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정보공개 2003-06-03   1029

의원은 되는데 시민단체는 안되는 정보공개, 이번엔 바뀔까

국무총리훈령 공포 임박,

지난 2월 4일 발표된 정부의 4개지역 핵폐기장 지정 이후 환경운동연합은 즉각 정책결정 관련 정보의 공개를 사업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요구했다. 2000 페이지 분량의 부록을 확보하기 위해 환경연은 갖가지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지난 4월말 한수원으로부터 들은 답변은 “열람은 되는데 복사는 안된다”였다.

관련자료 : 행정정보공개의 확대를 위한 국무총리훈령(안)

그러나 핵폐기장으로 선정된 지역구의 국회의원들은 지금 그 부록의 복사본을 가지고 있다. 해당 국회의원의 한 보좌관은 “부록의 입수는 한수원의 입장에 따르면 공식적인 방침이 아니다”고 답했다. 그저 해당 의원들의 강력한 요구에 따른 비공식적인 경로로 부록의 복사본이 전달됐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료를 확보한 이 보좌관 역시 정보공개에 대한 정부부처의 완강한 태도에 혀를 내둘렀다.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이뤄져야 할 정부부처의 정보공개가 청구 주체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다르게 처리되고, 2000 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열람만 허용하고 그것을 정보공개라고 하는 웃지 못할 관행은 기존 정보공개법이 정부부처의 정보 비공개에 대한 자의적 판단을 막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산업, 전력산업, 댐 건설 등 주요 국책사업에서 정책결정의 타당성과 관련해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은 철저히 비공개 관행이 자리잡고 있다”는 염형철 환경연 녹색대안국장의 설명은 정부부처의 정보공개 관행의 문제점을 핵심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같은 불합리한 정보공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시민단체들은 임박한 정보공개법 개정에 시민단체의 요구안을 적극 반영하라고 촉구해왔다. 이와 관련, 고건국무총리가 조만간 훈령을 공포할 예정이어서 정부부처의 정보공개 관행이 개선될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전진한 참여연대 투명사회팀 간사는 “국무총리 훈령안은 주요정책과정에 있는 정보의 기록 및 공개 원칙 강화, 방어적 입장에서 적극적인 정보공개 원칙으로의 전환, 정부부처에 대한 비공개 대상 정보의 세부기준 마련 지시 등 몇가지 진전이 확인된다”고 평했다.

또 정보공개의 방식이 열람, 복사 등 청구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정 기간 안에 이뤄지도록 한 점도 평소 일반 국민들이 정보공개 청구시 느끼던 불편을 상당부분 해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법률 개정·중립적인 정보공개위원회 구성 등 필요”

▲지난 5월 9일 참여연대, 경실련 등 4개 시민단체가 주최한 ‘정보공개법제 개선에 관한 워크숍’에 행자부 관련 공무원과 시민단체 패널들이 참석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 : 사이버참여연대)

그러나 이 정도만으로 정부부처의 정보공개 관행이 개선될 지에 대해서는 아직 회의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우선 정부부처의 비공개정보의 세부기준 마련을 규정한 제8조가 ‘세부기준 자체에 비공개 사유가 포함되어 있을 때에는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유보조항을 두고 있어 정부기관이 이 규정을 남용할 위험성이 있다.

이에 대해 조영진 행자부 행정능률과 사무관은 “정보기관의 첩보활동같은 정보의 외부유출을 막기 위해 이런 유보조항이 불가피하다”면서 “우리도 이 규정이 확대 적용될 경우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어서 좀 더 개선된 유보조항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토 중인 좀 더 개선된 유보조항의 내용이 ‘세부기준을 부분 공개하거나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여서 역시 정보공개기관의 자의적 판단의 위험성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또 하나의 한계로 지적되는 것은 법률이 아닌 훈령으로서 정보공개의 근본적인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하승수 처장은 “훈령에서 수용된 개선점들이 법률 개정에 적극 반영되지 않는다면 훈령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면서 “비공개정보의 세부적인 기준 마련 등을 위한 중립적인 정보공개위원회의 구성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공개 대상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공무원에 대한 처벌규정 마련도 시민단체의 요구안이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녹색대안국 부장은 “이번 한수원의 예처럼 국회의원들에게는 복사 공개한 자료를 시민단체에게는 열람만 허용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처벌이 없다면 정보공개법 개정은 공염불”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처벌은 법률로만 규정할 수 있어 앞으로 정보공개법 개정안에 처벌규정이 마련될 지도 관심거리다.

장흥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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