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기록개혁 2005-06-11   2724

[정부문서 접근금지 비밀공화국③] 밖으로 보내는 문서에도 ’대외비’ ?

나, 비밀맞아? … 비밀 ‘꽁꽁’ 누설 ‘헐렁’

#사례1=“외국에서 온 손님이 국내 전자업체의 공장을 방문하고 싶다고 해 업체에 보내는 협조공문을 만들었죠. 무심결에 ‘대외비’로 결재를 올렸는데 부서장이 ‘밖으로 보내는 문서를 대외비로 해도 되나? 어떻게 해야 하지?’하고 물었습니다. 저도 ‘어, 그러네요, 어떻게 해야 하죠?’하고 말했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대외비로 분류했었죠.” 한 부처 공무원이 밝힌 웃지 못할 일화이다.

#사례2=지난달 2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대외비의 공개를 둘러싸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가재정운용계획을 깊이 있게 심의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기획예산처에 ‘국가재원배분회의’의 회의자료와 회의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기획예산처는 대외비라며 자료 제출을 거부해 회의가 중단됐다. 결국 양쪽은 기밀 내용을 삭제하고 자료를 넘겨받는 것으로 타협했다.

결제중이어서…단 한줄 때문에…습관적으로 대외비…대외비…

이메일·팩스로 못보내, 직접 수발 효율 떨어져

급기야 ‘대외 주의’ 편법 등장, 정보 공개 않으려 악용

 

‘대외비’는 과연 비밀일까?

현행 보안업무규정은 비밀을 Ⅰ급·Ⅱ급·Ⅲ급으로만 분류하고 있다. 대외비는 없다. 군사기밀보호법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보안업무규정시행규칙에 “직무수행상 특별히 보호를 요하는 사항은 ‘대외비’로 하며, 비밀에 준하여 보관한다”고 규정돼 있을 뿐이다. 대통령훈령에 불과한 시행규칙이 대통령령인 보안업무규정에도 없는 대외비라는 ‘비밀 아닌 비밀’을 양산하는 주범이 되고 있다.

2004년 국방부가 비밀현황을 공개한 것을 보면, Ⅰ급·Ⅱ급·Ⅲ급 비밀과 대외비를 포함한 비밀문서 112만8111건 가운데, 대외비가 53만466건으로 47%를 차지했다. <한겨레>와 참여연대가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외교통상부 북미1·2과와 동북아1과에서 최근 5년 동안 비밀을 푼 문서들 1만5339건 가운데 대외비는 9008건으로 58.7%였다. 기록물 전문가들은 비밀의 절반 정도가 대외비일 것으로 추정한다.

민간 출신의 한 정부 부처 고위 공직자는 “별다른 내용이 없어 문서를 작성해온 직원에게 ‘왜 이런 문서가 대외비냐’고 물어봤더니 ‘아직 결재가 끝나지 않아서’라고 대답했다”며 “이런 경우 결재가 끝나게 되면 대외비를 풀어야 하는데도 그냥 계속 대외비로 남더라”고 말했다. 그는 “수십 쪽짜리 보고서가 단 한 줄 때문에 대외비로 분류되기도 한다”며 “문서를 대외비로 분류하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다”고 전했다.

대외비를 포함한 비밀이 많아지면서 행정 효율도 떨어진다고 공무원들은 하소연한다. 비밀은 “전신, 전화 등의 통신수단에 의해 평문으로 수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대외비를 이메일이나 일반 팩스로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정부 부처의 관계자는 “청와대 등 다른 부처와 일을 할 때 비밀문서는 보통 기관의 사송(인편)을 통하지만 급할 때는 직접 문서를 갖고 뛰어 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인력·시간 낭비가 심하다는 것이다. 그는 “너무 급해서 대외비라고 표시된 부분을 가리고 대외비 문서를 팩스로 보낸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부 부처는 ‘대외 주의’라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문서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외비는 아니지만 실제로는 대외비와 같은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편의적으로 만든 문서이다.

외교부의 세 과가 대외비에서 일반문서로 분류한 것들 가운데 문서 제목이 공개된 건수는 4667건으로 51.8%, 비공개 건수는 4341건으로 48.1%다. 대외비는 법령에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아 법원의 판단도 엇갈린다.

서울고등법원은 2000년 7월 ‘공안사범 사후관리지침’을 공개하라는 소송에서 “법률에 의한 명령의 시행세칙에 불과한 규칙에 의해 대외비로 분류되어 있는 것만으로는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반면, 서울행정법원은 3월 국세청의 대외비인 ‘조사사무 처리규정’이 공개될 경우, 탈세, 세무조사 회피, 자료 해킹 등 납세자들이 악용할 우려가 있어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상민 국가기록원 전문위원은 “대외비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목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매우 크다”며 “실제 대외비로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행정이나 업무의 잘못을 숨기거나 책임을 피하기 위해 대외비를 악용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비밀로 보호할 가치가 있으면 대외비로 할 것이 아니라 비밀 등급을 매기고, 대외비는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황상철 한겨레 기자, 홍석인 투명사회국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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