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정보공개 2001-11-27   1179

[시론] 정부는 정보공개라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려는 것인가

도데체 정부가 국민을 이렇게 업신여기는 법을 만들어도 되는가

한숨부터 나오는 정보공개제도 운영실태

지금 세계 각국에서는 국민의 알 권리를 확대하고 행정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정보공개제도의 정비작업이 한창이다. 아시아에서도 199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태국, 한국, 일본, 인도 등의 국가가 앞다투어 정보공개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그만큼 정보공개 제도는 국민의 알 권리 실현이라는 기본권 신장차원에서나, 행정의 투명성 확보를 통한 부패근절을 위해서나 반드시 필요한 제도이다.

그러나 정보공개법 시행 4년간을 총평한다면, 한숨부터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직도 정보공개제도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행정기관들이 많다. 이들은 정보공개법상 비공개사유가 추상적이고 불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악용해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이유를 붙여 정보비공개결정을 남발하고 있다. 그리고 일단 정보공개를 거부하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소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에, 일반 시민들은 부당한 정보비공개결정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입법기술상 정보비공개사유를 명확하게 규정하는데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는 정보공개제도를 시행하면서 응당 했어야 할 일들을 하지 않았다. 정보공개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행정기관들에게 ‘정보공개’가 원칙임을 교육시키고, 정보공개를 위한 구체적인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에 따라 일선 행정기관들은 자의적인 정보공개거부처분을 남발할 수 있었다. 더구나 정보공개의 주무관청인 행정자치부조차도 정보공개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행정자치부는 1999년 말에 참여연대가 판공비 정보공개청구를 했을 때, 다른 중앙부처(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가 부분공개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전면비공개처분을 하는 등 정보공개제도의 주무관청으로서 있을 수 없는 행태들을 보여왔다. 그래서 시민단체들은 대통령 직속의 정보공개위원회를 설치하고, 정보공개위원회가 정보공개와 관련된 정책결정과 행정심판 기능을 수행할 것은 주장해 왔다.

비공개 사유 신설에 그친 정보공개법개정

그런데 지금 정부는 가뜩이나 어려움에 부딪혀 있는 정보공개제도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려 하고 있다. 지난 11월 20일 행정자치부가 추진을 해 온 정보공개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정보공개법 개정안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지금 존재하는 8가지의 정보비공개사유도 모자라다며 새로운 비공개사유를 신설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불명확한 비공개사유들 때문에 행정기관들이 자의적인 비공개결정을 남발하고 있는 상황을 뻔히 보면서도, 비공개사유를 하나 더 만들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에 신설하겠다는 비공개사유는 국가의 중요한 정책결정과정에 관한 정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정보공개제도를 통해서 공개되어야 할 정보 중 최우선순위는 바로 ‘중요한 정책결정과정에 관한 정보’이다. 이런 정보가 공개되어야만 국민들이 정부를 감시하고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외환위기가 다가오고 있는데도 경제에 관한 실상을 국민들에게 알려주지 않고 밀실에서 정책결정을 한 것이 IMF위기를 초래한 근본원인 중에 하나라는 것을 정부는 벌써 망각한 것인가? 뿐만 아니라 수 조원의 예산이 이미 투입된 새만금 사업, 사업타당성에 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고속철도사업 등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한 대형국책사업이 모두 밀실에서 추진되었다는 것을 국민들이 잊어버렸기를 기대하는 것인가?

‘정책결정과정에 관한 정보공개’는 국민을 혼란에 이르게 하는 길?

더구나 정부는 개정안에서 중요한 정책결정과정에 관한 정보를 비공개할 수 있는 경우를 들면서 “공개될 경우 국민에게 혼란을 일으킬 상당한 우려가 있는 정보”라는 규정을 만들어 놓았다. 도대체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부가 국민을 이렇게 업신여기는 법을 만들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중요한 정책결정과정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면 국민들 사이에 혼란이 발생하니 공개하지 않겠다. 그러니 국민들은 정부가 결정하는 대로 따르라’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인가? 민주주의 사회라면 국민들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리고 국민들의 의견을 묻는 것이 당연한 태도가 아닌가? 그리고 국민들의 의견이 다르다면 합리적인 토론과 조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이 아닌가? 그런데 이번 법개정안을 보면 정부는 국민들을 철저하게 우매한 존재로 보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정부가 결정하면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군부독재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현 정부는 출범이후 국민이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주창해 왔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국민이 주인대접을 받고 주인역할을 하는 참여민주주의가 실현돼야 하겠다. `국민에 의한 정치’, `국민이 주인 되는 정치’를 국민과 함께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런데 국민들이 국정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어떻게 참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정보 없이는 참여 없다’라는 격언이 있다. 국민들이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정보를 가질 수 있어야만, 감시도 할 수 있고 의견도 표시할 수 있고 제안도 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정책결정과정에 관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공개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국민에게 참여를 하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동안 시민단체들은 현행 정보공개법에 존재하는 비공개사유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축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누누이 지적해 왔다. 정보공개가 원칙이고 비공개가 예외라면, 당연히 비공개사유를 규정한 법규정은 비공개를 해야 할 필요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행 정보공개법은 왜 비공개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하게 설명해 주지 못한다. 한가지 예를 들면, 개인의 이름이 문서 속에 들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름이 공개됨으로써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경우에 한해서 비공개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현행 정보공개법은 프라이버시 침해여부와 관계없이 개인의 이름은 무조건 비공개할 수 있는 것처럼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행정기관들은 개인의 이름이 들어가 있기만 하면 무조건 비공개를 하는 태도들을 보여 왔다. 그렇기 때문에 비공개의 필요성을 기준으로 해서 비공개사유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서는 이런 문제점들에 대해 전혀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는 기존의 비공개사유에 덧붙여 새로운 비공개사유를 신설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행정자치부가 개선이라고 주장하는 내용들 중 상당수는 이미 법원의 판례를 통해 정리된 부분들이다. 그래서 별다른 의미가 없는 내용들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정보와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정보비공개결정을 받기만 하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거나 공무원의 이름이나 직책은 공개대상정보라는 것은 그동안 법원이 일관되게 판결로 확인해 온 것이다. 따라서 이런 내용을 법에 담은 것은 법원의 판결을 법규정으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렇게 형식적인 내용들을 ‘개선’으로 포장하고, 정말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는 ‘중대한 후퇴’를 하려는 것이 이번 정보공개법 개정안의 골자인 것이다.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 요구에 대한 관료세력의 반발

비공개사유의 신설 이외에도 이번 정보공개법 개정안은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보유한 모든 정보의 목록이 아니라 공개대상 정보의 목록만을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국민은 공공기관내에 어떤 정보가 있는지를 알 수가 없게 된다. 어떤 정보가 ‘비공개’라는 것은 그 내용이 비공개라는 것이지, 그 정보의 제목을 나열한 목록까지 비공개라는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책결정과정에 관한 정보’나 ‘정보목록의 제공’은 그동안 시민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정보공개운동을 하면서 가장 쟁점이 되었던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법원의 판결을 통해 상당한 진전을 이루어낸 부분이기도 하다. 올해 들어서 행정기관이 운영하고 있는 각종 위원회의 회의록을 공개하라는 판결들이 잇따라 나왔고, 국무회의, 차관회의 등 중요 회의의 회의록을 공개하라는 회의록 공개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정부가 회의록을 비공개하기 쉽도록 법을 개정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참여연대가 국가정보원을 상대로 문서목록을 공개하라는 소송을 제기해서 국가정보원의 문서목록을 공개받은 것이 최근의 일이다. 그런데 정부는 아예 비공개대상정보는 목록제공대상에서 제외시키려는 법개정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번 정보공개법 개정안은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시민세력에 대한 관료세력의 반발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요구하는 시민세력의 움직임에 관료세력이 집단적인 저항을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이번 정보공개법 개정안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선택의 여지는 없다. 시민의 알 권리를 지키고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이번 정보공개법 개정안은 당연히 철회되어야 한다.

하승수 | 변호사·참여연대 납세자운동본부 실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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