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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록개혁
  • 2004.06.03
  • 1039

각종 정치적 의혹사건 서류 사라져



국가기록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의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광복과 6·25 등 국가 혼란기를 거치면서 사라진 국가기록들 탓에 개인의 명예회복이나 피해 보상길이 막히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군사독재 시절 암울한 정치상황 하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사건들은 보존기간 만료와 함께 대부분 폐기돼 국가차원의 진상규명조차 난항을 겪고 있다. 또 미국과 일본 등 강대국의 양민학살과 침탈·침략행위가 명백했지만 기록 부재 탓에 국제무대에서 피해 보상은 커녕 ‘기록 빈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역사의 희생양이 기록 불감증 탓에 다시 한번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

#1.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은 기록 없는 나라의 설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1950년 7월 충북 영동군 노근리 철교 밑에서 미군은 한국인 양민 300여명을 사살했다. 무고한 국민들이 희생됐지만 국내에는 관련 자료가 전무했다. 유가족들은 명예회복이나 보상을 받기 위해 미군이 남긴 군사작전 기록을 뒤져야 했다.

민주화운동 보상지원이 겉도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정부가 2000년 이후 보상작업을 시작한 지 3년 5개월이 지나도록 보상금 지급대상자와 보상금액은 5월 말 현재 사망자 78명과 상해자 364명 등 442명에다 162억원이다. 행자부 보상지원단 측은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으려면 민주화운동 경력뿐 아니라 당시 급여수준이나 병원의 치료 내역 등 기록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며 “기록 관리가 허술한 만큼 자료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조차 “민주화운동 기록이 썩어가고 있다”, “최소한 방습처리라도 해야 한다”며 기록 보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2. 국가차원 진상조사도 제대로 못해

정부는 잘못된 과거청산과 진상규명을 위해 2000년 8월 제주 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와 같은해 10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이들 위원회의 활동은 처음부터 한계에 부딪쳤다.

이중 제주 4·3사건은 기록을 거의 찾기 힘들 정도로 심각하다. 이 사건은 48년 11월 서북청년단·대동청년단 등 우익단체들이 국가권력 후원과 방조하에 양민 3만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4·3진상위 김종민 전문위원은 “군부와 경찰 쪽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지만 없다는 답변뿐이었다”며 “4·3사건 당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던 48년의 국무회의록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부가 기록을 무단 폐기했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민주화운동 관련 사망사건을 조사했던 의문사위도 기록 부재로 활동이 순탄치 못했다. 특히 75년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 등정 중 의문의 죽임을 당한 장준하 선생 사건과 91년 의문사한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씨 사건이 대표적이다. 장씨 사건은 75년 발생 이후 10년이 지난 85년 기록 일체가 폐기돼 이후 진상조사는 사실상 백지상태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다 관련 기록을 보유한 국정원이 기록 공개를 꺼려 조사에 진통이 거듭됐다.

박씨 사건도 당시 안기부 배후설 등 의혹투성이여서 의문사위가 조사에 나섰지만, 검찰에서 3년 만에 모든 기록을 폐기하는 바람에 조사가 미진한 상태다. 당시 수사기관에서 대부분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을 영구 보존했는데 반해 이 사건기록만 폐기된 것도 고의적 ‘폐기’ 의혹을 짙게 한다. 의문사위 관계자는 “2000년 의문사위가 출범해 활동에 나서자 그전까지 기록을 엉망으로 관리해오던 수사기관들이 기록 보존기간을 엄격하게 지켜 폐기하기 시작했다”며 “이로 인해 어처구니없게도 의문사위가 기록을 폐기하는 데 앞장섰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고 말했다.4·3 진상위 김종민 전문위원은 “친일진상규명을 앞둔 시점에서 기록의 무단 폐기를 막기 위해 대통령 긴급 명령이나 관련 법령 부칙 등에 진상규명과 관련된 것은 보존기간에 관계없이 기록을 남기도록 명문화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세계일보 특별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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