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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록개혁
  • 2004.06.09
  • 962

'역사는 국민의 것' 행정기관부터 깨쳐야



국가 행정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거나, 기록이 있더라도 ‘창고’에 방치되고 있는 현실은 충격적이었다. 탐사기획 ‘기록이 없는 나라’를 보도한 세계일보는 참여연대 이재명 투명사회팀장의 사회로 김익한 명지대 기록관리학과 교수와 오항녕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김한욱 국가기록원장을 초대해 기록관리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개선책을 모색하는 좌담을 가졌다. 편집자주

<참석자>

김익한 명지대 기록관리학과 교수

오항녕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김한욱 국가기록원장

사회=이재명 참여연대 투명사회팀장



―우선 전반적인 기록물 관리 실태와 현주소에 대해 평가해 주세요.

▲김익한=구체적인 실태는 기사에 잘 반영돼 있고, 이런 현상을 만든 ‘보이지 않는 실태’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기록은 생산·관리·공개, 그리고 그것을 본 국민의 참여라는 사이클로 이뤄지는데, 이 중요한 사이클을 집행하는 기구 자체가 아직 안정이 돼 있지 않았습니다. 기록을 잘 생산하도록 만드는 기구적 대안, 즉 자료관이 없습니다. 국가기록원은 김대중 정부 시절 기록물관리법이 제정, 시행되면서 그나마 안정돼 있지만 아직 힘이 미약한 상태입니다.

―인프라 문제로, 자료관이 안 만들어져 있다는 걸 지적하셨는데요. 현행 법상 자료관은 올해까지 만들어지도록 돼 있는데, 왜 설치가 되지 않고 있죠?

▲김익한=자료관은 711개 공공기관에서 설치하도록 돼 있습니다. 현재 중앙 부처 4곳 등이 자료관 시범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올해 말까지 설립을 목표로, 현재 투입된 돈만 1582억원입니다. 올해 말까지 711개 기관 가운데 500여곳 정도는 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자료관도 중요하지만, 전문 운영요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엔 기록관리학 과정을 이수하는 대학원이 12개, 교육기관이 1개에 불과하며, 현재 배출된 인력이 100명을 조금 넘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기록물관리 전문요원 채용 제도가 아직 정착이 안 된 것도 문제입니다.

▲오항녕=1997년 대선을 기점으로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 시스템의 기반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기록관리가 제대로 되느냐는 문제는 어느 사회든 문화 수준의 문제입니다.

▲김익한=오 교수 말씀대로 기본적 민주주의 시스템이 정비된 이후 기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조금 심하게 말하면 각 부처에서는 아직도 기록물 관리가 뭔지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국가기록원(옛 정부기록보존소)이 혼자 뛰었을 뿐 파급이 안 됐죠.

―현장에서 접하는 문제는 국가기록원이 너무 무기력하다는 것입니다. 행정기관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실태조사를 해본 적이 있는지, 공무원에게 법을 알리고 홍보하는 역할에 충실했는지 묻고 싶다는 거죠.

▲김한욱=국가기록원의 기본업무는 기록물을 수집해 중요도에 맞게 보존하고, 전자매체로 보관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겁니다. 대통령 기록물과 관련해 김대중 정부 이후 조금 늘었는데, 과거 생산된 기록물 수집엔 어려움이 있습니다. 당시 수석비서관들과 차관급 이상 인사를 찾으니 약 1050명이 나왔습니다. 이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 기록물 이관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이뤄지진 않습니다. 시간이 좀더 필요한 작업입니다.

▲오항녕=국가기록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데, 행정기관이 전산 시스템만 갖추면 자료관을 모두 갖춘 걸로 오해하게 만든 책임이 있습니다.

▲김익한=자료관이란 용어 자체도 분명치 않습니다. ‘기록관’이 훨씬 본래 의미에 가깝죠.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일선 공무원 사이에서도 ‘기록을 생산하는 것은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전혀 없습니다. 참여정부에 정말 실망스러운 게 이 대목입니다. 정부 초기부터 이 부분에 최선을 다했어야 하는데, 국가기록원에 떠넘기고 말았습니다.

▲김한욱=여러분의 지적은 ‘지금 임신 중인 아이가 왜 안 나오냐, 왜 아프냐’는 것과 같습니다. 아직은 시기가 안 됐고 준비단계인데, 그런 상황에서 너무 앞서가는 요구가 나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법령 개정은 우리도 준비 중입니다. 예컨대 자료관이란 명칭이 적합하지 않아 기록관으로 바꾸도록 추진 중입니다.

▲김익한=혁신 입법으로 주목받은 기록물관리법이 1999년 1월 29일 공포됐고 2000년부터 시행됐습니다. 만 4년5개월이 지났으면 이미 ‘잉태’ 단계가 지난 셈인데, 국가기록원에서 아직도 잉태 단계라고 보는 건 잘못입니다.

▲오항녕=참여정부의 가장 중요한 코드인 국민과의 쌍방향 의사소통의 매개가 기록으로부터 이뤄진다고 할 때 참여정부가 기록관리에 얼마나 신경을 썼느냐 지적하지 않을 수 없죠. 청와대, 행자부 등 핵심기관부터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걸 보면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참여정부에서 각종 시스템 구축 방안을 마련하고, 그에 따라 여러 가지 위원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록물 관리는 그동안 신경을 안 쓴 게 사실이죠.

▲김한욱=기록물이 발전된 나라가 미국이고, 그 밖에 프랑스와 중국 등이 잘돼 있습니다. 결국 국가기록원이 독립기관으로 가야 되지 않느냐 하는 게 공통적인 주장입니다.

▲김익한=국가기록원이 예컨대 장관급 기구로 격상됐다 해도 내부의 전문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국가기록원이 행자부에서 독립된 별도의 위원회 조직으로 발전돼야 한다고 봅니다.

▲오항녕=기록물 관리의 독립성·전문성 강화와 관련, 빠뜨릴 수 없는 게 기록물분류기준표 문제입니다.

―분류기준표는 공개돼야 하는데, 왜 공개를 안 합니까? 시민단체가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싶어도 어떤 정보가 있는지부터 모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김한욱=국민의 알권리에 지나치게 초점을 두면 생산 자체가 안 되고 금방 폐기돼 버립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죠. ‘조선왕조실록’은 당시 왕에게 공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자랑스러운 유산이 된 겁니다.

―공공 기록물을 무단 폐기한 것에 대해 기록물관리법에 나온대로 형사처벌하면 문제가 개선되지 않을까요?

▲김익한=무단 폐기 등에 대해 처벌한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어요. 벌칙 조항이 적용된 적이 없다는 건 문제죠.

▲김한욱=벌칙 조항을 원칙대로 적용하면 경고 효과는 거두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현재 허성관 행자부 장관도 기록물 관리·보존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서 앞으로 상당한 개선이 이뤄지리라 기대합니다.

―국가기록원이 항상 하는 얘기가 “권한이 없다, 인력·예산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맞긴 맞지만 그런 것부터 빨리 깨뜨려야 합니다. 어렵지만 가장 빠른 길은 사람들로 하여금 국가기록이 얼마나 중요하고 모든 국민의 것인지를 깨우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국가기록원과 일선 행정기관의 분발을 촉구하면서 오늘 좌담은 이것으로 마무리짓겠습니다.

세계일보 특별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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