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정보공개 2003-03-19   1316

국민의 알권리를 후퇴시킨 대법원 판결

판공비의 투명성 확보를 좌절시켜

1. 최근 대법원이 지방자치단체장의 판공비에 대한 시민 감시를 가로막는 내용의 판결을 잇따라 선고하고 있다. 국민의 알권리와 예산의 투명성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대법원이 오히려 이를 후퇴시키고 있는 것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국민적 비난을 자초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 결정이 판공비 사용내역의 철저한 공개를 지지했던 고등법원까지의 선고내용을 일제히 뒤집는 것이라는 점에서 대법관들의 법해석과 시대인식이 일반인의 법상식, 더 나아가 원심판결을 선고했던 법관들의 그것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실망과 우려를 갖게 한다.

지난 3월 11일과 14일에 대법원 1부(주심재판관, 박재윤 대법관)와 대법원 3부(주심재판관 : 변재승 대법관)는 각각 제주도지사와 서울시장을 상대로 시민단체가 제기한 ‘판공비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원심판결보다 정보공개의 범위를 훨씬 제한하는 내용의 판결을 선고하였다.

판결의 주요쟁점은 “판공비를 사용한 간담회, 연찬회 등의 행사에 참석한 개인의 인적사항과 판공비에서 격려금이나 선물을 받은 개인의 인적사항이 공개되어야 하는지”였다.

그동안 참여연대, 제주범도민회 등은 지방자치단체장이 판공비를 사용한 상대방(행사참석자나 금품수령자)의 인적사항의 공개는 판공비가 공적인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핵심적인 자료이므로 예산집행의 투명성이라는 공익을 위해서 당연히 공개가 되어야 하고, 공적인 예산을 사용한 행사에 참석하거나 공금으로 금품을 제공받은 것은 원칙적으로 ‘개인의 사생활’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실제로 서울고등법원 등에서는 “참석자 또는 금품수령자의 인적사항은 당해 공무집행과정에 참석하였거나 예산집행에 따른 금품수령자가 누구인가하는 정도 이상의 것은 아니어서 고도의 사적 정보라고 보기 어렵고 그 공개로 인하여 개인에게 불이익이 초래되지도 않을 것”이고 “미공개된다면 정보공개제도의 본지를 현저히 훼손할 것’이므로 공익을 위해 공개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행사참석자 또는 금품수령자를 식별할 수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개인의 사생활 보호라는 관점에서 공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비공개에 의하여 보호되는 이익보다 공개에 의하여 보호되는 이익이 우월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으므로, ‘공개하는 것이 공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법원은 “행사참석자정보 중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하여 행사에 참석한 경우는 공개하되,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 없이 개인적인 자격 등으로 행사에 참석한 경우의 정보는 사생활보호의 관점에서 비공개”해야 하며 “핀공비로 선물이나 사례, 격려금을 지급한 경우에 그 금품을 수령한 자가 공무원인 경우에도 사생활 보호하는 관점에서 비공개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이는 공무원이 아닌 사인(私人)의 인적사항은 전부 비공개하고, 공무원의 경우에도 금품수령의 경우에는 전부 비공개, 행사참석의 경우에도 개인자격으로 참석한 경우에는 비공개할 수 있다는 것으로 사실상 판공비 사용 상대방의 인적사항을 대부분 비공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판공비는 그동안 사용의 불투명성, 불명확한 집행기준, 사적인 유용의혹 등이 계속 제기되어 온 예산항목이다. 그리고 주로 간담회, 연찬회 등에서의 식대, 술값, 자치단체장의 선물구입비, 격려금 등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행사참석자나 금품수령자의 이름이 공개되지 않으면 공적인 용도로 적정하게 사용되었는지를 판단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은 판공비 지출 관련정보의 핵심인 행사참석자나 금품수령자의 이름을 대부분 비공개하도록 함으로써 판공비 사용에 대한 감시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판공비 관련 정보를 공개했었지만, 단 한번도 개인의 사생활 침해가 문제된 적은 없었다. 판공비가 사용된 행사에 참석했거나 판공비로 구입한 선물을 받은 것이 고도의 ‘사적 정보’도 아닐뿐더러, 시민단체가 판공비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것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고, 단지 예산집행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법원 판결은 존재하지도 않는 위험을 들어서 국민의 알 권리를 후퇴시키고 예산집행의 불투명성을 옹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특히 공금인 판공비를 지출한 행사에 공무원이나 시정유관인사가 참석한 것과 판공비로 구입한 선물 혹은 격려금을 받은 것을 사생활로 본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공무원이 시장 등이 주최한 간담회 등에 참석한 것은 개인의 사생활이 아니라 공적인 생활영역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백번 양보해 공무원이 개인적 자격으로 참석한 행사라면 판공비와 같은 공금을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실제 정보공개제도의 운용상으로도 행정관청에서 행사에 참석한 공무원의 인적사항을 ‘공무가 아닌 개인자격으로 참석한 것’이라고 둘러대면서 비공개를 남발할 소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도 비판받아야 한다.

대법원은 최근 서울과 제주도뿐만 아니라 경북 칠곡군, 울진군, 경기도 안양시의 시민과 시민단체들이 제기한 소송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같은 대법원 판결들은 정보공개법의 근본취지에 반하는 것이자 정부의 비밀주의를 옹호하고 우리사회를 투명성 분야의 후진국으로 전락시키게 될 것이다.

참여연대는 관련단체들과 공동으로 이번 판결의 불합리성을 제기하고 대법원의 인식전환을 촉구하기 위해 시민배심재판을 통해 국민들의 의견을 직접 물을 것이며, 아울러 판례평석회 등을 개최해 학계의 견해를 구할 것이다. 또한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비공개사유로 인해 사실상 ‘정보비공개법’으로 불려온 현행 정보공개법의 조속한 개정을 위해 시민단체가 청원한 정보공개법 개정안을 국회가 하루속히 심의해 통과시킬 것을 요구할 것이다.

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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