소유지배 괴리가 더욱 확대됐지만 대신 독립성과 책임성이 강화됐다. 반면 삼성그룹은 한 회사에 여러 회사가 투자하기 때문에 궁극적인 주주가 불분명하고 아무도 규율하지 않으니까 전략기획실을 통해 이건희 회장이 지시하게 된다. 책임없는 권한인 셈이다. SK는 지주회사 체제 전환 이후 지배주주가 분명하고 지분 구조가 얽히지 않기 때문에 자회사 경영 성과로 평가할 수 있게 된다.”

– 지주회사를 너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아닌가.
“소유와 지배는 이미 괴리돼 있다. 그렇다면 둘 중에 어느 게 바람직할까. 나는 독립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논란이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저성장과 저투자의 원인을 주주 자본주의에서 찾는 관점도 있다. 주주 자본주의에 맞서는 대안으로 재벌에 기대를 거는 사람이 아직도 많은 것 같다.
“나는 주주 자본주의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주주 자본주의는 전문 경영인이 경영권을 박탈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주주의 이익에 복무하게 된다는 논린데, 우리나라는 지배 주주가 경영을 한다. 전문 경영인이 없다. 우리나라는 주주 자본주의의 폐해가 아니라 재벌 자본주의의 폐해가 문제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지배주주가 경영권 위협을 받고 있느냐. 어불성설이다. SK가 취약한 경우였지만 소버린은 위임장 경쟁에서도 이기지 못했다. 경영권 위협은 시도조차 못했다. 지배주주가 시장에서 위협을 받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경영권을 뺏기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약화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소유한 것보다 더 많이 지배하는 구조가 공격 받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지배주주가 공격 받으면 노동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나. 역시 터무니없는 소리다. 경영자와 노동자의 관계와 지배주주와 노동자의 관계는 전혀 다르다. 외부 주주의 압력이 없다면 지배주주가 노동자들에게 더 잘해줄 것 같은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주주 자본주의가 아니라 재벌 자본주의가 문제다

– 주주 자본주의가 단기 성과를 부추기고 설비투자 부진을 초래한다는 지적은 어떻게 보나.
“솔깃한 주장이지만 실증적인 근거가 없다. 나는 시장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만약 투자자들이 단기주의로 치닫는다면 그건 투자자들이 어리석거나 정보의 비대칭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 주주 자본주의에 맞서 재벌의 경영권을 보장해 주고 재벌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자는 이른바 사회적 대타협 논쟁은 어떻게 보나.
“답답하게도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타협을 하자고 한다. 핵심은 지배주주와 외부주주와의 갈등이다. 외부주주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지배주주와 정부가 사회적 타협을 끌어낸다?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다. 건강한 기업을 만드는 것은 지배주주의 기업가 정신이 아니라 오히려 외부주주의 위협이다.”

– 지나치게 시장을 낙관적으로 보는 것 아닌가. 시장이 가장 효율적이고 시장에 맡겨두면 다 잘 될 거라는 말처럼 들린다.
” 그렇지 않다. 시장에 맡긴다는 말의 의미를 적절히 짚지 못한 것이다. 어떤 시장이냐를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장의 규칙은 무엇이어야 하느냐를 논의해야 한다. 규칙이 없는 시장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에 따른 강력한 질서가 유지되는 이른바 질서 자유주의를 말한다. 정글에 맡기자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 기업의 해외 이전과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성장 논리의 상당부분을 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국민 기업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을 통한 생산성 혁신 등은 가능한가.
“세계화를 제어할 수는 없는 것이고 중소기업 혁신이 한 대안이 될 거라고 본다. 재벌의 중소기업 착취 구조를 바로잡는 것도 필요하다. 현대 글로비스를 보면 이해가 쉽다. 중소기업의 영역까지 대기업이 파고든다. SI(시스템 통합) 업체들은 재벌 계열회사들이 상위권을 싹쓸이하고 있다. 재벌 계열 SI업체들은 계열사들 발주물량이 풍부하기 때문에 정부 발주물량을 덤핑으로 받아서 중소기업들에게 헐값에 넘겨준다. 중소기업들만 죽어난다. 이런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만 바로 잡아도 중소기업들에게 큰 힘이 된다.”

    
–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보험회사도 지급 결제업무를 갖게 된다. 사실상 재벌이 은행을 소유하게 되는 셈인데, 재벌 은행의 의미를 짚어 달라.
“우려스러운 일이지만 보험회사의 CMA 계좌와 은행의 계좌는 또 다르다. 일반 예금은 못 받게 할 거고 신용 창출도 아직은 제한돼 있다. 그러나 만약 재벌이 은행을 갖게 되면 자산을 운용하고 그만큼 힘을 갖게 된다. 삼성생명의 어마어마한 힘을 보라. 삼성은행의 힘은 그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보험지주회사를 설립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만약 삼성생명의 대주주인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로 지정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팔아야 하는데 만약 보험지주회사가 되면 이 지분을 팔지 않아도 된다. 이 회장 일가의 지배구조를 그대로 인정하게 되는 셈이다. 나는 보험지주회사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지배를 위해 소유하는 것은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보험지주회사를 허용하면서 소유 제한을 두는 것은 가능한가.
“정치적으로 어렵지 법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 삼성 특검은 어떻게 진행될 거라고 보나.
“특검도 마냥 덮어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삼성 문제의 핵심은 이 회장 일가의 지분이 너무 적은데도 그룹 전체를 물려주려고 한다는데 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려면 금융과 제조업을 분리하고 그 가운데 하나만 가져가면 된다. 나는 삼성이 진정한 의미의 가족기업이 됐으면 좋겠다. 가족이 소유하면서 지배하라는 것이다. 삼성의 문제는 소유한 것 이상으로 지배하려고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 회장 일가의 내부 지분은 간접 지분을 포함, 6% 정도다. 만약 금융과 제조업 가운데 선택을 하면 대략 12% 정도로 불어난다. 그러면 진정한 의미의 가족 기업이 될 수 있다. 나머지 절반은 시장에 내놓으면 된다.”

“나 같으면 전자 버리고 생명 갖겠다”

– 이 회장에게 아들이 둘이라면 하나씩 나눠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웃음)다시 강조하지만 문제는 삼성은 너무 큰데 이를 모두 지배하기에는 이 회장 일가의 지분이 얼마 안 된다는데 있다. 아들이 둘이라면 둘 다 반쪽짜리 그룹을 물려 받게 될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주인이 아니면서 주인 행세를 한다는데 있다. 그러니까 마구 뽑아 먹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회장 일가에 제 몫을 찾아주고 가진 지분만큼 책임과 권한을 주자는 이야기다.”

– 만약 본인이 이 회장이라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웃음)나 같으면 금융을 선택하겠다. 안정적이고 보유 지분에 비해 많은 지배력 행사할 수 있다. 가족 기업으로도 적절하다. 반면 제조업은 변수가 많고 자자손손 물려주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 실제로 록펠러나 카네기는 1대에서 끝났지만 JP모건은 가족기업으로 성장했다.
제조업 기반의 가족기업은 드물다. 지금도 삼성생명을 거치니까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이지 삼성전자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만약 이 회장 일가가 삼성생명을 버리고 삼성전자만 갖는다고 해도 아마 지배력이 훨씬 약화될 것이다.”

‘지분 만큼’ 책임과 권한을 주자는 것

–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 재벌 정책은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거나 더욱 후퇴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어떻게 맞설 계획인가.
“예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발언을 해야겠다. 나는 연구하는 학자다. 지금까지는 발언의 영역을 연구 결과에 좁히고 이를 넘어서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이제는 외연을 넓힐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더 적극적으로 싸울 계획이다.”

최초입력 : 2008-01-21 19: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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