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기록개혁 2004-06-04   1431

[기록이 없는 나라 ⑤] 정부부처 회의록 접근 봉쇄

70개중 15곳은 작성조차 안해

<참여연대-세계일보 공동기획>국가 정책결정의 근간인 정부 부처의 주요 회의 중 절반가량은 회의록이 공개되지 않거나 아예 기록조차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나머지 주요 회의들도 대부분 정보공개요구에 선별 대응, 사실상 회의록 공개를 꺼렸고 인터넷에 공개되는 일반회의는 8곳에 불과했다. 속기록 작성이 의무화된 12개 회의 역시 의견요지만 간단히 적는 편법이 동원되거나 아예 회의록 자체를 남기지 않고 있다.

[기록이 없는 나라 ⑤-1] ‘부실투성이’ 정부 회의록

[기록이 없는 나라 ⑤-2] “국정 논의내용 문서화 필수…국민 참여기회 대폭 늘려야”

이 같은 사실은 세계일보가 27개 중앙부처와 위원회의 70개 회의를 대상으로 회의록 기록·관리실태를 분석한 결과 밝혀졌다.

이번 조사 결과,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는 회의는 전체의 30%인 21개에 이르렀고, 15개(21.4%)의 회의·위원회는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고 있었다. 정부회의 두 곳 중 하나는 회의내용 접근이 원천봉쇄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외교통상부와 국방부는 국가이익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회의명조차 밝히지 않았다. 심각한 것은 공개불가 회의 대부분이 공개시한을 두지 않아 사실상 무기한 비공개로 운영되는 가운데 일부 회의록의 경우 관련문서와 함께 보존기한만 채운 뒤 무단 폐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머지 회의록도 부실하게 작성되거나 일반공개에 소극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정보공개청구때 사안에 따라 공개한다는 회의는 37.7%인 26개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이들 회의 중 실제 공개가 이뤄진 국무회의와 차관회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등 3개를 빼고는 단 한 건의 공개실적도 없었다. 이는 전체 회의 중 84%인 59곳이 정보공개의 사각지대여서 참여정부 역시 과거의 밀실행정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또 회의록 내용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회의가 6개에 불과했고,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와 재경부의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각각 3개월, 1년 후에 일반에 공개하고 있었다. 그나마 일반공개된 회의록들은 대부분 참석자들의 의견을 짧게 요약하고 발언자를 알 수 없었다.

한편 정부기록보존소에서 속기록이나 녹음 형식의 회의록 작성을 의무화한 12개 회의 중 5개는 아예 회의록을 기록하지 않았고 나머지 회의도 발언요지만 간단하게 남기고 있었다. 이들 회의의 주무 부처는 대부분 속기록 지정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지자체들도 엉망>

지방자치단체들은 회의록의 불모지나 다름없다.

광역시·도청 등 지자체들은 대부분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형식적인 겉치례로 작성하고 있다. 속기록 형식으로 작성하는 일부 회의록도 행정의 투명성이나 사료가치라는 잣대가 아니라 행정소송과 검찰 등 사정당국의 수사에 대비한 방어적 수단만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통상 지자체들은 크고 작은 회의가 60∼80개 가량에 이르며 이 중 극소수만 회의록이 작성되고 있다. 예컨대 인천시의 경우 회의록이 작성돼야 할 회의만도 지방의회에 상정되기에 앞서 열리는 조례·규칙심의회와 각종 위원회 등 모두 70여개에 이른다.

인천시 관계자는 “회의록이 속기록 형식으로 작성되는 회의는 인사위원회와 도시계획조정위원회 등 몇몇에 불과하다”며 “이들 회의의 경우 개인의 신분이나 도시개발 등 민감한 사안으로 행정소송이나 민형사소송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 작성, 보관해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록이 행정 ‘면피’용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나머지 일반적인 위원회와 회의도 회의록이 부실하게 작성되거나 회의록을 뺀 심의의결서만 작성하고 있다.

울산시와 강원도의 기록물담당자들도 “(지방에서 작성하는) 회의록 대부분이 형식적이다”며 “예컨대 자기의 의견을 개진하는 게 아니라 ‘(상정안건에 대해) 이의 있느냐’라는 질의에 ‘있다’ ‘없다’라고 짤막하게 응답하는 형식으로 작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회의록의 사후관리도 엉망이다. 회의록도 일반문서와 마찬가지로 해당 주무과의 캐비닛에 수북이 쌓여 장기 방치된 채 무단폐기되고 있다. 원래 회의록도 해당과에서 2년 보관한 뒤 기록물전담과로 옮겨 7년간 보존하는 게 원칙이다. 전북과 충남의 기록물담당자는 “회의록의 경우 대부분 해당 주무과에서 ‘비공개’로 처리한 뒤 보관하고 있다”며 “해당과에서는 1∼5년 등 보존기한만 채운 뒤 대부분 폐기하고 있는 게 관행”이라고 말했다.

결국 공무원들이 자신의 보신에 필요한 회의록만 챙긴 뒤 법에서 명시한 전문가의 의견도 청취하지 않은 채 과거 관행대로 회의록을 파기하고 있다는 얘기다.

본지의 설문조사에서도 지방회의록의 난맥상이 확인된 바 있다. 회의록을 공개한다는 응답은 한 곳도 없었고 대구·경남·전남·제주 등 4곳은 아예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 충남도와 경북도는 ‘모르겠다’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지자체에 따라 회의록 작성이 들쑥날쑥이고 원칙도 없다는 얘기다.

주요 작성 회의록으로는 인사위원회(경기·전북·충북)와 도시계획위원회(서울·강원·울산)가 주류를 이뤘고 ▲시정조정위원회(부산·대전) ▲조례·규칙심의회(대전·인천) ▲행정심판위원회(경기) ▲수도행정자문위원회(서울) ▲문예진흥위원회(광주) 등도 꼽혔다.

세계일보 특별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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