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배경으로 사진찍지마!”

삼성의 오만방자함 – 1인시위 보고기

급박했던 월요일 오후

‘오전에 YTN 뉴스 보셨나요?’ 라는 말로 시작된 지난 월요일 오후.

삼성에서 공정위 조사를 방해하고 서류를 조작했다고 하는데 참여연대의 입장은 무엇입니까?라는 한 신문기자의 전화를 듣고서 저는 아, 이건 또 무슨 일이야 하며, 얼른 인터넷의 YTN 뉴스에 접속했습니다.

‘삼성, 부당내부거래 지원 은폐’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씨가 대주주로 있던 e삼성 등의 인터넷관련 계열사를 삼성그룹이 부당지원했다는 점을 공정위가 조사하려고 하자, 이를 방해하기위해 각종 자료를 은폐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담긴 자료가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삼성그룹의 재벌총수 아들에 대한 각종 부당지원을 감시해오고 비판해오던 참여연대 담당부서의 간사로서 정신이 번쩍 드는 소식이었습니다.

곧장 뉴스를 스크랩하고, 그동안 참여연대가 삼성그룹이 이재용씨가 관련되어 있던 인터넷벤처기업에 대해 부당지원했다는 의혹이 있으니 조사해달라고 공정위에 요청했던 자료, 그리고 그에 대한 공정위의 답변 등, 이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급히 수집했습니다.

그리고 곧장 공정위의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삼성의 ‘오만방자’한 태도를 규탄하고, 검찰이 즉각 공무집행방해혐의로 삼성을 수사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습니다. 정신없던 오후였습니다.

그리고 참여연대는 이 성명서만으로 삼성의 ‘오만방자’함을 넘길 수 없다고 생각해서, 오늘 삼성본관앞에서 1인시위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점심식사를 위해 오가던 삼성맨들은 무슨 생각을…

1인시위를 하기로 예정한 11시25분, 남대문 근처 태평로 소재 삼성본관 건물앞에 도착했습니다. ‘디지털시대를 선도하는 삼성, 이재용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 ‘삼성의 공정위 조사방해 부당지원행위 은폐, 벌써 3번’ 이라는 글씨를 큼지막하게 쓴 피켓을 들고 섰습니다.

사진 찍지마!

사진기자들이 1인시위를 삼성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하자 에스원 직원(사진 중앙)이 가로막고 있다.

1인 시위를 한 시간이 11시 30분부터였기때문에 삼성맨들이 차츰차츰 점심식사를 위해 건물밖으로 나와 1인시위를 하던 제 옆을 지나갔습니다. 대부분이 제가 들고 있던 피켓의 내용을 읽어보면서 지나갔습니다. 가슴에 삼성그룹 직원임을 나타내는 신분카드가 달려있는 사람이 지나가면, 삼성맨이 분명하다고 생각해서 그 사람을 향해 피켓을 정면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어제 뉴스에 나왔고, 오늘 아침 조간신문에 실렸던 이 사건을 삼성맨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자기 회사 욕한다고 마냥 나와 참여연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전 마음속으로지만, 삼성의 일반 직원들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룹 총수 아들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해내고 마는 법적 지위도 없는 구조조정본부와 고위층 임원들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삼성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찍지마!!’

▲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1인시위 앞을 계속 가로막고 있는 에스원 직원

근데 솔직히 어디에 서있어야 할 지 난감했습니다. 삼성그룹의 건물임을 나타내는 현판이나 간판옆에 서야 하는데, 그 큰 건물에는 삼성이라는 이름이나 로고가 찍힌 어떤 간판도 없는 것입니다. 달랑 있는 것은 저 높이 태극기와 함께 펄럭이고 있는 삼성전자의 깃발…현관 유리문에라도 삼성로고가 찍혀있을까 눈을 씻고 봤는데 없는 것입니다. 워낙 삼성본관 앞에서 1인시위를 많이 하니, 1인시위자를 위한 좋은 길목(삼성이라는 글자가 찍힌 현판 옆 등)을 주기 싫어 다 없애버린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보통 회사 본사의 건물에는 그 회사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보이는 것이 상식이니깐요.

11시 30분이 되자, 몇몇 신문사의 카메라 기자들이 1인시위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피켓을 든 저의 모습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급적 삼성의 깃발이라도 뒷 배경으로 나오게 하려고 땅바닥에 몸을 낮춰 렌즈를 위로 향하게 하면서 힘들게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삼성건물을 지키는 깔끔한 차림의 청년들(에스원 소속 경비업체 직원들)이 기자들과 피켓을 든 제 사이로 끼어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 ‘우리 삼성건물을 배경으로 사직찍지마.’ 이 때 터지는 기자들의 항의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오만방자’할 뿐만 아니라 옹졸하기까지 한 삼성그룹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그 다툼으로 오히려 더 많은 시민들이 제가 들고 있던 피켓내용을 더 유심히 읽었으니…불행중 다행일까요?

삼성그룹의 공정위 조사 방해 및 부당지원행위 은폐행위가 이번 만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98년에도 삼성자동차 SM5를 그룹차원에서 계열사 직원에게 강매하여 삼성자동차를 부당지원한 것이 문제가 되어 공정위가 조사를 시작하자 물리력을 행사하며 관련 서류를 탈취하는 등의 행패를 부린 적이 있는 삼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재용씨와 관련된 인터넷벤처기업에 대한 삼성그룹의 부당지원행위 여부를 작년 8월부터 공정위가 조사할 때, 삼성카드에 파견된 공정위 조사원의 사무실 출입을 저지하는 등 조사를 방해한 적이 있는 삼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바로 그 당시 삼성카드에서 공정위 조사원의 출입만을 저지한 수준에서 공정위 조사를 방해한 것이 아니라 서류를 조작하는 일까지 삼성이 저질렀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참여연대와 저는 삼성그룹이 재벌총수 아들을 위해 오만방자하게 행동하는 것이 빨리 끝나기를 학수고대합니다.

박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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